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속의 詩] 배한봉 시인의 「광합성」
[새 시집 속의 詩] 배한봉 시인의 「광합성」
  • 배한봉(시인)
  • 승인 2022.03.0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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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

배한봉

햇볕 좋은 벤치에 앉아 그녀는 털모자를 벗는다. 비타민 얻으려면 광합성을 많이 해야 한다며 민머리를 손바닥으로 슥슥 쓸어본다. 그녀 몸에는 분명 광합성 일으킬 엽록체가 있을 것이다. 항암 치료 받느라 머리카락 다 빠진 그녀 얼굴이 오늘따라 더 핼쑥하다. 민머리 그녀를 둑길 저쪽 연인이 자꾸 흘깃거린다. 한겨울 추운 물가에 서 있는 댕기물떼새 같았을까. 얇은 투명 비닐 같은 이 가녀린 햇빛의 아름다움, 저 광활한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 주남저수지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도 광합성하며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리라.

겨울,

우리에게는 더 긴 햇볕이 간절하다.

 

- 배한봉 시집 『육탁』(시인수첩) 중에

 

 


배한봉
시인은 1998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주남지의 새들』 『복사꽃 아래 천년: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 『악기점』 『우포늪 왁새』 『黑鳥』을 출간한 시인은 “새로 태어나기 위해 날마다 마음의 알 깰 수밖에 없는, 뾰족한 모서리를 자기 안에 넣고 굴리고 굴릴 수밖에 없는”(「모서리의 무덤」)것이 시인의 운명이며, 그래도 “아무것도 아닌 것들 때문에 어제보다 조금 더 창가에 머물렀다” 가는(「시인의 말」) 별이 있는 풍경에 이끌리기 때문에 시를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박인환문학상, 김달진창원문학상, 경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쿨투라》 2022년 3월호(통권 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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