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근대문학의 ‘에피스테메’를 이야기하다
[북리뷰] 근대문학의 ‘에피스테메’를 이야기하다
  • 양진호(본지 에디터)
  • 승인 2020.09.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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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근대의 에피스테메Episteme와 문학장의 분할』

  데뷔 27년을 맞는 문학평론가 이재복(한양대학교 ERICA 한국언어문학과 교수)이 『근대의 에피스테메 Episteme와 문학장의 분할』을 출간했다. 그동안 『비만한 이성』 『몸과 그늘의 미학』 등을 통해 ‘몸’이라는 화두로, 또 『한국 현대시의 미와 숭고』 등의 비평집을 통해 ‘숭고’라는 키워드로 한국문학을 바라보며 우리의 독창적인 미감을 세심하게 분석해온 이재복 평론가가 새롭게 펴낸 이번 책은 우리의 근대를 ‘에피스테메’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에피스테메는 미셸 푸코가 정의한 단어로, “시대에 따른 질서의 틀, 곧 담론이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담론 속에서 어떤 것을 인식하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즉, 특정 시대 인식 지평과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규칙을 일컫는다. 저자는 이번 저서에서 “푸코의 이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근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근대의 에피스테메를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근대 혹은 근대성에 대한 규정과 해석은 오랜 과제 중의 하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규정은 그것을 해명하기 위한 일종의 선언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그렇다면 우리의 근대를 지배하고 아우르는 질서의 틀을 어떻게 찾아내고 또 그것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고 활용해야 하는 것일까?” 라고 의문을 던지고 있다.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결코 간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 세기도 채 되지 않는 시기에 근대 혹은 근대성의 틀을 갖추어야 했던 우리의 경우, 시대에 따른 온전하고 안정된 질서와 원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호하고 복잡한 우리의 근대에 대한 논의를 전체의 틀 안에서 수렴하여 여기에서 질서정연한 구조적인 틀을 인위적으로 배치하고 의미화하는 방식은 우리의 근대를 도식적으로 이해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근대문학을 형성한 의식과 실존의 언어들을 ‘에피스테메’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당대의 문학 전체를 설명하는 개념이나 의미망을 성급하게 구조화하지 않고, 에피스테메의 틀로써 그것을 들여다보며 저자는 우리의 근대문학을 작가 각자의 의식이 투명된 사상, 실존, 글쓰기의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한국여성수필선집 1945-1953』은 해방기와 전쟁기 여성의 모습을 개인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18명의 여성작가들의 작품 89편은 주로 ‘문학, 여성, 시사’라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 각각의 혹은 통합된 주제들 속에서 우리는 해방과 전쟁이라는 불안과 혼돈의 시기를 견디고 그것을 통해 보다 견고한 세계를 열어 가는 여성의 힘과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내면화된 여성의 힘이 시대의 격변을 극복하는 한 부분이 되고 있고, 불안과 혼돈의 시간 속에서도 그것이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여성의 의지를 추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수필의 장르적 특성이 직접적이고 고백적이며 글쓰기에서 특정한 문학적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기에서 발견한 내면화된 여성의 힘이 더욱 진정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 본문 415쪽

  이 책에서는 우리 작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근대에 대한 의식과 실존의 방식들, 그들의 인식과 무의식의 원리로 만들어지는 에피스테메와 그것에 의해 근대의 문학장이 탄생하는 과정을 비평적 안목으로 살피고 있다. 우리 작가들이 보여준 다양한 의식과 실존의 방식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권력 담론의 장으로 볼 수 있다. 저자의 이러한 해석을 통해 우리는 작가들의 근대 혹은 근대성에 대한 인식 태도와 지적 성찰의 정도를 이해하게 되고, 또 그것이 ‘지금, 여기’ 우리의 의식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에피스테메에 의해 근대의 문학장이 탄생(분할)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이번 저서를 통해 근대문학에 대한 이해의 구체성이 마련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서문에서 언급한다. 그리고 근대의 은폐된 세계를 잘 드러내기 위한 인식 틀과 무의식의 원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이후에도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드러낸다. 

  이재복 교수는 『몸』 『비만한 이성』 『한국문학과 몸의 시학』 『몸과 그늘의 미학』 『벌거벗은 생명과 몸의 정치』 등의 저서를 통해 몸이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성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토대라는 인식하에 그것을 준거로 하여 이 시대의 문화와 문명에 대한 글쓰기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몸은 에코와 디지털이 교차하는 실존의 장이며, 인류의 문화와 문명은 그러한 몸의 자장 안에서 실존적인 지평을 열어 보일 것이라는 그의 시각은 포스트휴먼 시대를 읽어내는 중요한 비평적 안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재복 교수는 고석규비평문학상, 젊은평론가상, 애지문학상(비평), 편운문학상, 시와표현평론상, 시와시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쿨투라》 2020년 9월호(통권 7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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