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오늘의 영화 -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제야 한 편의 영화가 끝났다
[2020 오늘의 영화 -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제야 한 편의 영화가 끝났다
  • 송경원(영화평론가, 씨네21 기자)
  • 승인 2020.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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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느 날부턴가 슈퍼히어로가 극장을 점령했다. 21세기 대중상업영화의 경향을 정리할 때 그 첫 줄은 당연히 ‘슈퍼히어로 영화’의 몫이다. 한 때 조금 특별한 소재 정도로 인식되던 슈퍼히어로물은 세계관을 확장해가며 어느덧 할리우드 프랜차이즈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이는 복합적인 변화의 결과물이지만 산업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면 몇 가지 원인을 추려볼 수 있다. 우선 결정적인 변화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CG)의 급격한 발전에서 시작된다. CG로 무엇이든 구현 가능한 기술적 성취는 물론이거니와 제작비용까지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할리우드 영화 산업은 자연스레 찍는 영화에서 그리는 영화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말 주류를 이루던 드라마와 액션물은 21세기 접어들면서 판타지, SF 등 상상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표현하는데 적극적으로 변모했고 그 때 조건에 부합한 소재가 다름 아닌 코믹북 원작의 슈퍼히어로들이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대세로 자리 잡은 데는 결정적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세계관을 종횡으로 확장하기 용이하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들은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탐닉하고 속편의 갈증에 시달린다. 한편이 성공하면 연달아 속편과 시리즈로 이어지는 건 자본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방대한 세계관과 콘텐츠를 갖추고 있는 코믹북은 매력적인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그 정점에 바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있다. 단순히 이어지는 속편을 넘어 세계관을 공유하고 종횡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이 영리한 개념은 스튜디오에게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일단 어느정도 세계관에 익숙해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수밖에 없는, 이전엔 접하지 못한 강력한 연속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물론 일련의 연속극 형태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TV 드라마에서는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방식이었지만 적어도 영화에서는 이렇게 유기적이고 끈끈한 세계관의 연결이 이뤄진 적이 없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이전에 없었던 모델들을 끊임없이 개척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물론 처음부터 이토록 장대한 세계관을 꾸려나갈 계획은 아니었을 것이다. 2008년 <아이언맨>의 “내가 아이언맨이다.” 한 마디로 시동을 건 마블 시네마틱의 우주는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확장을 거듭하며 11년의 세월을 이어왔다. 그리하여 2019년, 마침내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을 통해 그 대단원의 막을 열었다. 사실 <엔드게임>을 개별 영화로 바라보는 건 그리 유의미한 접근이 될 수 없다. (애초에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온전히 한 편의 영화로 평가한다면 이 영화는 그저 그럼 범작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작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와 비교해도 여러 지점에서 상당히 아쉬운 면모를 드러낸다. <인피니티 워>가 발상을 뒤집어 타노스를 중심으로 히어로들의 역학관계를 재배치했다면 <엔드게임>은 벌려 놓은 이야기들을 수습하는데 공을 들인다. 전 우주를 무대로 하면서 흩어진 이야기들을 모아나가는 방식 역시 <인피니티 워>가 <엔드게임>보다 좀 더 영리하고 실수가 적다. <인피니티 워>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대단원의 서막답게 이야기의 탁월한 균형 감각이 빛난다. 반면 <엔드게임>은 서사는 좋게 말해 안정적이고 나쁘게 보자면 다소 밋밋하다. 우연과 행운이 남발되는 등 이야기의 구멍이 꽤 있는 편이고 토니의 장례식과 캡틴의 은퇴 등 후반부 사족도 적지 않게 늘어진다. 무엇보다 <인피니티 워>가 깔아놓은 무대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놀라움을 제공하지 못한다. 

