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나마스테!]답을 내기보다 질문을 완성하기 위해
[조용호의 나마스테!]답을 내기보다 질문을 완성하기 위해
  • 조용호(소설가)
  • 승인 2019.03.2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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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한강(46)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Vegetarian』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녀를 만난 지 일주일쯤 지난 뒤였다.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적인 권위를 지니는 이 상 후보로 한국 작가가 오른 건 처음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영국 명문 출판사 포르토벨로에서 데버러 스미스 Deborah Smith의 유려한 번역으로 『채식주의자』가 출간 된 이래 『소년이 온다Human Act』가 올 초 다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고, 프랑스와 미국에서도 연달아 같은 책들 이 번역 출간되면서 뉴욕타임스, 가디언, 르몽드 같은 영미권 주요 매체들이 앞다퉈 조명하는 형국이다.

파리 도서전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로 출국하기 전 서울 양재역 인근에서 만난 그녀는 짐짓 담담하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는 쓴 지 10년 넘었는데 갑자기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다고 그 책이 변한 것도 아니고 제가 변한 것도 아니어서 담담한 편입니다. 『소년이 온다』는 그 삶의 시기 동안 저의 시간과 감각과 몸을 죽은 소년에게 빌려드려 제가 썼다기보다는 소년이 쓴 거나 마찬가지여서 먹먹합니다.

 

 

 ” 『채식주의자』는 이미 2010년경부터 한국문학 번역원 지원으로 일본, 아르헨티나, 브라질, 폴란드, 베트남, 중국, 네덜란드 등에서 출간돼 호평을 받아온 터였다. 지난해부터 영국을 필두로 프랑스, 미국에서도 본격 조명을 받고 있는 이 작품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 폭력성을 내재한 인간이 싫어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여자 주인공의 행보가 충격적이면서도 묵직하게 전개되는, 흡인력 강한 소설이다. 올 초 미국에서 출간된 이 소설을 두고 《퍼블리셔스위클리》는 ‘2016년 봄, 가장 기대되는 주목할 소설’ 중 첫 번째 책으로 꼽기도 했다.

 

 

 “유달리 폭력에 민감한 편입니다. 아우슈비츠 학살을 다룬 영화를 볼 때마다 토하거나 아프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채식주의자』 같은 소설도 쓴 것이고, 폭력에 대해 민감한 무의식을 파고들다가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된 거지요. 저에게는 개인적 주제와 사회적 맥락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저 자신에 대한 관심을 따라가다 보니 사회적 주제와 만나게 된 겁니다.”

 

 

 2014년 국내에서 펴낸 『소년이 온다』는 한강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이들을 다시 불러내 그녀 세대의 눈높이로 재조명한 작품이다. 영국 독자와의 만남 당시 한 독자가 이 소설을 특정 공간의 과거사가 아닌 인간의 폭력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채식주의자』를 한국만의 특수한 가부장적 상황에 대한 고발로 오독했던 이들도 『소년이 온다』를 통해 오히려 한강이 폭력에 대해 일관되게 말하고 있음을 간파했다는 것이다.

 

 

 한강은 광주시에서 태어나 광주항쟁이 일어나기 4개월 전인 1980년 1월, 열한 살 때 서울로 이사왔다. 후일 아버지가 보여준 ‘광주 사진첩’은 사춘기에 접어드는 그녀의 감성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그녀들만 참극을 피해 도망온 듯한 부채의식에도 시달렸다. 그러한 감정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폭력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무의식에 깊이 새긴 듯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소설가 한승원. 한국 문단에 소설가 부녀는 더러 있지만 대를 이어 ‘이상문학상’을 받은 이들 부녀처럼 또렷한 경우도 드물다. 이즈음은 아버지 세대를 넘어서서 딸이 글로벌 작가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밤에는 소설 쓰느라 잠을 못 주무시고 낮에는 교사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언제나 피곤한 모습이셨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 저로서는 어릴 때 작가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피곤한 일이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사춘기 접어드는 중학교 때부터 인간은 왜 태어나고 죽어야 하는지부터 제 안에 너무 많은 질문이 생기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집 안에 널려 있는 책들을 보면서 살았는데 이때부터는 필사적으로 그러한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작품들을 읽었어요.

읽다 보니 작가들에게도 별다른 답이 없고 오히려 저처럼 연약하고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존재들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강은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습작을 시작했다. 대학 문학상에 시를 응모해 상을 받기도 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시 쓰는 학생이었지만 안으로는 몰래 소설을 쓰는 문학청년이었다.

1993년 겨울 《문학과사회》를 통해 시인이 되었고 곧바로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는 소설가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 그가 몰두해온 장르는 소설이었다. 그녀의 소설들은 초기작부터 깊은 물속에서 힘겹게 숨을 참는 듯한 낮고 어두운 풍경이었다.

 

 

 “저에게는 언제나, 지금까지도 해결 안 된 문제들이 있어요.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죽고 고통받고 전쟁이 일어나고 그러는데 내가 행복해도 되는 건지, 내가 가벼워도 되는 건지 그런 확신이 없어요. 살아 있는 건 잠깐인데 아름다운 걸 봐야지 하는 건 30대 중반 지나면서 든 생각이고, 20대 초중반에는 더더욱 내가 행복할 수 있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것도 생각해보면 광주와 연관이 된 건지 모르지요.”

 

 

 한강의 소설들은 어둠 속에서 한 점 빛을 향해 안간힘을 쓰며 기어 나온 기록으로도 읽힌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는 주인공이 자살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집요하게 밝혀나가며 불타는 공간에서 기를 쓰고 기어 나오는  마지막 장면을 썼다. 장편을 하나씩 써나가면서 느리지만 생에 대한 긍정과 인간의 존엄을 찾아가는 도정을 걸어왔다. 『희랍어 시간』에서는 “살아야 한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무엇을 통해 어떻게 가능한 건지 좀 더 가본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다음에는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정말 눈부신 삶을, 아름다움을 껴안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더 나아갈 수 없었고, 결국 광주의 트라우마를 꿰뚫고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러 『소년이 온다』를 쓴 것이라고 했다. 쓰는 내내 인간의 폭력이 끔찍하고 희생자들이 안타까워 악몽을 자주 꿀 정도로 힘들었는데,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새벽을 맞은 이의 일기를 접하고 그들이야말로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행위자로 나선 존엄한 이들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다시 써 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말미에 죽은 소년이 엄마 손을 이끌고 빛을 향해 나아가거니와 한강은 “제 힘으로 쓴 게 아니라 그분들이 끌고 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희랍어 시간』이 시적인 밝음을 향해 나아갔다면 비로소 가장 어두운 부분을 통과하며 깊은 곳에서 강렬하게 올라오는 두터운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는 고백이다. 이제는 긴 터널을 빠져나와 빛 속에서 어둠을 아우를 수 있게 된 것일까. 국내는 물론 해외 독자들까지 주목하기 시작한 한강의 소설은 다시 어느 지점을 향해 나아갈까.

 

 

 “어디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지금까지 움직였다기보다는 저에게 가장 절박한 질문을 가지고 씨름하면서 답을 내기보다 질문을 완성해보려고 써왔습니다. 간절한 이야기를 쓰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니 여기까지 왔구나 싶은데 앞으로 어떤 궤적을 그려나갈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그때 근근이 한 치 앞을 모르고 나아갈 뿐이지요.”

 

*한강은 이 인터뷰를 마친 후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로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와 함께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고, 2018년에도 작품 『흰』으로 최종 후보에 다시 올랐다.

 

 

* 《쿨투라》 2019년 2월호(통권 5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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