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새로운 봄의 이름으로: 〈지금 우리 학교는〉
[드라마 월평] 새로운 봄의 이름으로: 〈지금 우리 학교는〉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03.0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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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눈이 충혈될 때까지 드라마를 몰아보기하지 않겠다는 새해 결심은 산산이 부서졌다. 넷플릭스 탓이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섰다. 〈오징어 게임〉과 〈지옥〉에 이어 한국이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세계 정상에 오른 세 번째 드라마. 안 본 사람 빼고는 다 봤다는 마성의 드라마. 줄거리는 간단하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고등학교에 좀비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한 마디로 K-좀비물이다.

우리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드라마 속 K-좀비는 서양 좀비와 달리 육상 선수만큼 빠르게 달린다. 성격급한 좀비만큼 스토리 전개도 빠르다. 극 중 요나스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좀비 바이러스는 반나절 만에 학생 대부분을 감염시키고, 빠른 속도로 지역 사회로 확산된다. 그리고 순식간에 학교 안팎이 좀비 아포칼립스가 되어 버린다. 드라마를 보던 나의 12시간도 ‘순삭’되었다. 아.

조선 시대와 사극, 그리고 좀비라는 낯선 조합의 드라마 〈킹덤〉이 K-좀비의 탄생을 널리 알린 이후 좀비는 더 이상 죽은 존재가 아니다. 죽어도 죽지 못하는 게 좀비라면 죽은 좀비도 빠르게 뛰게 하는 게 바로 K-드라마의 힘이다. 이번엔 고등학교와 하이틴 학원물, 그리고 좀비다. 인간의 의식을 가진 좀비라니! 도대체 K-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넷플릭스

학교의 이름으로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고등학교란 공간적 배경을 매우 ‘알차게’ 활용한다. 대표적인 미국 좀비물 〈워킹데드〉 속 좀비가 장소 제한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작은 학교의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주인공 이청산(윤찬영 분)이 좀비를 피해 도서실 책장을 도미노 삼아 뛰어다니는 장면이 있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책 읽던 조용한 도서실이 좀비와 만나면 저렇게 박진감 넘치는 장소가 되는구나. 〈워킹데드〉가 회당 제작비 100억인 것과 비교해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고작’ 20억이라는 점에서 도서실 액션신을 향한 감탄은 자본주의적 감동으로까지 확장된다. 아.

무엇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화의 시작을 학교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여느 좀비물과 차별된다. 극 중 세포생물학 박사학위를 가진 중년의 과학 교사가 좀비 바이러스를 발명하는데, 그 배경에는 극심한 학교폭력을 당해 자살을 시도한 아들이 있다. 기간제 교사로 근무 중인 그는 학교폭력을 폭력의 시스템 즉, 사회 구조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리하여 지금 이 세상 사람들 모두를 ‘공범’으로 지목하고 세상을 향한 분노를 거침없이 표출한다. 좀비 바이러스는 인간으로 죽는 것보다 괴물으로라도 살아남는 것이 더 낫다는 약자의 피맺힌 절규인 셈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교폭력, 성폭행, 미혼모 출산 등 10대 대상 사건들을 연이어 배치함으로써 학교 안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사실적으로 재현해낸다. 〈오징어 게임〉이 456억이 걸린 게임에 참여하기 전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낸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극강의 리얼리티라는 찬사를 받은 〈오징어 게임〉과 달리, 〈지금 우리 학교는〉은 자극적인 연출로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왜 틀린 것일까.

ⓒ넷플릭스

학생의 이름으로

두 드라마는 공통으로 한국 사회의 민낯인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폭력적 시스템을 다룬다. 하지만 성인 대상의 서바이벌 게임을 모티프로 한 〈오징어 게임〉과 달리 〈지금 우리 학교는〉은 10대 학생과 그들이 다니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즉, 〈지금 우리 학교는〉의 폭력 재현 양상에 대한 논란이 유독 많은 것은 주인공이 10대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10대 성매매를 다룬 드라마 〈인간수업〉이 공개 당시 문제작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성년자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 순수와 미래의 상징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극 중 또 한 명의 학교폭력 피해자 학생이 있다. 가장 논란이 된 성 착취 동영상 사건의 당사자. 그 학생은 옥상에서 자살하려는 것을 말리는 친구에게 말한다. “여기는 지옥이야. 난 그 지옥을 떠나려는 거고.” 그렇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학교는 학교가 아니다. 지옥이다. 그리고 학교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구조’의 대상이다.

