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6] '단발머리' 소녀와 '촛불 같은' 여인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6] '단발머리' 소녀와 '촛불 같은' 여인
  • 유성호(본지 주간, 한양대 국문과 교수)
  • 승인 2019.03.2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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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1980년 벽두의 조용필을 강렬하게 착색한 이미지에는 여러 차원의 새로움이 있었다.

단색이 아닌 다양한 그의 흡인력에는 목소리의 짙은 호소력, 다양한 장르 소화력, 해맑은 소년의 미소 같은 것들이 만만치 않은 새로움으로 버티고 있었다. 더구나 언뜻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소박한 비인공非人工의 외관은, 이 나라의 평범한 소녀들에게 그가 친근하고도 사랑스러운 ‘오빠’ 이미지로 각인되게끔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객석에서, 안방에서, 그의 브로마이드가 담긴 잡지를 들추면서 ‘오빠’를 목놓아 부른 ‘단발머리’ 소녀들이야말로 다른 뮤지션들로부터 조용필을 근본적으로 분리해내고 또 옹위해마지 않았던 은유적 호위무사들이었을 것이다. 그 소녀들은 ‘단발머리’ 소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열렬하게 이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으리라.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오늘 따라 왜 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 싶을까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살아나네

내 마음 외로워질 때면 그날을 생각하고

그날이 그리워질 때면 꿈길을 헤매는데

우우우 못 잊을 그리움 남기고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오늘 따라 왜 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 싶을까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살아나네

 

 

1970년대의 인기가수 가운데 하수영이라고 있었다.

가부장제 아래서 신산한 삶을 살았던 그 시대의 모든 아내들을 위안했던 불멸의 애창곡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의 가수로서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타계한 분이다. 조운파가 작사하고 임종수가 곡을 지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는 1976년에 발매된 하수영 1집에 수록되었다. 하수영은 작곡 역량도 뛰어났는데 1977년에 히트한 윤정하의 <찬비>를 짓기도 했다. (윤정하는 시집 『에듀케이션』(2012)을 펴낸 시인 김승일의 엄마다.)

하루는 하수영이 콘서트를 하는데 어린 여학생 하나가 하수영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아이 귀여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순간 <단발머리>의 가사가 섬광처럼 작사가 박건호에게 날아들었고, 박건호는 이 발랄하고 슬픈 노랫말을 조용필에게 전해주었다. 이후 조용필은 빼어난 작곡 솜씨를 발휘하여 이 노래를 <창밖의 여자>와 마주 세웠고, 1980년 내내 우리로 하여금 ‘뿅 뿅 뿅’ 하는 전자 음향을 선명하게 접하게끔 해주었다.

이 노래는 전통 창법이 서양 현대음악과 만나 이루어낸 퓨전 음악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른바 ‘펑키 디스코’ 리듬을 활용하여 가장 신나는 리듬을 만들고 그 위에 보고 싶은 대상을 향한 그리움을 얹었던 것이다. 경쾌함과 그리움이 비대칭적으로 결합하면서도 조용필 특유의 가창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잊혀진 계절>, <슬픈 인연>,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등을 우리에게 남긴 작사가 박건호는 ‘단발머리’ 소녀의 단아하고 반짝이고 슬픈 모습을 선연하게 담아냄으로써 이 노래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나(여기서 우리는 바로 ‘가수 조용필’을 떠올린다.)’에게 꽃다발을 전해주는 소녀가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그녀는 오로지 ‘나를 위해’ 자신만의 꽃다발을 준비했을 것이다. ‘나’는 오늘 따라 마음 속에 떠오르는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그리워한다. “비에 젖은 풀잎”과 ‘단발머리’ 소녀는 얼마나 어울리는 비유의 짝인가. ‘나’는 외로움이 극에 달하면 소녀와 만났던 날을 떠올리고 자연스럽게 꿈속에서의 그리움과 헤매임을 불러온다.

