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오늘의 영화 - 미성년] 2019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진정 미성년은 누구?
[2020 오늘의 영화 - 미성년] 2019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진정 미성년은 누구?
  • 정지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0.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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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박스

평온한 일상을 뒤흔든 폭풍 같은 사건 ‘외도’를 중심으로 한 아버지와 두 엄마, 그리고 두 딸이 마주한 세상. 이들 두 가족이 겪는 한바탕 이야기를 담은 작품 〈미성년〉이다.

“너 때문에 우리 집은 이제 지옥이야”

늦은 밤 오리전문집 창가를 한 여고생이 서성인다.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밖으로 나온 일행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도 하고, 문득 음식점 주인과 눈이 마주친 여고생은 뒷걸음 치다 넘어진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여고생과 눈이 마주친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그 자리에 남겨진 휴대전화기.

같은 학교 2학년에 다니는 주리(김혜준 분)와 윤아(박세진 분)가 학교 옥상에서 만난다. 얼마 전 알게 된 주리의 아빠 대원(김윤석 분)이 윤아의 엄마 미희(김소진 분)와 부적절한 관계라는 사실에 두 아이들은 적잖이 당황한다. 이 상황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주리는 어떡하든 엄마 영주(염정아 분)가 알지 못하게 수습하려 하지만 윤아는 어른들 일에 말려들기도 싫고 관심도 없다. 옥신각신하던 둘이 언쟁을 벌이다 주리의 전화기로 영주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고, 윤아는 그 동안 감춰왔던 비밀을 폭로한다. 그리고 두 가족은 되돌릴 수 없는 폭풍 같은 사건에 말려든.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인간, 그대 이름은 아빠

이 작품에는 세 명의 성년과 두 명의 미성년이 등장한다.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꾸리고 있는 부부와 딸의 가족, 그리고 고등학교 때 딸을 임신해 낳아기르는 모녀 가족이 이 영화의 중심인물이다. 사건은 안정된 가족의 아버지와 모녀가족의 어머니의 외도를 알게 된 두 딸, 그리고 남편의 외도가 알려지며 사건은 거침없이 커진다.

주리와 윤아는 어떡하든 수습하려하거나 관심 없다는 듯 귀찮은 표정이지만 세상에 나온 동생에 대해서는 호기심 가득해 보이고 아이와 함께 하려 한다. 배신감으로 어찌할 줄 모르는 영주지만 같은 여자로서 미희를 바라보는 시선은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이에 반해 아빠 대원은 구차한 변명과 회피로 일관한다. 병원에서 주리와 마주치자 줄행랑을 벌이고, 영주가 외출하기만을 기다린다. 잠긴 방문 앞에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나중엔 시골 아이들에게 돈과 차를 빼앗기는 한심한 인물이다.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난 인물이지만, 잠시 등장하는 윤아의 아빠도 마찬가지다. 카지노 부근 찜질방에서 생활하며 딸의 나이도 제대로 모른채 노름에 빠져있고, 어느새 성년이 됐다고 생각한 윤아에게 카드 만들어줄 것을 요구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두 명의 아버지는 모두 한심하기 그지없다. 물론 주인공 대원은 그나마 성실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듯 보인다. 그 과정에서 외도를 하게 됐다고 변명을 하지만 가족에게 떳떳하지 못한 그래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기보다는 뒷모습이나 옆모습으로 카메라에 담아 스크린에 그려졌다. 대원을 지나치게 악인으로 그려 작품 속의 균형을 깨지 않고 어이없고 엉뚱한 인물로 표현시킴으로 극의 무거움을 상쇄시켜 관객의 부담을 줄인 탁월한 표현이다.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헛웃음을 토해내며 연민마저 일으킬 정도로 순화되게 표현했다.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헛웃음을 토해내며 연민마저 일으킬 정도로 순화되게 표현했다.

ⓒ쇼박스

엄마와 딸, 딸들, 여성들의 케미

언제까지나 안온하리라고 여겨졌던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했던 영주와 주리, 하지만 그 가정은 대원의 외도로 순식간에 살얼음판이 된다. 그 와중에도 맨발로 달려 나와 주리의 아침식사를 챙겨주는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밀쳐버렸지만 병원에 데려가고 연락하는 영주는 결국 여성으로서 외도녀를 대하고 바라보고 있다. 성당 고해성사실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분노를 진심으로 쏟아내는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이었다. “욕정이야? 사랑이야?”라고 따져 묻는 것은 그녀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닐까?

고등학생 때 임신을 해 엄마가 된 미희. 전 남편에게서 받지 못한 따스한 사랑을 ‘못난이’로 완성해보고자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딸 윤아의 타박에도 여전히 천진무구한 감성으로, 하지만 자신을 향한 차별적 시선에는 분노로 대하는 어쩌면 윤아보다 더 소녀적인 철부지 여성이다. 그녀는 그동안 받아보지 못했던 그저 따스한 사랑을 기대했을 뿐이다. 

