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교감의 순간과 화합의 황홀경을 담아내다: 이찬 『감응의 빛살』
[북리뷰] 교감의 순간과 화합의 황홀경을 담아내다: 이찬 『감응의 빛살』
  • 해나(본지 에디터)
  • 승인 2022.03.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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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문장들』과 『시/몸의 향연』을 발간한 바있는 평론가 이찬이 세 번째 비평집 『감응의 빛살』을 펴냈다. 「열락의 터전으로서의 시-조정권 유고 시집 삶이라는 책』 「감응의 빛살-『주역』으로 김수영 읽기」 「봉준호 영화 〈옥자〉의 생태주의 사유와 ‘時中’의 윤리학」 등 장르를 넘나들며 시선의 깊이를 보여주는 비평 35편이 실려 있다. 761쪽에 이르는 방대한 글은 문단의 원로와 중진, 신예, 작고 문인을 빠짐없이 아우르고 있으며, 그 조망의 폭은 한국 시단 전체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주역』과 생태주의 담론을 통해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분석하며, 그 안에 담긴 다양한 특질과 모순된 면모들을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번 비평집에 실린 글들을 저자가 2018년 이후 불과 3~4년 남짓 동안 썼다는 사실이 놀랍다. ‘감응의 빛살’, 그리고 저자가 제안하고 실천하는 ‘크로스오버 비평’. 이 두 가지 키워드는 그를 텍스트 앞에 서게 한 원동력이자, 이 비평집 전체를 통해 저자가 얘기하고자 한 것들을 응축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감응’은 그간 흔히 ‘정동’으로 번역되어 온 ‘affect’를 이찬 평론가가 새롭게 구축해 제시한 용어로, 한 개인의 고유하고 순간적인 마음결의 정취라는 어감을 감싸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 또는 ‘정서’에 비해, 훨씬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 신체적·내면적·물리적 영향 관계를 빠짐없이 수용할 수 있는 말이다. 이 단어에 대해 저자는 “장구한 시간 동안 우리 전통과 더불어 동아시아 문명사 전체에 뿌리박힌 용어일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특정한 마음 상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더 나아가 ‘천지만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침투의 무한성과 그 영향력의 그물을 전제하고 있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빛살’은 “‘빛’과 ‘살’이 결속된” 말로 “‘빛’이 가시적이고 지각 가능한 어떤 물리적·정서적 자극과 효과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살’은 보이지 않는 형세와 분위기, 좀처럼 지각되지 않거나 지각 불가능한 미시적 차원의 물리적·정서적 자극과 효과를 나타내기위”해 끌어올린 용어다. “그리하여, ‘감응의 빛살’이란 시와 문학과 예술 텍스트를 매개로 감응하는 자와 감응되는 자가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는, 그 사이 공간에서 움터 오르는 양자의 상호 침투와 상호 변용의 과정을 드러내”며, “또한 벤야민의 ‘아우라’ 또는 메를로-퐁티의 ‘살’로 집약될 수 있을, ‘영기靈氣/분위기雰圍氣’를 현란하게 엇갈리면서 움터 오르는 휘황한 교감의 순간이자 화합의 황홀경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 문학에서 빛났던 감응의 순간, 언어의 몸을 깨고 나오는 새로운 의미들에 주목해 그 찬란한 순간의 환희를 세세히 기록해나갔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의 세계를 섬광처럼 드러내는 자리, 나날의 상투적인 감각으로는 잡아챌 수 없는 천변만화하는 풍경들과 그 미시적 사건들의 현란한 움직임을 집요하게 현시하는 자리에서 이장욱의 시는 움터 오른다. 이는 『내 잠 속의 모래산』(2002), 『정오의 희망곡』(2006), 『생년월일』(2011)에서 계속 나타난 새로운 예술적 짜임의 첨단점이기도 하지만, 동시대 시인들에게 불러일으킨 미학적 감응affect 현상들의 원초적 터전을 이룬다. 이른바 ‘소실점’으로 표상되는 현대 원근법의 중핵이 서정시의 이미지들을 짜고 얽고 마름질하는 으뜸 원리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메타시의 문법과 알레고리 형상들로 소묘하기 시작했던 바로 그 순간부터, 이장욱의 시는 우리 시대 시의 감각과 화법, 체질과 방법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미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본문 133쪽

한편 이 비평집에 실린 「봉준호 영화 〈옥자〉의 생태주의 사유와 ‘時中’의 윤리학」과 「감응의 빛살-『주역』으로 김수영 읽기」는 특히 크로스오버 비평의 실례라 할 수 있겠다. 저자에 따르면 “크로스오버 작업에서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같이 풀어 가야 할 문제”는 “문학과 예술을 포함한 기성의 사회와 질서에 내재하는 숱한 허위와 억압과 모순들”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 저자는 예술가들이 ‘비틀어진 형식’과 ‘새로운 장르’를 창안한 점에 주목하며, 그러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은 결국 기성 사회의 권력 구조이자 동일성의 원리가 배제하고 은폐하고 망각해 버린 ‘비동일자의 구제’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벤야민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크로스오버 비평의 지향점도 이러한 맥락에 맞닿아있다고 언급한다. 그는 “크로스오버 비평이 근대 이성의 바깥으로 추방된 무수한 비동일자, 곧 신화, 주술, 동양, 유색인, 여성, 제3세계 등등을 구제하여 이들과 우리가 함께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공성의 담론장으로 이끌어 올리는 방향”을 지향해야 하며, 영화와 문학을 넘나드는 자신의 비평은 그것에 대한 지향을 실천으로 옮기는 여정임을 저자는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 이찬은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저서로 『현대 한국문학의 지도와 성좌들』 『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시론의 계보』 『김동리 문학의 반근대주의』, 문학평론집 『헤르메스의 문장들』이 있다. 2012년 제7회 김달진문학상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파란》과 《서정시학》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쿨투라》 2022년 3월호(통권 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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