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Theme] 스물세 살의 프리마돈나, 조수미
[3월 Theme] 스물세 살의 프리마돈나, 조수미
  • 한정원(클래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01 0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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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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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기 전, 완벽한 공연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분장실 안, 그녀는 화원에 들어와 있는 듯 앉아 있다. 수많은 축하 꽃다발과 부케로 가득 찬 무대 뒤 한적한 방이다. 방 안을 가득 메운 꽃향기에 황홀을 넘어선 고요의 순간이 잠깐 찾아온다. 트리스테 극장장의 아름다운 화환, 친구들의 정성스런 축전, 보렐리 선생님이 보낸 꽃다발도 보인다. 공연 시작 전의 가벼운 설렘과 떨림의 순간에도 그녀는 무대에 쓰고 오를 질다의 가발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1986년 10월 26일. 나이 스물셋의 조수미가 생애 최초로 국제무대에 발을 내딛던 날이다. 그녀는 이탈리아 5대 오페라 극장 가운데 하나인 트리스테의 베르디 극장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첫 공연 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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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조수미는 1962년 11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조수경이다. 서울대학교 성악과 재학 중 이탈리아로 유학하여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2년 후 그녀는 나폴리에서 열린 존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였고, 시칠리 엔나 국제 콩쿠르,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란시스 비냐스 국제 콩쿠르, 이탈리아 베로나 국제 콩쿠르 등을 석권하면서 음악 중심지 유럽에서 거장으로서의 새로운 발판을 다져나갔다. 1986년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데뷔하였으니 이제 세계무대 35주년을 훌쩍 넘겼다.

아주 오래전, 오페라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그녀의 명성은 역으로 한국으로 전해졌다. 당시 그녀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2막에 나오는 ‘밤의 여왕’ 역을 도맡다시피 했다.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 두 곡은 소프라노라면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불러보고 싶은, 그렇다고 아무나 부를 수 없는 고난도 테크닉이 필요한 노래이다. 서양인들에 비해 가녀린 몸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그녀는 불꽃 같은 고음과 맑고 화려한 콜로라투라 목소리로 늘 무대를 압도하였다. 정통 벨칸토 테크닉으로 부르는 ‘밤의 여왕’은 단연코 그러한 압도적 순간의 최전선에 있다. 명 지휘자였던 카라얀은 그녀 목소리를 일컬어 ‘신이 내려준 목소리’라 찬사를 보냈으며 주빈 메타 역시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SMI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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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악기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세계정상에 오르는 데는 수많은 난경難境이 동반되게 마련이다. 또 오랜 시간 정상을 지키는 데에는 지금보다 수십배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하루라도 긴장을 늦추고 게을러지면 어렵게 얻은 정점의 자리가 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느슨해진 태도와 그로 인한 오만이 힘들게 오른 산에서 미끄러지는 순간을 가져올 것이니까 말이다.

성악가에게는 당연히 ‘몸’이 악기다. 소리는 악기의 상태에 따라 하늘과 땅처럼 달라진다. 좋은 연주를 위해서는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잠시라도 건조한 곳에 노출되면 다음날 목소리가 갈라지고, 배부른 식사는 고음을 낼 때 고전을 면치 못하게 한다. 우리의 몸은 섬세한 센서와 같아 하루만 잠을 설쳐도 맑고 고운 소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연주자는 평상시에도 고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늘 무대에 서는 오페라 가수의 목소리는 호수에 비유될 수 있다. 잔잔한 호수에 바람이 살랑이거나 나뭇잎 하나만 떨어져도 커다란 파문이 일듯이 목소리도 그러하다. 어떠한 방해도 없는 고요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잔물결 하나 일렁임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만 최상의 상태로 최고의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소리에 민감한 청중들의 귀는 그 작은 차이마저도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SMI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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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아이콘 조수미

세계를 향해 무한 질주하던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조수미는 지난해 10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초빙석학교수로 임명되었다. 오는 3월 신학기부터 음악학도가 아닌 공대생들을 가르친다. 이번 조수미 석학교수 초빙은 카이스트를 세계 초일류대학으로 키우고자 하는 이광형 총장의 고안품이다. 세계 정상에 선 음악가의 경험과 도전정신을 가까이서 보고 배움으로써 학생들은 자신감을 얻게 되고,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녀는 포르투갈 체류 중에 온라인 화상 임명장 수여식에서 “예술인으로서 기술과 감성이 함께하는 세상을 실현하고, 진화하는 과학기술의 혜택을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돕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제 조수미 교수는 카이스트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상대로 리더십 강의를 맡는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음악 연주, 공연 제작, 무대 연출 기술에 관한 응용 연구를 문화기술대학원 남주한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조수미 공연예술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카이스트 교수 및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융합연구를 추진한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그녀는 데뷔 35주년을 돌아보면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이 무지치ⅠMusici 실내악단과 함께 기념비적인 공연을 가졌다. 이탈리아어로 ‘음악가들’이란 뜻을 품고 있는 ‘이 무지치’는 전단원 모두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 출신의 연주가들로서 창단 70주년을 맞았다. 조수미와 이 무지치는 서로 특별한 해를 기념하면서 바로크 앨범 《LUX3570》을 데카 레이블로 발매한다. 지난 1월 6일에는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인공지능AI 피아니스트 비르투오소넷VirtuosoNet과 협연하는 〈I am a KAIST〉 공연을 가졌으며,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연구원에서 한 해를 빛낸 인물에게 수여하는 2022 ‘한국이미지상’ 주춧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더욱 반가운 소식은 내년 여름 프랑스에서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Sumi Jo International Singing Competition in Castle 첫 대회가 개최된다는 것이다. 그녀가 국제무대 데뷔 후 35년 동안 세계 음악 발전에 기여한 노고를 높이 평가받은 결과이다. 현지에서는 이미 창설 준비위원회가 발족하여 대회를 위한 세부작업을 진행중인데, 젊고 재능있는 신진 성악가를 세계무대로 진출시키는 등용문이 되기를 모두 기대하고 있다. 조수미는 자신의 큰 미덕이 자신감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타고난 목소리와 음악성, 끊임없는 노력으로 일구어낸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이 자신감의 근원일 것이다. 맑고 투명한 음색의 금세기 최고 콜로라투라로 평가받고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 성악인으로서 세계적인 자리에 오른 문화예술 분야의 아이콘 조수미. 이제 그녀는 한국의 이미지를 알리는 문화 대통령으로 더욱 광폭의 발걸음을 떼려 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한정원
피아니스트.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대학교에서 독주와 실내악을 전공하고,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을 마쳤다. 이태리 디노치아니 국제콩쿨 특별대상을 받았고, 유럽을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하던 중 귀국하여 십여 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일송출판사에서 악보해설집을 출간하였으며, 현재 국내외로 많은 연주 활동 중이다.

 

* 《쿨투라》 2022년 3월호(통권 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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