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Theme] 놀 줄 아는 이들의 대통령: 〈뽀롱뽀롱 뽀로로〉
[3월 Theme] 놀 줄 아는 이들의 대통령: 〈뽀롱뽀롱 뽀로로〉
  • 전철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2.0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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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로로는 슈퍼스타다. 슈퍼스타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죄악이다. 〈뽀롱뽀롱 뽀로로〉(이하 〈뽀로로〉로 약칭)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뽀로로의 존재는 알고 있다. 스포츠를 보지 않는 사람도 김연아와 손흥민은 알고, K-POP을 듣지 않는 사람도 BTS는 아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뽀로로는 취향이 아니라 상식이다.

  뽀로로는 아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뽀통령”으로 유명해졌다. 게다가 2010년 전후에는 〈뽀로로〉가 대표적인 한류 콘텐츠로 꼽히기도 했다. 지금이야 ‘한류 콘텐츠’라고 한다면 소설 『채식주의자』,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등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이 작품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0년 전후까지 ‘한류 콘텐츠’의 목록은 소박했는데, 〈뽀로로〉는 그 목록의 상단에 단골로 언급되던 작품이었다.

  모두가 뽀로로를 알지만, 대부분의 성인은 〈뽀로로〉를 즐기지 않는다. 뽀로로가 ‘애들이나 보는 만화’이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른도 아동용 만화를 보고 감동할 수 있다. 지브리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은 표면상 ‘애들’을 겨냥한 것임에도 수많은 성인 팬들을 확보했다. 〈곰돌이 푸〉, 〈꼬꼬마 텔레토비〉, 〈스폰지 밥〉 등등은 동화적인 내용임에도 방영 당시부터 일부 성인들의 컬트적 지지를 얻었다. 반면 뽀로로는 오직 아이들을 즐겁게 해줬을 뿐, 성인 마니아를 가진 ‘컬트’였던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뽀로로를 좋아했던 아이들도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흥미를 잃는다.

  애당초 〈뽀로로〉는 10대 이상의 시청자에게 관심을 끌기 어려운 내용이다. 기존의 아동용 프로그램이 통상 10~20분이었던 데 반해, 〈뽀로로〉는 아이들의 집중력 부족을 고려하여 에피소드당 5분 정도로 기획됐다. 5분 정도로 축약된 〈뽀로로〉의 에피소드 들은, 인물의 내면이나 서사적 갈등을 일절 생략하고, 대신 캐릭터들의 유희를 보여주는 데에만 집중한다.

  가령 〈뽀로로〉 1기의 첫 에피소드 “새로운 친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설원에 사는 펭귄 뽀로로는 눈사람을 만들다가 넘어져서 설원을 구르다가 우연히 커다란 알을 발견한다. 그 알에서는 아기 공룡이 부화한다. 뽀로로는 공룡을 무서워해서 도망쳤다. 공룡은 해맑은 얼굴로 뽀로로를 뒤쫓는데, 뽀로로의 친구들은 둘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줄 알고 함께 달린다. 모두가 영문도 모른 채 힘겹게 뛰던 뽀로로와 친구들은 넘어져서 함께 눈밭을 구르기에 이른다. 설원의 아래에서 깨어난 캐릭터들은 흡사 오래전처럼 알던 친구처럼 천진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뽀로로는 깔깔 웃다가 공룡에게 말을 건다. “안녕, 내 이름은 뽀로로야. 넌?” 공룡은 “크롱”이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크롱 크롱 크롱”이라고 답한다. 뽀로로는 “아, 크롱이구나? 만나서 반가워”라고 인사한다. “오늘, 뽀로로와 크롱은 친구가 되었습니다.”라는 정리 내레이션과 함께 이 에피소드는 끝이 난다.

  이런 만화에서 개연성이나 핍진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에피소드에서 캐릭터의 내면과 사건의 인과관계가 아예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느 아동용 애니메이션들도 이만큼 단순하진 않다. 초기에 〈뽀로로〉와 경쟁하던 〈토마스와 친구들〉은, ‘인격’을 가지고 있는 기차들과 주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뿐더러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열차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교훈적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뽀로로〉를 졸업한 어린이들은 애니메이션 〈꼬마버스 타요〉와 〈로보캅 폴리〉에 흥미를 보이곤 하는데, 이 작품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갈등을 겪고 해결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꽤나 진지하게 그려낸다. 이상으로 언급한 작품들은 전부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꼬마버스 타요〉와 〈토마스와 친구들〉의 일부 에피소드는 종종 철학(윤리학) 수업의 참조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동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으면서도, 아이들보다는 청소년/어른에게 감동을 주는 〈바이클론즈〉 같은 작품도 존재한다.

  이에 비해 〈뽀로로〉는 전후 맥락을 제거하고, 그저놀고 싶어하는 캐릭터들이 흥겹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동극 형식일 뿐이다. 〈뽀로로〉의 장편(극장판) 버전들 또한 긴 러닝타임을 가졌음에도 완결된 서사적 감흥을 주기보다는, 캐릭터들이 흥겹게 놀고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일에만 의식적으로 집중한다. 이것은 〈뽀로로〉가 아이들에게만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날의 부모들은 애지중지하면서 아이를 키운다. 그래서 웬만한 아이들은 집에서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유로운 유희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무한경쟁으로 뛰어들게 된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징어 게임을 기획한 흑막들이 말하듯,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순수한 유희’란 불가능하다. 물론 삶이 힘겨울 때 자신만의 유희에만 몰입하는 성인이 존재할 수 있고, 세속적 성공을 포기한 채 적당히 놀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성인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삶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지,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것은 아니다. 무념무상으로 끊임없는 유희를 감행한 〈뽀로로〉의 캐릭터들이 아직 사회화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만 공감과 재미를 줄 수 있는 까닭이다.

  〈뽀로로〉가 거의 20년 동안 “뽀통령”으로 장기 집권했다는 사실은, 인간도 생각 없이 순수한 유희를 즐기고 살려는 선천적 충동을 갖고 있다는 걸 힐끗 방증한다. 허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 사회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뽀통령”을 좋아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이 팍팍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키거나 혹은 덜 개악시킬 대통령을 뽑기 위해 고민해야 할 수밖에.

 


전철희
문학평론가. 1986년 광주 출생. 2010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한양대 국어교육학과와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 《쿨투라》 2022년 3월호(통권 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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