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시인의 군산통신 10] “하제 600년 팽나무”는 힘이 세다
[강형철 시인의 군산통신 10] “하제 600년 팽나무”는 힘이 세다
  • 강형철(시인)
  • 승인 2021.10.0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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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산 205번지에 그가 산다. 그의 나이는 2020년 6월 26일자로 발급된 수령 감정서에 따르면 537년이다. 거기에는 50년의 오차 범위를 표시하고 있다. 길게 잡으면 587년이고 적게 잡으면 487년이 된다. 대개의 경우 수령 추정은 적게 책정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여 수령 600년으로 얘기하고 있다.

  ​오차를 감안하지 않고 감정서에서 적시한 팽나무 나이를 기준으로 537년 전, 즉 1483년 한국사 연표를 보면 조선 성종 14년이다. 세조 비 정희왕후가 죽고 여진족이 조선에 올 때는 영안도(함경도)를 경유케 하였으며 다음 해엔 한성에 창경궁이 건립되었다고 씌어 있다. 영국에선 에드워드 4세가 피살되고 리처드 3세가 즉위했다. 이후 10년이 채 못 되는 1492년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씌어있다(『한국사 연표』, 다할미디어, 271쪽).

  ​당시의 우리나라와 외국의 역사를 대비해서 살펴보면, 지금 하제마을 팽나무가 출현했던 순간은 무척 경이로운 일이다. 그 긴 세월을 넘어 지금의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그보다 나이가 많은 나무들을 추적하면 몇 개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공데이터 포털에서 보면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에 수령 1,000년으로 추정되는 팽나무가 있다. 경상북도 산청과 경상남도 고성에도 있으며 수령 600년을 기준으로 보면 15건이 검색된다.

  지구상에 가장 많은 것이 물이고, 그 다음은 풀이며, 그 다음 한참 뒤에 인간이 산다. 생물로 치면 미생물도 있다. 그 미생물의 하나인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로도 지구는 지금 커다란 재앙을 맞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 뽐내는 인간의 처지가 궁색하기 짝이 없다.

​  나는 하제마을 팽나무를 만나러 갔다. 미군부대는 철조망을 두르고 있었는데, 열린 철조망 사이로 버스 정류장이 있어 걸어 들어갔다. 인가가 있어 물었다. 조금 더 가면 팽나무가 있다고 했다. 반갑고 즐거웠다. 걸어서 5분여 거리에 팽나무가 보였다. 야트막하지만 산 아래에 팽나무가 의연하게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두 개의 큰 가지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였고, 두 큰 가지 아래로 받침대가 그 가지를 떠받치고 있었다. 나무는 건강해 보였다. 그 옆에는 대나무 숲이 있었고, 그 앞의 밭에서 한 사람이 배추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  그와 얘기를 나누었다.

  여기서 무슨 밭을 가꾸냐는 물음에, 그는 자신이 지금은 팽나무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종일 머무는데 그냥 무료하게 지내기가 무료해서 텃밭을 가꾼다고 했다. 더불어 비상한 일이 있을 때 ‘팽나무 지킴이’ 모임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일도 한다고 덧붙였다. 평일에는 이곳에 사는 버려진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은 들른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안내도 해주고 팽나무에 대한 설명도 하는 일이 주된 일인데, 자신은 산북동에서 ‘소소한 캠핑’이라는 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재석 대표는 고향은 전남이고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이곳으로 온 뒤에 계속 머물고 있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노동운동을 하다가 군산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데 창업 이후 코로나19가 터져 힘이 들지만 팽나무 지킴이 일은 너무나 즐겁고 보람찬 일이라고 했다.

  그와 함께 하제 팽나무 지키는 운동을 하는 구중서 씨를 만났다. 하제마을 팽나무에 대해 묻자 그는 먼저 하제지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하제마을은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에 의해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마을이며, 그 전에는 섬이었다고 말했다. 간척지가 조성된 후 1940년에 일본군 비행 조종사양성을 위해 다치아라이(大刀洗) 육군비행학교 군산분교를 하제 등의 지역에 개교한 이후 1945년 미군사고문단이 사용했고, 한국전쟁 시기에 미 육군의 기계화 부대가 들어와 주둔했으며, 1974년 미 태평양공군사령부 예하 부대인 주한 미군 제7공

