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오늘의 영화 - 김군] 100명의 증인들의 증언을 듣다
[2020 오늘의 영화 - 김군] 100명의 증인들의 증언을 듣다
  • 남완석(영화평론가, 우석대 교수)
  • 승인 2020.03.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사 풀

한국 영화평론가협회가 선정한 2019년 한 해를 대표하는 한국영화 10선에 〈기생충〉, 〈벌새〉와 같은 작품들과 함께 처음이자 유일하게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포함되었다. 그 영화가 바로 강상우 감독의 〈김군〉이다. 이 영화의 출발점은 5·18민주화운동을 기록한 한 장의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한 젊은 남자가 기관총을 앞에 놓고 헬멧을 쓴 채로 장갑차 위에 앉아 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고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익명의 한 시민군이었다. 그런데 2015년 예비역 대령 출신의 군사평론가인 지만원이 이 이름 모를 청년에게 ‘광수1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면서 그가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600 여명의 특수부대원 중 한 명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앞세워서 그는 5·18민주화운동이 시민들이 주도한 항쟁이 아니라 북한군에 의해서 주도된 내란이었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해서 이때까지 익명의 시민으로서 그 이름이 불려지지 못했던 한 청년이 세상으로 호명이 된 것이다. 

ⓒ영화사 풀

1983년생으로 5·18민주항쟁 이후에 출생한 강상우 감독은 영화를 시작하기 전까지 항쟁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광주에서 촬영 보조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된 한 증인으로부터 ‘광수1호’로 지목된 이 청년이 아마도 넝마주이를 하던 김군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증언을 근거로 그는 이후 ‘광수1호’의 정체를 추적하게 되었고, 이를 규명하는 과정을 영화로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자료와 기록들을 검토한 끝에 그는 ‘광수1호’가 광주천 다리밑에서 살던 김군으로 불린 넝마주이 청년이고 항쟁 과정에서 사진에 찍힌 것같이 시민군 활동을 하다가 군인에 의해 즉결 처형을 당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감독은 북한군 개입설을 처음 제기한 지만원 씨를 인터뷰하고 그의 주장도 상세하게 소개한다. 얼굴 특징들에 대한 나름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분석을 근거로 그는 당시 약 600명의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서 활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당시 기록사진에 광수들을 일일이 지목하기까지 한다. 특히 ‘광수1호’는 현재 북한에서 영웅대접을 받으며 농림상까지 지낸 김창수라고 특정한다. 영화는 그의 주장을 허무맹랑한 거짓이라고 정면으로 지적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감독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증인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광수1호’의 정체에 조금씩 다가선다. 그리고 ‘광수1호’가 항쟁의 과정에서 사망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넝마주의 김군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렇게 해서 익명의 시민군에서 ‘광수1호’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북한특수군으로 지목되었던 사람이 비록 이름까지는 모르지만 주변에서 김군으로 불려졌던 평범한 청년이었음이 밝혀진다.

영화 〈김군〉은 지만원의 북한군 개입설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여러 증인들의 증언을 관객들에게 들려줌으로써 그 많은 사람들의 삶이 5·18민주화운동으로 인해서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그들이 항쟁 이전에 얼마나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그리고 그때의 나쁘고 아픈 기억들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지를 느끼도록 해준다. 즉 영화는 무엇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을 넘어서서 증인들의 애환을 관객이 느끼게 해준다. 이를 위해서 이 영화에는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사용하는 내레이션이 없고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의 질문과 대답만이 담담하게 제시가 된다. 그리고 관객은 그 증인들의 증언을 스스로 연결시켜서 김군이 평범한 넝마주의 청년이었고 항쟁 과정에서 사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다보니 영화 중간에 잠시 집중을 하지 않아서 한 두 증인의 증언을 놓치게 되면, 김군이 누구이고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게 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장에 주장으로 맞서지 않고, 그 주장을 넘어서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제시하는 감독의 전략은 좋은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금기어였던 5·18민주항쟁은 점차 민주화가 진전되는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회상되고 기억되었다. 〈꽃잎〉, 〈박하사탕〉같은 영화에서는 독재자들의 극악무도한 만행으로 인한 트라우마로서 그려졌고, 〈화려한 휴가〉에서는 무자비한 폭력에 맞선 평범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항거로 묘사되었으며, 〈택시운전사〉에서는 진실을 기록하고 세상에 이를 알리기 위한 노력의 과정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건 허구이건 이 영화들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이름으로 불렸고 기억되고 애도되었다. 그런데 영화 〈김군〉은 그 항쟁 과정과 이에 대한 기록에서조차 이름을 갖지 못한 익명의 시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익명의 시민은 이름도 직업도 나아가서 생사여부도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그는 기억되지도 애도되지도 못했다. 나아가서 이 익명의 시민은 ‘광수’라는 엉뚱한 이름을 얻게 되고 북한특수부대원으로 지목됨으로써 ‘레드 콤플렉스’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되었다. 이렇게 이중의 피해를 당한 익명의 시민에게 완전하지는 않으나 그 일부의 이름이라도 찾아줌으로써 영화는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그를 마침내 역사 속에서 호명하고 기억하고 애도해 준다. 

ⓒ영화사 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는 600만 명의 유대인을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학살했다.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이 학살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이다. 이곳은 또한 이곳을 방문했던 당시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가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나중에 과거의 잘못에 대한 독일의 사죄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는지를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다. 그런데 네오 나치 등 극우세력들은 이 학살이 모두 미국과 유대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짓말이라며 일명 ‘아우슈비츠 거짓말’을 주장한다. 즉 집단수용소도 가스실도 없었고 따라서 홀로코스트도 없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명백한 역사적 만행도 날조된 거짓말이라는 거짓 주장이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거짓 주장이 만들어지고 유포되고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거짓말이 어떤 이유에서건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민족의 위대함을 주장하는 네오 나치에게 홀로코스트라는 만행은 있어서는 안 되고 그래서 거짓말이어야 하는 것이다. 광주 민주화항쟁의 북한군 개입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광주 항쟁을 촉발했던 군부 세력과 독재 세력에게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정당성과 당위성을 부여할 유일한 거짓말로서 북한군은 광주에 왔어야만 했던 것이고, 그 필요성이 결국 ‘광수 이야기’라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익명의 시민군들을 또 다시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과 유튜브의 시대를 맞이해서 진실이 신발 속에 들어 있는 동안에 거짓은 이제 세상을 반바퀴가 아니라 수십, 수백 바퀴를 돈다. “3인성호三人成虎”라는 중국의 고사성어처럼 가짜 호랑이들이 진실이 무엇인지를 가리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가 면밀하게 따져 보아야하는 것과 동시에 그 거짓 호랑이의 등에 누가, 어떤 목적으로 올라 타 있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3명이 만들어낸 호랑이가 가짜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그 3명과 싸우는 것보다는 100명의 증인들의 증언을 들으면 된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을 영화 〈김군〉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남완석 _ jumpcut9@naver.com
영화학 박사. 전 국제 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회장.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현대영화연구소 이사를 역임. 현재 우석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부 교수

 

*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