  <엔드게임>을 철저히 개별영화로 논하자면 무난한 완성도의 기획영화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 영화는 3시간의 상영시간이 기계적인 조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1시간 분량의 에피소드가 3편 연속으로 붙어있는 형태다. 첫 1시간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전 우주의 절반이 날아간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감을 다룬다. 이에피소드는 한적한 행성에서 소임을 마치고 농사를 짓고 있는 타노스의 목을 날려버리며 시작하는데, 거의 <인피니티 워>의 에필로그 혹은 피날레처럼 보일 정도다. 그리고 영화는 폐허가 된 상황에서 다시 시작된다. 문제의 원인을 제거했지만 상처는 회복할 수 없고 남겨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버텨야만 한다.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이렇게 무겁고 정적인 분위기로 시작하는 건 이례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전작에서 한껏 끌어올렸던 피날레의 분위기를 차분히 가라앉힌다는 점에서 영리하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이어지는 1시간은 시간여행을 통해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오는 미션을 보여주는데 <어벤져스> 초창기의 아기자기한 맛이 살아있는 에피소드다. 무엇보다 이 파트는 11년을 이어온 팬들을 위한 서비스라는 인상이 강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 숨겨진 얼굴을 다시 대면하는 건 개별영화 바깥으로 체험을 확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대단원의 1시간은 그야말로 블록버스터답게 물량을 쏟아 붓는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미리 본 미래의 계획이 발동하여 모든 히어로들이 한 자리에 집결할 때 짜릿한 전율이 관통한다. 이건 <엔드게임>의 피날레가 아니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11년 동안 준비한 피날레로 봐도 무방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엔드게임>은 그 어떤 영화도 제공하기 힘든 환희와 쾌감의 순간을 관객(정확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함께 해온 팬들)에게 선물한다. 이건 지난 11년간의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어쩌면 반칙 같은 감동이다.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엔드게임>이 현재 영화계에서 지닌 위상과 의미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이것은 더 이상 한 편의 영화가 아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자체가 11년의 세월동안 이어져온 일종의 연속극에 가깝다. 어쩌면 TV에서 길어도 한 주 간격의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던 것이 스크린에서 훨씬 긴 호흡으로 옮겨온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TV에서 스크린으로, 한 주에서 몇 개 월 씩의 간극으로 바뀐 포맷을 이어간다는 건 단순히 플랫폼을 옮긴 차원의 변화가 아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우주의 탄생이라 할만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11년의 세월동안 개별영화 간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관을 이어 붙여 거대한 우주를 창조했다. 이건 단순히 설정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차원을 넘어 관객의 시간과 경험을 동반하는 실시간의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은 일견 매우 느슨하면서도 강력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개별영화로 작동하면서도 관객의 의지에 따라 유기적으로 이어 붙일 수 있는 고리들을 곳곳에 심어두었다. 가령 <엔드게임>에서 과거로 돌아간 토니 스타크가 아버지를 대면하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아이언맨 3>에서 홀로그램으로 가족을 추억하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아스가드르에 돌아간 토르의 모습을 보며 <토르> 시리즈 전반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이 쯤 되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새로운 종류의 어트렉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경험을 각각의 영화로 분리하여 설명하는 게 가능한가.

  <엔드게임>이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라고 칭송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이른바 세계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아니 <엔드게임>은 비록 영화라는 이름의 형식과 껍질, 영화산업의 육체를 빌리고 있지만 이미 ‘(전통적인 개념의) 영화가 아닌 어떤 것’이다. 21세기 프랜차이즈의 결과물을 보며 새로운 종류의 체험이 당도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엔드게임>, 정확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구축한 세계를 전통적인 영화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건 코드가 맞지 않는 선을 꽂는 것에 불과하다. 혹은 전통적인 영화의 잣대로 볼 때 이 영화는 평가 절하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에겐 게임의 규칙이 필요하다. <엔드게임>은 11년간의 대장정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사실 <엔드게임>의 끝은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씨앗을 뿌린, 빅뱅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우주가 문을 닫고, 바야흐로 새로운 우주들이 다시 깨어나려 하고 있다. 


송경원 _ sokimera@naver.com
씨네21 기자.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평론가로 데뷔. 2012년 동국대 영상대학원 영화이론 박사과정을 수료.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간사로 활동, 2011년부터 부산일보 영화상, 부천국제영화제,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등 심사위원 역임. 현재 유튜브 채널 무비썸을 진행 중이며 영화 뿐 아니라 게임,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평도 병행.

 

*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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