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영화 속 대통령상像… 〈피아노 치는 대통령〉, 인간적이면서도 문화적인!
[리뷰] 한국영화 속 대통령상像… 〈피아노 치는 대통령〉, 인간적이면서도 문화적인!
  • 전찬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3.0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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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엔터테인먼트

단도직입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자. 〈제3공화국〉(1993)부터 〈제4공화국〉(1995), 〈제5공화국〉(2005) 같은 MBC 정치 드라마 등에서 드러나듯 TV 브라운관에서는 실명을 내걸고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들)을 전면적으로 다룬 예들이 적잖건만, 한국영화역사에서는 그런 경우들이 왜 그토록 적은 것일까? 한 기사(“‘정치의 계절’에 되돌아본 역대 한국영화 속 대통령의 모습”, 2017. 04. 18 연합뉴스 조재영)가 〈판도라〉(2016)의 박정우 감독의 입을 빌려, 그 이유를 축약적으로 들려준다. “한국영화 속에서 대통령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가능하면 등장시키지 않고 싶다는 것이 창작인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대통령을 멋있게 그리면 비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리면 (관객들의)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 이상 그럴 듯하기 불가능할 현답이다. 게다가 자칫 잘못했다가는 명예훼손 등으로 송사에 걸리거나 또 다른 연유들로 불리한 구설수에 오르는 등 골치 아픈 해프닝들을 겪기 십상이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문제적 영화”를 표방했던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2005)이 대표적 사례다.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1979년 10·26 사건을 극화한 블랙 코미디 영화다. 상기 기사도 전하듯, 영화는 개봉 전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이 제기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일부 인용해 “영화 속 다큐멘터리 세 장면을 삭제하지 않으면 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는 내용의 조건부 상영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을 계기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었다. 정작 송재호가 분한 ‘대통령 각하’의 극적 비중이 그다지 크지도 않건만 말이다. 

그때 그사람들 ⓒMK픽처스
그때 그사람들 ⓒMK픽처스

사정이 그러했으니, 대한민국 대통령은 우리네 영화들에서 기피 대상이 되지 않을 도리 없었다. 주·조연이건 단역이건 설사 선택돼 영화에 등장한다 할지라도, 분명 실존 인물이건만 자기 이름을 가질 수조차 없었다. 당장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2013)을 떠올려보라. 송강호가 연기한 송우석은 변호사 시절의 (고)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거늘, 공식적으로는 아니다. 무엇보다 그 덕분에 1,137만 명을 불러모으는 대박이 가능했겠건만….

방송에서는 되고 영화는 안 되는 까닭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우회·신중은 지난 1월 26일 개봉돼 아직도 상영 중인 〈킹메이커〉(변성현)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의 균형 잡힌 시각·묘사 등을 감안할 때 실명이 사용돼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건만, 이 나라의 15대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은 김운범으로, 한때 DJ의 선거 책사였던 엄창록은 서창대로 호명되면서, 영화의 실존성이 상당 정도 약화·희석된다. 낫을 가리키면서도 정작 기역 자는 아니라는 주장을 펼친다고 할까.

그렇다고 그 선택이 비겁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예술이나 문화 이전에 돈벌이가 주목적인 산업에서 만약의 위험을 피해가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상책 아니겠는가. 더욱이 영화를 실화라는 한계 내지 제약에 가두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팩션Faction=Fact+Fiction 아닌 인류의 삶과 죽음이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100% 전적인 사실이나 허구가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눈과 귀, 마음가짐으로 바라보고 듣고 사유하니, 일련의 우리네 영화들에서 그려졌던 ‘대통령상’이 꽤 흥미롭게 다가선다.