하지만 그 소녀를 ‘나’로부터 떠나가게 한 건 “못 잊을 그리움 남기고/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었다. 오랜 세월 후 ‘나’는 그 소녀를 추억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사를 신시사이저 음향과 전자 음악으로 담아낸 이 명편名篇은, 당시로서는 퍽 신선한 음향으로 다가와 어쩌면 슬픔으로 어쩌면 경쾌함으로 우리를 적셨을 것이다.

지금은 부재하는, 하지만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을 안겨주고 떠난 그 소녀를 ‘나’로부터 앗아간 세월이 밉다고 노래하는 표정조차 어쩌면 그 ‘소녀’를 향한 어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대의 소녀들은 “반짝이는 눈망울”로 조용필의 노래를 따라, 웃고, 울고, 소리 질렀으리라.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단발 머리 소녀처럼.

 

 

연약한 이 여인을 누가 지키랴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1980년은 광주민주화운동의 해이자 조용필의 해이다. 그 해 말엽에 조용필은 또 한 곡의 야심작을 실은 앨범을 발표한다. 타이틀 곡은 당시 드라마 주제곡이었던 <촛불>이었다.

이 노래는 1980년 9월에 방영된 TBC 드라마 <축복>의 주제가로서, 카네기홀에서 한국 가수로서는 최초로 공연하는 조용필의 모습이 표지를 장식하였다. 이 앨범은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깃들였다.

여기서 조용필이 노래한 대상은 단발머리 곱게 빗은 ‘소녀’가 아니라 촛불처럼 위태롭게 삶을 이어가는 연약한 ‘여인’이었다.

 

 

 기억에 의존하든, 자료의 도움을 얻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 정윤희였다.

그녀가 겪는 암 투병의 시간이 드라마를 이끌어갔고, 시청자들은 한결같이 “연약한 이 여인”을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지켜보았다. 그때 어김없이 울리는 “그대는 왜 촛불을 켜셨나요”로 시작하는 주제곡은 ‘조용필-정윤희’라는 당대 최고 스타의 결속으로 화제를 모았다.

잠깐 첨언하면, 당시 전두환 군사정부는 언론 통폐합이라는 미증유의 국가 폭력을 수행하였는데 그 가장 큰 희생자가 된 것이 TBC 동양방송이었다. 아직도 내 뇌리에는 소년 소녀들이 합창으로 부르는 동양방송 사가社歌가 아련하게 맴돈다. 지금 불러보아도 가사가 일품이다. 드라마 <축복>은 그때 사라진 TBC의 마지막 드라마였다.

 

 

 수많은 촛불이 어둠을 밝히는 장면을 배경으로 하여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주제곡은 처절하고도 안타까운 한 여인의 삶을 지켜보면서 그녀를 응원하는 모두의 따뜻한 눈빛이자 불빛이었을 것이다. 촛불이 꺼지면 여인의 삶도 따라 꺼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과 그 시련을 결국 이겨내는 사랑의 아름다움, 이 노래는 이러한 슬픔과 기도의 힘으로 충일해 있었다.

물론 조용필은 ‘켜셨나요’가 아니라 ‘키셨나요’로 불렀다. 어쩌면 ‘키셨나요’로 부른 것이 훨씬 더 우리 마음을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곡의 노랫말을 쓴 이희우는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이환경, 신봉승, 정하연, 김수현 등과 아울러 최고의 성가를 누린 드라마 작가이다. 그가 대본과 주제곡 노랫말을 함께 쓴 결실이 <축복>이었던 셈이다.

 

 노래는 “그대는 왜 촛불을 켜셨나요”를 반복하면서 ‘그대’로 호명되는 이로 하여금 ‘촛불’을 켜고 ‘촛불’을 지키게끔 하는 장치를 마련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러니 누구에게는 말해야 하는 “연약한 이 여인”을 등장시켜 흔들리는 “사랑의 촛불”과 연약한 “여인의 눈물”을 어느새 등가로 만들어버린다. 촛불이 바람에 꺼진다면 ‘여인’의 모든 것은 끝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라는 간절한 비원悲願과, “연약한 이 여인”을 지키는 주체로서 ‘누가’를 세 번이나 반복하는 장면은, 누군가는 혹은 누구라도 여인을 지켜달라고 간구하는 기도의 형식을 띠게 된다.

