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Theme] ‘예능 대통령’ 유재석이 가진 힘
[3월 Theme] ‘예능 대통령’ 유재석이 가진 힘
  • 안진용(문화일보 기자)
  • 승인 2022.03.01 0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테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

지난해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모은 후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깐부 할아버지’ 배우 오영수는 MC를 맡고 있는 유재석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하며 악수를 건넸다. 〈놀면 뭐하니?〉는 숱한 러브콜을 받은 오영수가 유일하게 선택한 프로그램이다. 그 배경에는 유재석이 존재한다. 일면식도 없지만, 막상 만나면 스스럼없이 인사를 주고받고 말을 섞을 수 있을 것 같은 존재. ‘예능 대통령’ 유재석이 가진 힘이다.

유재석이 높이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지속성’이다. 수많은 스타가 명멸하는 방송가, 그 안에서 1년 이상 그 인기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주 작은 설화 하나에도 끝없이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재석은 2000년대 초반 KBS2 〈해피투게더〉, MBC 〈동고동락〉, SBS 〈X맨을 찾아라〉 등을 통해 메인 MC 자리에 오른 후 20년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지난해에도 ‘2021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으며 MBC에서 8번, SBS 6번을 비롯해 KBS,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통산 18관왕에 올랐다.

‘국민 MC’라는 불리는 그의 장점은 무엇일까? 남다른 언변, 그의 ‘입’에 주목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그의 ‘귀’다. ‘적게 말하고 많이 들으라’는 의미에서 입이 1개, 귀가 2개라는 말이 있듯, 유재석은 타인의 말을 경청한다. 이를 두고 명강사로 유명한 김미경 씨는 한 강연에서 그를 향해 ‘귀 명창’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유재석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방송 중에도 몇 마디 촌철살인 멘트로 웃음을 이끌어 낼 뿐, 장황한 말로 주도권을 쥐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 흔한 SNS도 하지 않는다. SNS를 통해 저마다 세상살이에 대해 한 마디씩 보태는 세상에서 유재석은 오히려 말을 아낀다.

하지만 그는 항상 귀를 열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에 그는 신문을 정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지근거리에 있는 매니저가 직접 “유재석은 매일 신문 3~4개를 읽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방송인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일일이 모니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상의 자리에 서 있지만, 그는 항상 주위를 살피며 배우려 노력한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는 스타가 몰린다. 오영수가 그랬듯, 배우 정우성·황정민·이영애·김태희·이나영, 그룹 BTS 등 좀처럼 예능 출연이 뜸한 이들도 유재석이 진행하던 〈무한도전〉이나 〈놀면 뭐하니?〉,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에는 참여했다. 이 역시 항상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적절한 리액션을 해주는 그의 진행방식 때문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평소 친분이 없던 스타들도, ‘유재석과 대화를 나누면 편하다’고 이야기한다. 예능에 출연하면 ‘웃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피하게 되는데, 유재석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잘 들어주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이끌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고 말했다.

유재석의 이런 진행 능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부분 비非 연예인이다. 전문 방송인이 아니라는 의미다. 방송의 문법에 서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재석은 그들과 어우러져 바로 어제 만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출처_유퀴즈 MBC

지난 2월 9일 방송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그의 배려 있는 대화는 특히 빛을 발했다. 45년째 지게를 지고 있는 설악산의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 씨가 초대손님으로 나섰다. 60대 나이, 158cm, 62kg의 작은 체구로 산을 타며 비룡폭포 6천 원, 비선대 8천 원, 흔들바위 2만 원, 대청봉 25만 원의 품삯을 받는 임 씨는 그동안 1억 원이 넘는 거액을 기부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보호소에 맡긴 후 기부를 시작했다는 임 씨가 “애들 간식거리나 독거노인 쌀을 갖다준다. 24년 동안 했다. 버는 대로 갖다줬다. 나 안 쓰고 갖다줬다. 주는 기쁨이 크더라”고 하자, 유재석은 말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어떤 수식어도 불필요한 순간이었다. 침묵과 함께 뜨거워진 그의 눈가가 가장 적절한 리액션이었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주인은 당연히 유재석이다. 하지만 그는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는다. 초대손님에게 가운데 자리를 내주고 자신은 그 변두리를 지킨다. 그럴수록 그의 존재감은 더 커진다. 그 날의 주인공에게 기꺼이 상석을 양보하는 배려, 유재석이 20년째 정상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다.

그 결과, 유재석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MC다. 회당 출연료가 2천만 원이 넘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에 맞는 개런티를 받는 것은 합당하다. 유재석은 이를 보다 가치있게 쓰려 한다. 그는 채워진 자신의 곳간을 수시로 비운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산불, 호우나 지진 피해 등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어김없이 수억 원을 쾌척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서 20년 가까이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5백만 원씩 기부하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은 ‘대선 정국’이다. 대한민국의 살림을 책임질 대통령을 뽑는 선거다. 보스는 수직적 관계를 설정하고 위에서 군림하고, 리더는 수평적 관계 속에서 함께 끌고 밀고 나간다고 했다. 유재석은 후자다. ‘문화 대통령’이라 불리는 유재석의 행보에서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엿보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안진용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저서로 『방송연예산업경영론』(공저)이 있음.

 

* 《쿨투라》 2022년 3월호(통권 93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