  군의 제8비행전투단이 주둔한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  지금 하제마을에는 주민들이 없다. 국방부가 이 땅을 미군에게 공여하면 미군에게 배타적 사용권이 부여되어 두 노거수에 대한 시민 접근권이 가로막힐 뿐만 아니라 나무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기에, <하제 팽나무 지킴이 모임>이 2020년부터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2020년 7월 6일자 《경향신문》 참조)

​  구중서 씨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하제마을 팽나무 문제를 관계 당국과 실질적으로 협의하는데 가장 기본적이면서 근본적인 일을 수행한 사람은 양광희 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를 만났다. 그는 『600년 팽나무를 통해 본 하제마을 이야기』(하움출판사, 2021년 3월. 이하 책명을 『600년 팽나무』로 표기)를 펴낸 저자이기도 하다. 양광희 씨는 지금 한국 도로공사에 근무하고 있다.

​  그는 군산이 고향이고 대학에서 토목공학과를 공부했으며, 한국도로공사 보령지사에 근무한다. 본인은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야생화를 보러 다니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2016년에 군산의 자생 야생화 사진전도 열었다. 생태환경 보전을 통한 지속 가능한 사회구현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지역 내 우수한 생태자원의 모니터링과 그 자원 활용에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을소개하고 있다.

  ​『600년 팽나무』는 사실 온전한 책이라기보다는 팽나무를 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하여 자료를 모은 것이고, 문화재 심의회에 자료로 내기보다는 책으로 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자비출판하였다고 밝혔다. 그래서 언젠가 더 공부하고 자료를 충실하게 보완해서 다시 재출판하고 싶다는 희망도 이야기했다.

  ​양광희 씨의 『600년 팽나무』는 5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제마을의 발자취와 유산, 600년 팽나무의 문화재적 가치, 하제지역의 간척 전·후, 일제 강점기의 군산비행장, 하제지역의 식생조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주한 주민들의 구술담을 부록으로 싣고 있다.

  ​하제 팽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기 위해 나는 그간 신문과 잡지 등 인터넷을 통해 많은 자료를 보았지만, 이 책 한권을 제대로 읽으면 모든 문제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만큼 충실하고 꼼꼼하게 공부해서 만든 책이다. 본인이 자료집으로 제출했다고 한 것은 겸양의 말로 여겨졌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야생식물이나 꽃들을 사진으로 찌고 살피는 것이 중요한 활동이었는데, 실제로 하제마을에 중요한 팽나무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바 없었다. 2019년 10월, 한 시민단체가 진행한 사라져가는 마을을 찾아 떠나는 탐방프로그램에 우연히 참석하면서 팽나무를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행사에서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팽나무 거목이 눈에 들어왔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검은 표지석에 수령 600년의 보호수라고 씌어있었다.

​  원래는 마을 한가운데 있던 나무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주한 뒤 집들이 허물어지면서 팽나무가 드러난 것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팽나무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니 2004년에 군산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했고 이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지역 언론사에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해야한다는 글도 투고했다. 이후 15개월 동안 틈만 나면 하제마을을 찾았고, 각종 문헌을 탐구하고 현장조사를 했다.

  ​600년이나 마을을 지켜온 팽나무를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경관성, 역사성, 학술성 등을 갖추어야 한다는 규정을 생각하며, 경관성은 자신이 보기에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기에 역사성과 학술성을 충족시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의 땀과 정성이 가득 배인 그야말로 역작이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노력이 마침내 가시적인 결실을 맺었다. 지난 2021년 6월 25일자로 전라북도 기념물 제 148호로 하제 팽나무가 지정되었다. 하제마을 팽나무는 약 600여 년의 수령과 좌우로 균형 있게 펴진 수관 등 식물학 경관적 가치가 높으며, 이미 문화재로 지정된 다른 지역의 팽나무에 비해 생육을 위한 입지적 특성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 결과였다.

  ​이로써 600년 팽나무는 미군에 공여되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에서 일단 비켜서게 되었다.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과 사람들에게 한 주민으로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러면서 나는 그 모든 풍상을 이기고 의연하게 서있는 팽나무에 대해 한마디 덧붙여본다.

  “하제 600년 팽나무는 참으로 힘이 세다”

 

 


강형철
1955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숭실대 철학과. 동대학원에서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5년 『민중시』 2집에 『해망동 일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해망동 일기』『야트막한 사랑』『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환생』과 평론집으로 『시인의 길 사람의 길』『발효의 시학』 등이 있다.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며, 사)신동엽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치다 정년하였으며, 현재 고향 군산에서 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쿨투라》 2021년 10월호(통권 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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