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오늘의 영화 - 82년생 김지영] 우리 시대의 아픔을 다룬 영화
[2020 오늘의 영화 - 82년생 김지영] 우리 시대의 아픔을 다룬 영화
  • 최준란(문화콘텐츠비평가, 한국외대 겸임교수)
  • 승인 2020.03.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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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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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은 1982년도에 태어난 ‘김지영’이라는 평범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가면서 보여주는 영화다. 인간의 삶에는 시대마다 아픔들이 있다. 당시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혹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너무나 크다는 이유로 묻어두었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영화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표상적인 인물이 온몸으로 겪은 우리 시대의 여러 아픔들을 다루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태어난 ‘82년생’들은 민주화라는 큰 회오리가 한국 사회에 서서히 뿌리를 내릴 때 초등학생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IMF를 맞았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이자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야 할 시기에 사회의 큰 위기를 보게 된 것이다. 영화 속 김지영의 아버지도 이때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퇴사하고, 언니 김은영은 원래의 꿈을 접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을 생각으로 교대에 진학한다. 김지영은 2000년대 초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다. 아이가 생기면서 김지영은 퇴사를 하고, 아이를 키우며 경력 단절 여성으로 살아간다. 물론 2000년대 후반에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과 노동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통해 나름의 해결책을 만들어냈다.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육아휴직 제도가 그중 하나다. 그러나 영화는 그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겪은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시대적 아픔들을 던져주는 소재로 남성이라는 존재를 보여준다.

첫 번째 남성은 지영의 아버지이다. 지영이가 버스에서 사건을 겪은 날, 놀란 지영이가 보낸 문자를 받고 도착한 아버지의 첫 마디는 ‘괜찮냐’,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라는 위로가 아닌 ‘네가 조심해야지’와 ‘치마가 짧다’, ‘학원을 왜 멀리 다니느냐’는 지적이다. 이 장면은 지난 우리 사회가 공유했던 성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인이 된 김지영이 병을 앓은 데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만 한약을 챙겨준다든가, 아들이 좋아하는 단팥빵을 딸인 지영이 좋아한다고 착각해 사오는 등 아들에 대한 편애가 지영에게는 정체성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것이 지영이 병을 앓게 된 원인이 아버지 개인에게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의 특징이지만, 피해자는 김지영이 분명한데 가해자는 영화 속 개별 인물들이 아니라 개개인의 잘못을 넘어선 사회구조와 사회 저변에 퍼진 관념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결국 수많은 개개의 피해자들을 만들고, 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이다.

두 번째 남성은 고등학생 시절 김지영이 버스에서 만난 남학생이다. 영화 속에서 이 남학생은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김지영의 뒤에 바짝 붙어 서 있다가 따라 내린다. 대화도 없는 걸 보니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 그냥 무작정 따라오는, 분명한 폭력을 보여준 인물이다. 남학생의 이런 행동은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를 반추해볼 수 있는 문제다. 그 시대 남학생들 사이에 퍼져 있던 인식, ‘남성은 이런 식(?)으로 여성에게 접근해도 된다’는 관습이 일상적이었던 사회상 말이다. 이런 남학생들이 자라서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끄는 세대가 되어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br>
ⓒ롯데엔터테인먼트