킹메이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서울무지개〉(김호선, 1989)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강우석, 1991) 같은 21세기 이전의 흔치 않은 문제작들은 논외로 하자. 〈판도라〉에서 대통령(김명민)은 실세 총리(이경영)에 가려 국가재난 상황에서도 리더십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한심한 캐릭터로 희화화된다. 제목이 시사하듯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2004)에서는 주인공이 주인공인지라, 대통령은 그저 ‘통치자’(조영진) 정도로 별다른 인상을 전하진 않는다. 5·18 민중항쟁의 희생자 유족들이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을 단죄·처벌하려는 액션성 휴먼 드라마 〈26년〉(조근현, 2012)에서는 막연히 ‘그 사람’(장광)으로 지칭된다. 치명적 바이러스로 인한 국가 위기를 그린 재난영화 〈감기〉(김성수, 2013)에서는, 비중은 미미해도 대통령(차인표)은 “그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결단으로 이상적 대통령상을 제시한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2006)와 양우석의 〈강철비2: 정상회담〉(2020)에서는 명실상부한 국민배우 안성기와 꽃미남 연기파 정우성이 강단 있는 멋진cool 모습으로, 최상의 대통령 이미지를 선보인다.

(네이버 기준) 평점 6.7점으로 관객들의 평가는 저조한 편이나,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는 대통령상과 연관해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어느 날 로또 복권으로 244억의 거액에 당첨돼 끙끙거리다 끝내 전액을 기부하는 대박 대통령(이순재)과, 강렬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나 첫사랑 앞에서 소심하기 짝이 없는 미남 싱글 대통령(장동건), 그리고 서민 남편(임하룡)의 대책 없는 내조(?) 덕에 이혼 위기에 처하는 여성 대통령(고두심)이 그 주인공들이다. 까다롭기론 세계 최고 수준을 과시해온 한국 관객들이 원하는 현실성은 넉넉지 않아도, 감독 장진 특유의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에서는 페이소스 담긴 유쾌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남산의 부장들 ⓒ(주)쇼박스
남산의 부장들 ⓒ(주)쇼박스

현실적 설득력에서 최고작은 평하건대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2020)이다. 아직도 세상을 뒤덮고 있는 코비드-19 와중에도 475만여 명을 동원하며 그해 박스오피스 종합 1위를 차지한 그 수작은 사실상, 김재규를 극화한 김규평 역으로 제4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등을 휩쓴 ‘이병헌의 영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5회 춘사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안아서는 아니다. 하지만 이성민은 ‘박통’ 역을 맡아 싱크로율 100%에 가까운 실감 연기로, 기념비적 대통령상을 선사했다.

그러나 상기 그 어떤 영화도 ‘문화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나마 가까운 편인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대통령들도 인간적이긴 하되 문화적이진 않다. 그 점에서 한국영화사에서 예외적인 독보적 영화가 있으니, 다름 아닌 〈피아노 치는 대통령〉(전만배, 2002)이다. 필자는 지난 1월 모 일간지 고정 연재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욕이란 것은 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꾸준한 독서는 말할 것 없고, 1년에 한 번쯤은 극장을 방문해 영화도 관람하고, 연극이건 뮤지컬이건 클래식 콘서트건 오페라건 국악이건 장르 불문 공연장이나 미술 전시회도 찾아갈 수 있는 감(수)성과 소양 등을 두루 겸비한 대통령을…….”(https://www.asiae.co.kr/article/2022012615533735777) 한데 피아노를 직접 칠 수 있는 대통령이라니, 그 얼마나 인간적이면서도 문화적인가!

영화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 퀴즈 하나 내보자. 그 대통령 역은 누가 맡았을까. 정답은 안성기다. 그 아닌 다른 배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국민배우로서 면모가 단연 두드러지는, 일생일대의 열연을 펼친다. 단언컨대 한국영화 사상 가장 밝고 긍정적이요 호의적 대통령상이다. 플롯 상의 개연성 등에서 영화에는 크고 작은 결점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20년이란 시차를 두고 볼 때, 안성기는 말할 것 없고 최지우나 임수정 등 출연진의 호연이나 극적 반전미, 영화가 노렸을 법한 판타지적 효과 등에서 즐길 거리가 수두룩한 것도 사실이다. 이쯤 되면 혹할 만하지 않을까?

 

 


전찬일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글로벌예술학부 겸임교수. 비평 활동 외에도 글로컬 컬처 플래너&커넥터 및 퍼블릭 오지라퍼를 표방하며 다양한 문화 기획, 연결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 일환으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2020)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3월호(통권 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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