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오늘의 영화 - 엑시트] 재난과 유머의 콜라보, 영화 〈엑시트〉
[2020 오늘의 영화 - 엑시트] 재난과 유머의 콜라보, 영화 〈엑시트〉
  • 양경미(영화평론가,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 승인 2020.09.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J엔터테인먼트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영화는 그동안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루어왔다. 2019년 세계 5위 시장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해외 유수영화제에서 수상해 한국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국내 매출 규모는 2조여 원을 넘겼고 자국영화 극장 점유율은 50%를 상회하고 있으며 누적관객도 2억 명을 돌파한지 여러 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한국영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한국 상업영화가 대중성을 담보로 비슷한 패턴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를 끌만한 흥행 코드에만 집중해 식상한 소재와 스토리가 반복되면서 관객들은 한국영화에 기대와 흥미를 잃고 외면하고 있다. <기생충> 같은 예외를 제외하곤, 실제로 제작비 100억 원이 넘는 대작들이 잇달아 흥행에 실패하고 있다. <기생충>이 개봉 53일 만인 7월에 천만을 넘었으나 극장 최고 성수기로 꼽히는 7월~8월 여름 성수기 흥행성적은 저조했다. 그 두달 간 한국영화의 총 관객 수는 2천 1백만여 명으로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 <엑시트>(이상근 감독)는 한국영화 위기론을 잠재울 수 있는 영화로 평가되고 있다. 7월 31일 개봉해 성수기 어마어마한 물량을 앞세운 블록버스터 영화와 스타 배우들이 즐비한 영화들 속에서 942만 명을 동원하며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유독가스가 도심을 뒤덮자, 청년 백수 용남(조정석)과 대학 동아리 후배 의주(임윤아)가 가족과 손님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후, 용기와 기지로 안전하게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다. 연출을 맡은 이상근 감독은 이 작품이 첫 데뷔작이었고 주연배우 역시 티켓파워가 약한 조정석과 임윤아가 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엑시트>가 큰 성공을 이룬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가스 재난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평범한 주인공들이 관객들의 호기심과 동감을 자극했다. 그동안 많은 재난 영화들이 있었지만 가스 재난은 처음 접하는 소재다. 영화 개봉이후, 비상상황 시, 옥상 대피를 쉽게 할 수 있는 ‘엑시트법’이 발의될 정도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경각심을 줬다. 도심에 유독가스가 퍼지게 되자, 주인공들이 어떻게 재난 상황을 뚫고 해쳐 나왔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취업 못한 백수와 비정규직 사원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도 주효했다. 아무런 능력 없는 주인공들에게는 오로지 대학 때 익혔던 클라이밍뿐이다. 대학 산악동아리에서 배워둔 암벽타기 기술은 유용한 탈출 수단이 된다. 건물과 간판을 타고 오르며 위기에 빠진 가족과 주변인들을 구한다.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타박 받던 취미가 위기의 상황에서는 목숨을 살려내는 중요한 능력으로 변한다. 성인이 되고도 부모 밑에서 기생하며 빈둥대는 신세, 제 밥 법이도 못하는 무능력자의 뜬금없는 맹활약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CJ엔터테인먼트

