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그럼에도 이어져야만 하는 예술의 향연: 2022 LA Art Show
[Gallery] 그럼에도 이어져야만 하는 예술의 향연: 2022 LA Art Show
  • 김준철(미주문인협회 회장, 본지 미주특파원)
  • 승인 2022.03.0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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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여파로 연기되었던 2022 LA 아트쇼LA Art Show가 지난 1월 19일 LA컨벤션센터에서 VIP 프리뷰 나이트를 시작으로 그 화려한 막을 열었다.

LA아트쇼는 북미 서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트쇼로 올해도 세계 23개국, 120여 개의 갤러리가 참여하였다. 20만 스퀘어피트의 대형 전시공간에서 현대회화, 조각, 일러스트레이션, 설치, 융합 예술 등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전시하여 국제 예술 행사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번 행사에서는 특별히 크라운 구스Crown Goose가 LA 아트쇼에서 창조적인 베딩 컬렉션을 선보이며 예술의 경계를 초월하여 글로벌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시도하여 눈길을 끌었다. 환경 보전을 주제로 몰입형 설치예술 존을 만들었다. 또한, 아티스트이자 대체불가토큰NFT 전문가로 활동 중인 시슬리 엘Sisley-L의 작품도 전시되었다.

2021년 미루었던 행사를 늦게나마 성공리에 마치고 이번에는 정상적인 일정으로 아트쇼를 진행하였으나 코로나와 오미크론 및 변이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으로 전시장은 여느 때보다 한산한 분위기였다. 작년에 필자가 프리뷰에 참석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지난해에는 오랜 불안함 속에서 백신이 나왔고 조금은 경계가 느슨한 사이에 행사가 열려서 답답하던 사람들이 발길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작년 12월부터 올 1월 중에 급속도로 확진자가 늘고 있다는 뉴스에 모두 경계심을 올리고 외부 출입을 자제하는 것 같았다. 필자 역시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욱여넣고 전시장을 찾았다.

많은 갤러리가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대형 전시물이나 이벤트는 확연히 줄어든 것 같았다. 전시에 참여했던 갤러리 관계자의 말을 빌자면 여러 갤러리가 불안함 때문에 참가를 취소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게 전시장을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었다. 꽉 들어찬 예술작품과 인파에 시달리지 않으니 오히려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번 행사에서는 다양한 현대 예술작품들을 통해 환경과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일깨우려 했으며, 예술작품을 통해 기후변화로 인한 도전에 맞설 수 있도록 격려하는 데 집중했다.”

이와 같은 갤러리 관계자의 말처럼 시슬리 엘을 초대작가 중 한 명으로 참가시킨 것은 더욱 그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지난 2015년부터 꿀벌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며 지구온난화와 글로벌 환경 문제를 다뤄온 작가기 때문이다. 

시슬리 엘의 작품 중에는 NFT 초상화 아트 작품이 포함됐는데, 작가의 뮤즈가 LA ‘문화의 여왕’으로 알려진 에바 차우Eva Chow여서 큰 관심을 끌었다. 출품한 작품은 에바 차우의 화려한 캐릭터와 시슬리 엘 작가의 꿀벌이 NFT로 결합한 디지털 초상화였다.

역시나 많은 매체가 그의 작품이 전시된 부스에서 취재하고 있었고, 관람객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시슬리 엘은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래서 그만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이 항상 내게는 신중하고 예민한 도전이 된다”라고 밝혔다.

“에바 차우는 아트 그 자체였다. 에바 차우와 대화할 때면 대화가 너무 잘 통하고 마치 ‘아트 공간 속’에서 대화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라고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설명했다.

그 밖에도 매번 참가하는 작가나 갤러리 다수를 볼 수 있었고, 알 만한 한인 작가들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본지에 종종 소개했던 Ryan Cho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전통방식의 다기 위에 팝아트의 짙은 개성을 담아내고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새 작품들이 몇 점 판매되어서 진열대 사이사이가 비어 있었다.

그에게 올해 행사 분위기와 느낌을 물어보았더니 역시 우려하고 걱정했던 것처럼 참여하는 갤러리도 줄었고, 관람객도 줄어들었지만 결국 작품을 사고파는 셀러와 바이어는 충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익숙한 걸음으로 나머지 작품 구경에 나섰다. 대형 설치작품들이 많이 없어서인지 뭔가 허전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뻥 뚫린 대형 갤러리에 들어온 것처럼 자유로움도 동시에 느껴졌다.

전시장 뒤쪽으로 가니 서두에 이야기했던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글로벌적 시선의 대형 설치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걸음을 멈춘 채 한참을 바라보았다. 지인이 전해주었던 소식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방문하기 사흘 전, 텍사스주 댈러스에 사는 지인이 카톡으로 그곳의 날씨 소식과 함께 사진 몇 장을 보내주었다. 그중 하나가 집 앞 나무 사진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기온이 급하강하니 비 맞은 나목이 급속 냉동이 되어 수정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나무 전체가 얼음으로 코팅이 되어 그야말로 환상적인 정취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사진 속 풍경과는 달리 그의 글은 절박했다. 전기가 끊기고 히터도 안 나와서 온 식구가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을 전송받던 그 시간, 나는 따스한 햇볕이 드는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졸린 고양이 마냥 노곤하고 맹한 눈빛으로 한나절을 보내고 있었다.

비행기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댈러스는 원터 스톰winter storm으로 인해 겨울왕국이 되었다는데, 내가 사는 곳은 달력상으로 겨울임에도 에어컨을 틀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여름 왕국이었던 것이다. 

물론 두 시간의 시차가 있긴 하지만 같은 땅 위에서 누군가는 햇볕을 쬐며 책을 읽고, 그 시간 누군가는 재난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일순간 과연 우리는 자연재해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그런 종류의 상상 혹은 현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촌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지리적, 물리적 거리가 점차 더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쥐었던 주먹에 힘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정말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불안감이 그 아득함 중에 선명해졌다.

한껏 전시회를 즐기고 나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과연 예술은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도구인가? 예술의 무엇이 그것을 할 수 있을까? 또 전달되지 못하는 예술은 과연 어떤 가치가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예술을 전달해야 하는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아마도 휑한 전시장 입구와 내부의 모습에서 전해지는 헛헛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은 필요하고 그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은 최근 들어 여러 매체를 통해 뜨겁게 성장하고 인기를 누리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들, 또 세계적으로도 앞다투어 만들어내고 있는 자극적이고 잔혹하며 리얼한 영상물들이 필자의 눈에는 그다지 예술적이거나 웰메이드well-made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을 더 현실같이, 그 현실을 넘어 만들어지지 않은 현실까지 그려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예술은 현실을 뿌리에 두고 깨어서 꾸는 꿈이고 그것이 작은 희망의 온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김준철
《시대문학》 시부문 신인상과 《쿨투라》 미술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꽃의 깃털은 눈이 부시다』 『바람은 새의 기억을 읽는다』가 있음. 현 미주문인협회 회장 겸 출판편집국장. 《쿨투라》 미주지사장 겸 특파원. junckim@gmail.com

 

* 《쿨투라》 2022년 3월호(통권 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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