세 번째 남성은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아이와 함께 카페에 간 김지영에게 ‘맘충’이라고 손가락질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여성도 있었다. 사실이 장면 말고도 영화 구석구석에는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김지영의 남편인 대현(공유 분)이 회사 동료들에게 에둘러 고민을 이야기할 때, 김지영이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 있을 때 여기저기서 여성을 향한 비하적인 발언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이런 장면들은 지난 시대의 차별적 관념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퍼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네 번째 남성은 김지영을 담당한 정신과 의사로, 앞서 말한 세 남성들과는 다르다. 그는 김지영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세상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며 자신이 ‘의식 있는 남성’임을 강조한다. 김지영의 남편 대현도 마찬가지다. 누구보다도 아내를 잘 이해해준다. 즉 〈82년생 김지영〉은 폭력적이지 않은, 심지어 착한(?) ‘평범한 남성들’이 미
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경고하고 있다. 즉 여성들이 차별과 폭력의 피해를 호소할 때 ‘괜찮아’라는 말로는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고, 가만히 있으면서 변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결국 당신도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영화는 동명의 원작 소설이 있다. 2010년대 소설 중 유일하게 출간 2년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였으며 영국・일본 등 17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한마디로, 시대를 상징하는 매우 대중적이고 주류적인 소설이라는 뜻이다. 어느 인터넷 서점 집계에 따르면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동명의 영화 개봉 일주일 만에 직전 동기간 대비 판매율이 99% 증가했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의 자리에 올랐다. 2017년 6월 1일 영화화 소식이 알려진 후 일주일간 판매량은 직전 동기 대비 25% 증가했고, 정유미와 공유 등 주연배우 발탁 소식에도 각각 286%, 134% 늘었다고 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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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는 내용 면에서 차이가 있다. 책은 화자인 40대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로 끝마친다. 책은 끝까지 분위기가 우울하지만,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영화의 결말에는 김도영 감독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본다.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사회적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김도영 감독은 〈82년생 김지영〉에 앞서 2018년 단편영화 〈자유연기〉에서 실제 배우로 활동하다가 육아로 인해 배우 생활을 잠시 중단했던 삶을 그려내 서울 국제여성영화제서 상을 받았다. 이 같은 감독의 경험이 첫 장편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2019년 〈82년생 김지영〉으로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라는 조남주 작가의 이력도 남다르다. 그래서인지 소설에 사회적 이슈가 담긴 것 같다. 이 작품은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고 반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금의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2017년에는 ‘김지영법’이라 불리는 ‘남녀 임금 차별 방지법’,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 개정안’이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에 의해 발의되었고, 2018년에는 국내 ‘미투운동’의 상징이 된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며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하기도 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선 소설책은 2018년 12월에 일본에 소개된 뒤로 판매부수가 2019년 말 기준 14만 부를 넘었으며, 이는 지금까지 일본에 번역 출판된 한국 문학 작품 중에서 판매부수 1위다. 소설은 계속해서 관심을 받으면서 일본의 ‘페미니즘’과 연동되었다. 2019년 6월 배우 이시카와 유미가 “오랫동안 일본 여성들은 취업 과정에서 하이힐 착용이 의무인 경우가 많았다”며 여성 하이힐 해방을 주창하는 ‘쿠투Ku-Too운동’을 외치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쿠투운동은 구두를 뜻하는 일본어 ‘쿠츠靴’와 고통을 의미하는 ‘쿠츠苦痛’를 ‘미투(#MeToo)운동’과 합쳐 만든 신조어다. 이시가와 유미가 트위터에 쓴 하이힐 착용 강요에 대한 폭로가 ‘직장에서 하이힐 신지 않는 운동’의 청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2019년 여름, 일본 문학잡지 《분게이(文藝, 문예)》에서는 2019년 가을호에 실을 아주 특별한 기획을 준비하였다. 조남주 작가와 한강 작가의 단편들과 『82년생 김지영』을 번역한 일본 번역자의 대담을 실은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키워드를 소개했는데 서울, 짜장면, 유교 외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잡지는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잡지 판매는 성공이었다. 1933년 잡지 창간 이후 처음으로 1쇄 8천 부, 2쇄 3천 부, 3쇄 3천 부 등 총 1만 1천 부를 찍었는데, 구매자의 50퍼센트가 남자라고 한다.

중국에서의 반응은 어떤가. 영화의 원작 소설이 중국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었다. 전근대시기에 중국도 남존여비 사상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1920년을 전후로 신문화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 해방의 목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공산당은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한 이후에도 남녀평등을 계속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중국에서 평등은 젠더적 측면에서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 여성을 노동자나 생산자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던 중 1970년대, 1980년대 들어 개혁 개방이 시작되고 시장경제 체제가 도입되면서 여성들은 경제적인 압력에 노출되었다. 가사노동과 육아 부담이 여전히 여성에게 짐 지어진 가운데 중국 여성은 이제 노동시장에서도 우선퇴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불평등은 1990년대 페미니즘 이론의 수용과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담론들이 확산되면서 문제점으로 크게 지적되고 있다. 중국 웨이보에서 ‘여성의 목소리女生之声’라는 채널이 인기를 끌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중국에 소개되고 중국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남성 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인 구조가 뒤엉켜 만들어진 문제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한국만의 특수 상황이 아니다. 한국을 넘어 일본, 중국, 그리고 전 세계로 사회적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최준란 _ chran71@hanmail.net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문화콘텐츠학 박사. 영화 팟캐스트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진행 중.

 

*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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