2절로 가면 우리는 “끝없는 그리움”을 만들어낸 “철없는 촛불”에게 원망도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외로운 불빛”이 꺼지지 않고 남아 “연약한 이 여인”이 지상에서의 삶을 지속해갈 것을 기원하는 마음과 만나게 된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모두의 간구와 기원으로 살아가는 ‘사랑’과 ‘그리움’과 ‘외로움’의 여인을 속 깊이 만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조용필을 통해 새삼 정윤희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본다.

나는 정윤희를 방송 드라마 <청실홍실>에서 처음 보았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과 으레 외화 <6백만 불의 사나이>와 이 드라마를 이야기했던 것 같다. 하루는 <6백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애인 제이미 소머즈를 안타깝게 바라만보는데, 막상 소머즈는 자신을 살려낸 의사와 연정을 키우는 장면이 있었다. 중1 아이들은 모두 스티브편이 되어 그 의사를 온통 거센 육담으로 욕함으로써 한 사나이의 지순한 사랑 편을 들기도 했다.

<청실홍실>에서 정윤희는 ‘동숙’이라는 이름으로 ‘지선’이라는 이름의 장미희와 공연했다. 주제곡은 하수영과 혜은이가 듀엣으로 불렀다. 지금도 그녀들의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동숙은 주인공 김세윤을 사이에 두고 지선과 삼각관계를 이루었는데, 나는 언제나 동숙 편이었다. 결말도 동숙에게 남주인공이 돌아오는 것으로 끝났던 듯싶다. 정윤희는 이후 영화 <꽃순이를 아시나요>, <나는 77번 아가씨> 등으로 화려한 전진가도를 달렸고, 내 기억에만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안개마을>, <사랑하는 사람아>,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등 무수한 영화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남겼다.

조용필의 노래가 이러한 절정의 정윤희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촛불>은 80년대초의 가장 매혹적인 문화적 수원水源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 노래가 담긴 앨범은 1980년 12월 5일에 발매되었다.

노래는 장중한 신시사이저에 폭발적으로 다가오는 커다란 사운드로써 한 여인의 삶과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부조浮彫한다. 그 사이사이로 조용필의 작곡 역량과 그 팀이 가진 연주 역량이 융융하게 빛을 발한다.

그 빛이 “연약한 이 여인을 누가지키랴”라는 질문에 대한 예술적 응답이 되고도 남았으리라.

 

 

두 여자가 있었다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뤼아르는 <그녀는 내 눈꺼풀 위에>라는 작품에서 “그녀는 내 눈꺼풀 위에 서 있다/그녀의 머리칼은 내 머리칼 속에/그녀는 내 손의 모양을 가졌다/그녀는 내 눈빛을 가졌다/그녀는 삼켜진다 내 그림자 속에.”라고 노래하였다. ‘눈꺼풀’과 ‘머리칼’과 ‘손’과 ‘눈빛’마저 닮아버린 ‘나’와 ‘그녀’는 어느새 서로의 그림자 속에 삼켜지면서 오랫동안 하나의 영상으로 존속해갈 것이다.

 

 

1980년에 조용필이 노래한 두 여자가 있었다. ‘단발머리’ 소녀와 ‘촛불’ 같은 여인이었다. 이 소녀와 여인이 조용필을 여느 가수들과 전혀 다르게 만들었다.

조용필은 그냥 두 여자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를 빗은 ‘소녀’와 흔들리는 촛불처럼 연약한 ‘여인’의 아름답고 구체적인 상像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소녀와 여인들에게, 그리고 소녀와 여인을 사랑한 모든 이들에게 찬연한 기억을 선사했던 것이다.

이후 우리는 그 파생 형상으로 <황진이>나 <모나리자>, <슬픈 베아트리체>, <진珍>처럼, 조용필이 깊이 사랑했고 기억했던 여인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 《쿨투라》 2019년 2월호(통권 5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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