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오늘의 영화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그 시절, 그 사람을 위로하는 판타지 미학
[2020 오늘의 영화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그 시절, 그 사람을 위로하는 판타지 미학
  • 이종현(한신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0.04.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니 픽처스 코리아

영화는 판타지fantasy다. 흔히 영화의 효시로 ‘오해’되어 왔으나, 실은 1895년 12월 28일 그 역사적 상영회 10편 안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열차의 도착〉을 목도한 관객들의 일화가 있다. 진짜 기차가 도착하는 줄 알고 사람들이 도망갔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루머일 수 있으나, 영사막에 재현된 움직이는 사물을 본 영화사의 첫 관객들은 그 스펙터클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당시 현실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생경한 광경이기에 그렇다. 현대의 영화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독일군에게 총살을 당하러 가는 아버지가 아들을 안심시키려고 행하는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크리스마스에 홀로 집에 남아 도둑과 사투하는 유쾌한 소동도 모두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을 판타지다. 우리의 현실엔 긴 생머리를 넘기며 청초하게 눈물 흘리는 엽기적인 그녀가 없으며, 이별 앞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다소 낭만적인 대사를 읊을 수 있는 여유도 없다. 이렇듯 영화는 현실에서 보지 못할, 일어나지 않는 장면과 이야기를 스크린에 수놓는다.

대중의 욕망을 담아내는 ‘장르’는 그 자체로 판타지다. “장르영화는 문화적 가치와 관심사를 상징적 서사로 그려낸다.” 장르영화는 할리우드 산업 시스템의 산물로 대중의 집단적 욕망이 그대로 투영되고 충족된다. 장르영화에는 그 시대의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와 스타일이 담기기 마련이고, 정형화된 양식으로 발전한다. 대중의 욕망이란 현실에 없는 사랑의 결실이나 인류의 구원과 같은 해피엔딩, 즉 판타지다. 결국 장르영화는 대중의 결여된 판타지적 욕구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영화적 요소를 총동원한다. 이런 의미에서 할리우드의 여러 장르를 관통하고, 장르의 변주를 보여주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대표적인 판타지스트fantasist다. 장르를 가지고 놀뿐더러 장르 공식을 변형시키고 전복시키는 전위적인 행위를 실천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환상적이란 말인가. 전공 장르인 액션을 기반으로 B급 감성과 특유의 유머코드를 섞어내고, 여성 혹은 흑인과 같은 주인공 캐릭터의 변형, 동양 문화에 대한 오마주 등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 미학을 구축한다.

ⓒ소니 픽처스 코리아

이 선구적 판타지스트가 오랜만에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를 들고 관객을 찾았다. 공공연하게 열편의 장편영화를 끝으로 은퇴할 것임을 밝혀왔던 터라 그의 아홉 번째 장편영화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쏠린 대중의 관심은 상당하다. 타란티노의 마니아들은 ‘드라마’라는 다소 밋밋한 장르와 전형적인 선형의 이야기 전개, 약해진 폭력 코드, 긴 러닝타임 등 전작에 비해 타란티노의 색깔이 바래졌다고 실망감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일보 후퇴 혹은 세계관의 확장을 위한 한 걸음의 양보이다. 어쩌면 타란티노는 또 다른 장르의 변주를 이미 구현한 것일 수도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는 극단적 폭력성과 변칙적 플롯구조의 느슨해진 틈바구니 사이로 우회적 장르 문법과 위로 코드가 깃든다. 좀처럼 타란티노와 어울리지 않는 특징들이만, 그렇기에 더 재밌는 판타지가 된다. 

사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영원한 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를 한 앵글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비운의 여배우 ‘샤론 테이트’를 완벽하게 구현한 마고 로비의 아름다운 자태 역시도 환상적이다. 무엇보다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 할리우드 풍경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배우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타란티노의 시선이 흥미롭다. 1969년 할리우드는 매체권력이 영화에서 텔레비전으로 넘어가고, 자존심이었던 웨스턴 장르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격변기를 맞이한다.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한물간 액션 스타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과 그의 스턴트 배우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 분)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노력하지만 녹록치가 않다. 시류가 변해버린 할리우드에서 과거의 연기 양식과 액션 스타일을 고수하는 두 사람이 설 곳은 점차 협소해진다. 옛 것이 되어버린 두 사람은 브라운관에 밀려나는 스크린처럼, 냉정한 할리우드 상업주의의 도태를 그저 담대하게 받아드린다.

