[음악 월평] 양들의 침묵, 그리고 시끄러운 한 마리 겁쟁이 어린 양으로부터: 배드램 〈겁〉
[음악 월평] 양들의 침묵, 그리고 시끄러운 한 마리 겁쟁이 어린 양으로부터: 배드램 〈겁〉
  • 이준행(음악가)
  • 승인 2022.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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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램

  최근 우리의 귓가에 들려오는 노래들은 가사의 중요성을 많이 잊은 듯하다. 좀 더 미니멀한 사운드, 우리 귀에 좋게 들려오는 발음, 좋은 멜로디 등의 소리 기표들에 대한 집중적 조명은 물론 나쁜 현상만은 아니다. 그것은 소리를 조형하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발생한 변화이며, 리스너들의 다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현상이다. 하지만 리스너들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가장 가시적인 기표 중 하나인 가사의 의미 전달력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홍대를 중심으로 한 서울의 밴드 씬 역시 마찬가지 현상을 겪고 있다. 가사에서 기인하는 의미 전달보다는 다른 부수적인 요소들에 좀 더 천착하게 되는 현실 속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밴드들은 가사의 의미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을 믿고 있다. 4인조 혼성 락 밴드 “배드램BADLAMB”이 그렇다. 배드램은 기타와 보컬의 이동원, 기타의 편지효, 베이스의 김소연, 드럼의 최주성으로 구성된 4인조 락 밴드이다. 팀명은 대혼돈 혹은 난장판의 의미인 ‘bedlam’, 나쁜 어린 양이라는 ‘bad lamb’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검은 양이 그려진 밴드 마크와 1집 앨범 《Frightful Waves》에 사용된 성화 이미지의 차용에서 알 수 있듯이, 배드램은 성서적인 기호 이면에 위치한 어떤 것을 노래한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이 종교적인 행위에 반하는 것이라는 일차원적 기호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인간 역사에서 인간을 묶어내는 가장 강력한 체계는 신으로부터 받은 절대적 질서로부터 내려오는 소명이다. 신을 위해서라면 당위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세계,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절대 질서로부터 인간은 최초의 자유를 잃어가기 시작한다. 따라서 배드램이 사용하는 성서적 기호는 성서나 종교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체계와 절대 질서를 대표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배드램의 음악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절대 질서로부터 해방됨의 발걸음이다.

  그 해방의 첫 발걸음이 정규 1집 앨범 《Frightful Waves》에 수록된 타이틀 곡 〈겁〉이다.

ⓒ배드램
ⓒ배드램

  버려진 곧 지워질 / 기억 끝에 매달린
  고쳐지지 않을 그런 / 작은 돌 사이에 감춰진 채
  잊혀져버린 / 손때가 묻은 그 무엇과 같은

  1절 가사에는 우리의 겁을 만들어내는 원인들이 열거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겁의 연원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겁의 연원은 ‘버려진 무엇’, ‘곧 지워질 무엇’, ‘기억 끝에 매달린 무엇’, ‘고쳐지지 않을 그런 무엇’, ‘작은 돌 사이에 감춰진 채 잊혀져버린 무엇’, ‘손때가 묻은 그 무엇’이다. 모든 형용사들은 1절 말미의 ‘그 무엇과 같은’에 걸리면서 불명확한 상태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버려진’ 과거와 곧 다가올 미래의 ‘지워질’, 그리고 현재 ‘기억 끝에 매달린’이라는 형용사들 사이에 무수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이 얽혀 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 앞에서 불분명하게 정의되지 않는 속성들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 불안감 속에서 겁은 발생한다. 우리에게 어떠한 확고한 질서가 주어진다면 불안감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안정감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면서 겁을 체험하려 한다.

  우리는 홀로 서 있는 / 검은 파도 위의 불빛
  등대 곁에 앉은 어두운 표정 속에 감춘 거짓 앞에

  2절 가사에서는 세계의 통합된 시간 속에서 정의되지 않는 불안감 속에서 겁을 체험한 주체가 좀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이 주체는 검은 파도로 형상화되는 세계의 질서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낸다. 파도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가장 균일한 리듬의 질서이다. 정확한 자연의 시간 간격에 맞춰 아래위로 진자운동을 반복하는 질서의 선이다. 그는 홀로 서서 이 질서의 파도에 저항한다. 여기서 자신이 겁을 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만이 세계에 대항하는 불빛이 된다는 아이러니가 표출된다. 겁이 무엇인지 체험하지 못하는 질서 속의 사람들은 검은 파도에 휩쓸릴 뿐이다. 하지만 불안감은 계속 그와 함께 한다. 검은 파도의 질서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아주 고독한 길이며, 때로는 거짓을 동반한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불안감에서 오는 겁은 점점 더 커져간다. 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다음과 같은 선언이 시작된다.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 / 나
  이 얕은 숨은 붙어 있는 / 가

ⓒ배드램
ⓒ배드램

  일반적인 가요의 가사에서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보통 어떤 상황이나 정황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겁〉의 화자는 과감한 질문을 던진다. 아니, 이 부분에서의 강력한 보컬 톤은 ‘던진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야말로 질문을 동반한 포효를 내던지고 있다. 특히 의문 바로 직전에 위치한 음절인 ‘나’와 ‘가’는 앞선 가사 부분과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강력한 외침으로 다가온다.

  위의 후렴구 두 문장에서 의문 부호가 표시되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물음표와 느낌표 중 어느 무엇을 사용하더라도 각각의 의미에 부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겁에 질린 사람만이 소리를 지를 수 있다. 또한 겁에 질린 사람만이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문장은 물음표인 동시에 느낌표가 된다. 이것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이고 또한 무언가에 겁을 내고 있는 사람의 소리 지름이며, 동시에 어딘가로 ‘나, 가’는 것이다. 겁을 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일종의 선언 행위가 된다.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은 / 쇠퇴하는 시간 앞에 / 마주한 나의 공허함에
  Why do we fade / Why do we fade / Why do we fade

  시간은 쇠퇴한다. 이 쇠퇴는 부정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앞선 파도에서 보았듯이 과거, 현재, 미래로 분리되어 있는 시간이라는 것은 질서의 세계에 속한 것이다. 겁으로부터 우리는 시간의 질서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다. 겁의 끝에는 공허함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비어있다는 것은 동시에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Why do we fade?”, ‘우리는 왜 희미해지는가.’라는 최종적인 의문이 반복된다. 그것은 겁을 냄으로써 우리가 질서의 세계로부터 채워졌던 모든 것을 비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양들의 침묵 속에서 가장 겁을 내는 한 마리 나쁜 양이 있다. 배드램의 〈겁〉은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으로 치환하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지금 존재가 불안감을 겪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불안 속에서 겁을 내기 시작한다는 것, 의문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질서의 세계로부터 저항하는 시작점이며, 결코 부끄럽지 않은 외침이 될 것이다.

 

 


이준행
음악가. 락 밴드 벤치위레오 보컬. 기타로 활동중.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박사과정 재학. 시와 음악의 연관성을 탐색하는 중.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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