좀비 바이러스로 아수라장이 된 학교에서 겨우 살아남은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애타게 구조를 기다린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학교폭력이든 좀비든 10대들이 처한 지옥의 현장에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불편해야 할 것은 아이들이 처한 문제 상황의 폭력성이 아니다. 바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어른의 부재不在다.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 폭력이 아니다. 무관심과 방관, 그리고 침묵도 폭력이다.

ⓒ넷플릭스

선배의 이름으로

좀비의 시작만 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여느 한국 드라마와 비슷하게 갑과 을로 구성된 이분법적 세계관을 토대로 계급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 초반 생존 학생 집단은 고급아파트와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로 나뉘며 그들 사이에 계급은 갈등 요인으로 부각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별 인적 특성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학생이란 이름으로 학생과 비학생, 성인과 비성인의 대립 구도 안에서 하나의 축을 형성한다. 

학생들은 구조 여부를 두고 어른들이 자신들을 구하러 올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이때 그들은 어른들은 학생과 학교엔 아무 관심이 없다고 절망하는데, 점차 어른들을 향한 분노와 불신으로 감정의 변화를 보인다. 결국 그들은 가만히 구조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학교를 빠져나가기로 결단한다. 더불어 반드시 살아남아 자기들을 외면한 어른들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극 중 어른들은 다른 지역으로의 전염을 막는다는 이유로 바이러스 최초 진원지인 효산시를 봉쇄하고 폭파함으로써 구조를 포기한다. 반면에 버려진 아이들은 서로 협력하여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이고, 누구 하나 희생시키지 않고 다 같이 살아남자고 굳게 결심한다. ‘제대로 된 어른’의 빈자리는 학생 중 제일 연장자인 열아홉 살이 차지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건장한 체격을 가진 고2 남학생이 자신이 먼저 주변을 살펴보겠다고 하자 ‘선배’란 이름으로 고3 여학생 둘이 제지한다. “찌그러져 있어.” 좀비보다 수능이 더 무섭다는 저 고3 선배님들의 스웨그 보소.

그동안 〈오징어 게임〉을 포함한 한국 드라마는 갑과 을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입각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라는 계급 담론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학교는〉은 새로운 시대 의식으로서 세대 담론을 가져와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들의 책임과 의무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

반장의 이름으로

부모도 죽고 친구도 죽고 모든 것이 죽음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아이들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혼자 감당하도록 방치된다. 그리고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듯 수백 수천 개의 노란 리본이 바람에 힘차게 나부낀다. 그렇게 〈지금 우리 학교는〉은 새롭게 움트는 봄의 이름으로 세월호 사건을 소환해낸다. 323명 아이들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2014년 4월 그날의 비극은 정확한 진상 규명 없이 또 한 번 바닷속으로 침몰했다. 하지만 그 후의 이야기는 드라마에서 계속 이어진다. 

극 중 인간과 좀비의 중간자적 존재로서 ‘절비’가 등장한다. 좀비에게 물린 후 인간의 의식을 간직한 절비가 된 사람은 딱 세 명이다. 학교폭력에 관련된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 그중 우리의 시선을 끄는 사람은 역시 불특정 절대다수, 그러니까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인 ‘방관자’ 절비다.

학급 반장인 최남라(조이현 분)는 극 초반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성적 빼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모든 사건의 방관자로서 존재감이 없었다. 하지만 생존 학생 중 유일하게 절비가 되면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으로 변모하는 한편, 타인의 목숨을 담보 삼아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좀비로 변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인간임을 되새긴다. 마치 인간이 인간인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라는 듯이. 여기에 인간 대신 어른이란 단어를 넣어 읽어도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음.

드라마 후반부에 최남라는 어른들에 의해 꾸려진 구조 캠프에 들어가길 거부하고, 버려진 학교에 혼자 남아 뒷수습을 감당한다. “난 아직 할 일이 좀 남았어.”라며 담담하게 정든 친구들 곁을 떠나는 ‘반장’ 최남라의 뒷모습은 국가와 정부, 사회와 어른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깊이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어른이란 무엇인가. 반장이란 무엇인가. 이제 농담처럼 소싯적 반장 안 해 본 사람 어딨냐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우리는.

 

 


김민정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 문화를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드라마 인문교양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소설집 『홍보용 소설』 이 사람 시리즈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등이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3월호(통권 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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