서로 머리를 쥐뜯어가며 싸웠던 주리와 윤아. 서로 다른 환경, 목표를 살며 서로에 대한 관심도 없었지만 각자 아빠와 엄마의 불륜으로 둘의 운명은 얽힌다. 언제나 ‘더 이상 보지 말자’로 이 둘의 만남은 끝나지만 어쩌면 평생 둘의 만남은 이어지지 않을까? 인큐베이터 속 동생 ‘못난이’의 존재는 둘을 그렇게 엮어버린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아니 못난이까지 셋의 인연은 계속될 것이다. 결국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하나의 동지로 변화하게 된다. 

메가폰을 쥔 연기파 배우 김윤석의 놀라운 변신

이 작품으로 가장 큰 발견은 감독으로서 김윤석이다. 선 굵은 연기로 30여편이 넘는 필모그래프를 기록하던 그가 감독으로 나섰다는 소식에 적잖이 놀랐고, 또 그가 연출한 작품이 공개되며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진지하게 작품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2014년 겨울, 젊은 작가와 연출가들의 창작 연극 워크숍에서 시작됐다. 당시 옴니버스로 발표된 여러 작품 중 하나로 미완성이었던 것을 본 김윤석이 이보람 작가를 만나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견을 밝히고, 함께 일년여간의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에 가깝게 만들었다. 남성 감독이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에는 결국 이보람 작가의 공이 컸고 그것들을 받아들인 김윤석의 연출이 빚어낸 섬세한 작업이다.

워크숍 공연에서 가장 염두에 뒀던 것이 주리와 윤아였다고 한다. 애초 원작에서 주리는 남학생이었으나 시나리오 과정을 거치며 여학생으로 바뀌었고, 두 인물이 어른들의 사건을 겪으며 때론 부딪히고, 힘을 모으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만들어냈다.

특히 주리와 윤아 캐스팅을 위한 오디션을 그는 보다 세심하게 진행했다. 연기자로서 또한 연출자로서의 김윤석의 케미가 드러난 장점 중의 하나라하겠다. 일반적으로 프로필을 보고 몇 가지 대사하는 모습을 보는 오디션이 아닌 일대일 대면으로 한 시간 이상 작품 뿐 아니라 일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캐스팅을 준비했다. 본인이 오디션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세밀한 캐스팅 작업을 한 것이다. 서류심사부터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오디션에서 응시자의 생각과 대화를 통해 이어지는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했던 오디션이었기에 완벽한 주리와 윤아가 스크린에 등장할 수 있었다.

ⓒ쇼박스

카메오 출연으로 그려낸 사회비판

주리의 담임인 김선생님은 일상에서 보여주는 선생님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주리에게 윤아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교사의 이중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 열정적이지도 않은 모습에서 학생들의 심리는 안중에도 없는 무능력한 교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을 정리하겠다고 나선 대원이 찾아간 펜션에서 퇴직금을 쏟아 사기를 당한 듯 한 친구의 모습으로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대원에게 삥 뜯는 방파제 아줌마와 동네 양아치들의 모습에 어쩌면 ‘힐링’이라는 미명하에 멍들어가는 시골 마을의 불안한 현실을 담아낸 것은 아닐까?

호기심 그득한 병실 옆 환자 모녀, 전 부인과 딸은 내팽개치고 노름에 빠진 전 남편의 모습에서 사회 속의 비정상적 우리 곁의 사람들을 그려낸다. 하지만 상조회사 아저씨의 등장은 애틋한 마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들은 연극판에서 연기로 잔뼈가 굵은 연기자들로 김윤석감독과는 20년 이상 인연을 맺은 연기자들이다. 특히 오스카의 영광에 빛나는 〈기생충〉의 이정은 배우의 맛깔난 방파제 아줌마 연기는 일품이라 하겠다. 

진정 미성년, 그들은 누구일까?

원작공연에서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70%, 나머지는 어른들의 이야기 였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미성년〉에서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커졌다. 어른들의 사건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오히려 퇴화하는 어른들을 모습을 간 취하게 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원작만큼 미성년의 이야기가 줄어들지 않은 것을 아닐까?

현대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성인들은 세상 속 미성년들보다 못한 모습들이다. 이들을 바라보며 성장하고 있는 미성년들, 그들의 성장과 지혜를 바라보며 우리 자신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 영화 〈미성년〉의 가장 큰 미덕은 아닐까? 무거운 주제임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웃음과 해학으로 버무려진 어른들은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충분히 들려줄 만한 이야기다. 앞으로 연기자로서 김윤석과 또 다른 감독으로서의 김윤석을 오래토록 기대해 볼 만한 이유를 우리는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다.

 


정지욱 _ nadesiko0318@gmail.com
영화평론가, 한국가톨릭문화원 어린이영화제 ‘날개’ 수석프로그래머 겸 집행위원, 일본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 역임, 동아일보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역임, 공저 『천만 영화를 해부하다』 평론시리즈 〈택시운전사〉, 〈신과 함께〉, 〈기생충〉 등이 있음. 

 

*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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