물론 스타로서의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릭 달튼은 체면을 차리려는 위장이었을 뿐, 실상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속앓이를 한다. 그는 제 경력에 맞지 않는 저속한 스파게티 웨스턴 출연 제의에 치욕을 느낀다. 클리프 부스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우는 그의 모습은 할리우드 스타의 명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선글라스를 씌어주며 멕시코인 앞에서 울지 말라는 클리프 부스의 무심한 위로는 기울어가는 할리우드와 미국 문화 전반에 대한 포용이었을까?(위로 코드의 관점에서 타란티노 감독의 페르소나는 클리프 부스일 것이다.) 사실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는 그 당시 할리우드와 미국 문화의 표상으로서, 영화는 그들의 노고를 조명하면서 위기의 할리우드와 미국 문화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클리프 부스는 할리우드 액션의 판도를 동양의 것으로 바꿔버린 ‘부르스 리’와 대련하여 제압함으로 할리우드식 액션의 자존심을 지켜낸다. 또한 영화는 버려진 서부극 세트장에 기거하는 ‘맨슨 패밀리’처럼, 당시 미국에 기생하는 히피 문화를 노골적으로 경시하며 미국 문화의 찬란함을 과시한다.

ⓒ소니 픽처스 코리아

한편 오랜만에 찾은 영화 촬영 현장에서 릭 달튼의 서러움은 폭발한다. 악역 조연인 것도 모자라 감독은 저질스런 히피 분장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비참한 것은 연거푸 대사 NG를 내는 제 자신의 연기 역량이다. 자괴감에 미쳐 날뛰며 분장실에서 분노의 포효를 하는 릭 달튼. ‘구제불능’, ‘개코 원숭이’ 등 온갖 거친 말로 자학하는 릭 달튼의 모습에서 타란티노 특유의 ‘수다’가 느껴져 웃음이 나지만, 옛 것의 장렬한 최후를 보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격변의 파고 속에서 안간힘을 내는 릭 달튼을 차가운 현실에 방치하지 않는다. 자학 이후 다시 카메라 앞에 선 릭 달튼은 영화 속 감독의 표현대로 사악한 햄릿처럼 감정을 즐기는 명연을 선보이며 촬영을 완수한다. “배우의 본분은 100%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연기철학 확고한 여덟 살 대배우에게 찬사까지 받아낸다. 타란티노가 릭 달튼에게 선물하는 달콤한 판타지의 순간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판타지는 바로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이다. 알려진 것처럼 영화는 그 당시에 일어났던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사건은 변종 히피 문화의 광신도 집단인 맨슨 패밀리가 할리우드 찰나의 꽃이었던 여배우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 분)를 무참하게 살해했던 참사이다. 이 사건에 대한 배경 지식의 유무가 영화 보는 즐거움의 편차를 좌우할 만큼, 타란티노는 이 모티브 사건을 효과적으로 연출하여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맨슨 패밀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영화 전반에 걸쳐 음습한 스릴러를 자리하게 한다. 잠재적 살인 집단의 미장센은 히피 문화의 유니크함을 혐오스러움으로 탈바꿈시키고, 그들의 비밀스런 사회 체계는 시종 긴장감을 유발한다. 클리프 부스가 맨슨 패밀리 거처를 방문하는 시퀀스는 낮게 깔린 긴장감이 서서히 올라와 목을 조르는 서늘한 스릴러의 백미를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샤론 테이트의 자태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기생충처럼 파고드는 묘한 서스펜스 역시 자못 참신하다. 샤론 테이트가 할리우드 거리를 여유롭게 거닐 때나, 극장에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을 때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상을 안겨준다. 하지만 모티브 사건의 역사적 사실은 그녀의 끔찍한 최후를 상기하게 하고, 비극이 초래할 깊은 탄식과 불안함을 동반한다. 파국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 탄 관객들은 샤론 테이트가 아름다울수록 안타까워지는 기묘한 서스펜스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 타란티노는 관객의 바라지 않는 기대를 철저하게 깨버린다. 실제 사건을 교묘하게 비틀어, 정신 나간 히피족들이 살해를 위해 찾아간 집을 릭 달튼의 저택으로 바꿔버린다. 즉 알려진 사건의 결말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수정하는 묘수를 둔다.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 스타 브래드 피트를 마주한 살인자들을 보며 관객은 안도감과 통쾌함에 미소 지을 것이다.

타란티노의 전매특허인 예술적 폭력이 집약된 결말부는 맨슨 패밀리에 대한 복수극이다. 현실에서 하지 못한 통렬한 심판을 영화 안에서 이루어낸다. 희생 당한 샤론 테이트에 대한 구원이자, 그녀를 추억하는 할리우드 팬들에 대한 심심한 위로이다. 그렇기에 잔인한 액션 장면임에도 꽤나 감상적이다. 릭 달튼이 자신의 영화에서 나치군을 처단한 것처럼, 화염방사기로 히피족을 불태워 죽일 때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카타르시스마저 치솟는다. 영화는 결전 이후 무사한 샤론 테이트가 릭 달튼을 집으로 초대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 속에서만큼은 샤론 테이트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릭 달튼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며 재기하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행복한 결말이다. 이처럼 타란티노는 판타지를 통해 다른 차원의 장르적 쾌감을 선보이고, 개인적인 향수를 담아 그 시절, 그 사람들을 위로한다. 이것은 영화가 지닌 판타지의 힘이고, 명장의 품위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실은 판타지가 아니다. 

 


이종현 _ feelleejh@naver.com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화콘텐츠학 박사. 현재 한신대학교 디지털영상문화콘텐츠학과 초빙교수.

 

*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