  재난 탈출 영화지만 재미있는 유머를 결합시키는 새로운 콘셉트 또한 신선하다. <엑시트>는 재난 영화지만 오히려 코미디에 가깝다. 재난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기존의 재난 영화와 같이 눈물과 감동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한국 코미디 영화에서 있어왔던 클리세인 신파가 빠졌다. 어느 시점부터 한국 코미디 영화에서는 웃음을 제공한 뒤, 감동과 눈물을 흘리게 하는 패턴이 자리 잡았다. 재미있게 영화를 보다가도 억지스럽게 감정선을 건드리고 눈물샘을 자극시키는 공식이 생겨났다. 코미디 영화를 보며 마지막에 다다라서 억지감동에 피로감을 느낀 많은 관객들은 기존의 관습에서 탈피한 새로운 패턴의 <엑시트>에서 신선함을 느꼈다. 오로지 탈출하는 과정에만 집중했고 억지 감동보다 웃음과 재미만을 제공하는 과감한 선택이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엑시트>는 웃음 포인트가 예측불가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영화 초반에는 용남(조정석)의 짠내 나면서도 능청스러운 연기에 웃음을 짓는다. 중반부로 넘어오면서는 용남과 의주의 탈출 과정이 웃음 코드가 된다. 재난 영화의 특성상 스토리에 의도적인 난관이 많이 깔려 있는데 탈출을 위해 박스테이프와 쓰레기봉투 그리고 분필 등은 재기 발랄하고 현실감 넘치는 소재가 된다. 또한 극한 상황을 이겨내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위험 상황에서 시시 때때로 변하는 감정이 더해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웃음을 자아냈다. 용남과 의주의 살고자하는 욕망과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부딪히는 순간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다. 

ⓒCJ엔터테인먼트

  청춘들의 현실을 재난에 빗대어 사회문제들 드러낸 점이 돋보인다. 사회 문제를 담았던 기존의 영화와 같이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다거나 화려한 액션이나 스케일을 내세우기보다 웃음과 유머를 기반으로 청춘들의 현실을 재난에 빗대어 보여주고 있다. 대학졸업 후 백수로 지내며 취업 준비 중인 용남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한 집에서 살면서 감당해야 할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으로 취업 원서를 제출하는 그에게는 하루하루가 재난이다. 그런 용남 앞에 뜻밖의 도심 가스재난 상황이 펼쳐지고 그는 생존을 위해 달린다. 마치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빗대기라도 한 듯, 두렵지만 위태로운 순간 그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큰 힘을 발휘한다. 한편,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회 초년생이자 비정규직 직원으로 자신의 안위도 보장 받지 못한 의주는 자신보다 더 약자인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나선다. 작금의 고통 받고 있는 청년취업 문제와 비정규직의 애환을 영화는 녹여낸다. 청춘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힘을 모아 탈출에 성공하는 설정은 청년실업이 사상최대인 암울한 현실 하에서 희망의 빛을 보여주는 것과 같아 관객들의 호응도를 높였다.

ⓒCJ엔터테인먼트

  이상근 감독의 섬세한 연출 또한 관객들을 몰입하게 했다. 신인감독 답지 않게 그는 영화에서 다른 군더더기를 거둬내고 탈출에 포커스를 맞췄다. 어쩔 수 없이 상업영화의 특성상 장르의 클리셰를 가져오긴 했지만 감독 자신만의 호흡과 뚝심을 보여줬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가스가 퍼진 도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탈출하는 용남과 의주에만 집중시켰다. 기존 재난 영화에서 봤을 법한 대규모의 가스 테러 현장, 가스에 질식된 시체들, 감성을 자극할 만한 숏과 신은 배제되었다. 가스테러범의 구체적인 사연도 없고 가스테러범을 잡으려하지 않는다. 탈출과정이 지루하지 않고 몰입감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똑같은 상황과 탈출방법이 반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물의 간판, 벽돌, 로프 등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어 장면마다 다채롭고 배우들이 보여준 액션장면, 탈출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주인공들을 보는 쾌감이 있다.

  신인감독과 티켓파워가 강하지 않은 배우가 출연한 영화에 무려 9백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것은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상업영화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영화는 진부한 포맷과 패턴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참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한국영화 위기론을 극복해야 한다. 늘 그렇듯 새로운 콘셉트를 시도하고 이야기가 재미있는 영화에 관객들은 몰릴 수밖에 없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시대를 읽어낼 줄 알고,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콘셉트를 보여주는 기획과 제작만이 국제적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영화를 살아남게 할 수 있다.


양경미 _ film1027@naver.com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전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분류심의위원,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인정소위원, 디지털문화예술대학교 교수 및 학과장 역임. 현재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