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지금은 식집사 전성시대
[4월 Theme] 지금은 식집사 전성시대
  • 안진용(문화일보 기자)
  • 승인 2022.04.01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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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대이동. 주말 한파. 공연 연습 가기 전 열일. 식집”사.

가수 겸 작곡가 정재형이 지난해 10월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언뜻 봐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평소 조금이라도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반길 만하다.

‘식집사’. 반려동물처럼 반려식물을 키우며 이에 공을 들이는 이들을 의미한다. 최근 방송가에서도 식물을 키우는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직 1,500만 반려동물 인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생활이 늘고, 환경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집사를 자처하는 이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식집사, 누가 있나?

“Green morning.” 또 다른 식집사로 알려진 가수 겸 배우 엄정화의 아침 인사다. 그는 자신의 SNS에 이같은 인사와 함께 테라스를 뛰어다니는 반려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게재했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 등을 통해 공개된 그의 한남동 자택의 널찍한 테라스에는 다양한 반려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정재형 역시 절친한 엄정화의 영향을 받아 식집사로서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는 후문이다.

정재형은 현재 100가지가 넘는 반려식물을 키우고 있다. tvN 예능 〈온앤오프〉 등을 통해 공개된 그의 모습을 보면, 식물을 향해 “자기야”라고 살갑게 부르기도 한다. 다소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기 전, 집 안에서 개와 고양이를 가족처럼 기르는 모습을 보며 생경함을 느끼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 식집사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재형이 식집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집 앞 마당과 집 안 곳곳을 식물로 채운 그는 “집에서 작업하다 보니 식물을 보면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맨 처음에는 새로운 게 예쁜 줄 알았는데 이젠 잘 자라주고 오래된 아이들이 좋다. 자연의 느낌이 좋고 이런 애들이 있어서 그냥 좋다”고 말했다.

반려식물과 함께하는 인구는 코로나19 창궐과 발맞춰 증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콕 생활이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바깥으로 나가 자연과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SNS를 통해 집콕 생활을 보여주는 ‘집콕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집 안에서 식물을 키우는 연예인들의 모습 또한 노출 빈도가 늘었다. 

그룹 방탄소년단도 이에 동참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4월, 방탄소년단의 멤버 뷔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여러분 심심하면 티비와 대화하세요~ #집콕챌린지”라며 집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을 게재하는 동시에 반려식물을 공개했다. “작고 귀여운 다육이입니다. 여러분은 같이 지내는 반려식물이 있나요? 확실히 생명과 같이 지내면 작든 크든 좋은 변화가 같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안에서 친구들 보며 힘내봅시다”라는 방탄소년단의 글을 접하고 반려식물을 구매해 곁에 두게 됐다는 댓글 반응이 이어졌다.

반려식물와 함께하는 삶은 특히 나홀로족族에게 인기다. 엄정화, 정재형,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혼자 살며 나만의 시간을 보장받길 원하는 이들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고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싱글족의 삶을 다룬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 남윤수 역시 자취집에서 한라봉 화분을 키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처음으로 꽃에 플렉스flex(특정 분야에 큰 돈을 썼다는 의미)했다. 열매가 열리면 그걸로 술을 담그겠다”고 밝힌 그는 반년 후 방송에서 앙상해진 화분을 공개하며 “말라 죽은 게 아니라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해명하며 영양제를 주는 초보 식집사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tvN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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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집사 예능, 볼 수 있을까?

방송가는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읽는 영역이다. 대중의 취향을 읽는 것이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이 늘며 관련 예능이 속속 제작되고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생활이 요리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쿡방’이 대거 등장했듯, 식집사의 증가와 맞물려 반려식물을 다룬 프로그램의 제작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미 시도는 있었다. 지난해 7월 JTBC 스튜디오HOOK은 유튜브 콘텐츠 〈오늘도 삽질〉을 론칭했다. ‘삽질’이라는 키워드에서 알 수 있듯 초보 가드너들의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대표적 식집사인 정재형을 비롯해 그와 같은 소속사에 몸담고 있는 가수 이장원, 정승환 등이 참여해 식물을 재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초보 가드너들의 질문에 답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10여 개의 콘텐츠는 매회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지만 이 프로그램은 두 달 이상 지속되지는 못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화제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다. 유명인들을 대거 섭외해 화제를 모을 수는 있지만, 총 제작비를 넘는 수익을 거두지 못한다면 프로그램으로서 존재하기 어렵다”면서 “플랫폼에 붙는 광고 외에도 프로그램 안에서 노출시킬 수 있는 반려식물 관련 PPL과 협찬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걸그룹 소녀시대 출신 수영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수영의 싹트는 라이프’에서 보여준 식집사의 삶은 반려식물에 관심이 높은 이들과 이를 활용한 프로그램 제작을 고민하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식물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가전제품을 활용하며 “집순이의 무료함을 어떻게 달래고 있나? 뭘 해야 즐거울까 취미를 찾다가 아주 딱 맞는 걸 발견했다”며 식물 재배기를 소개했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대중은 항상 새로운 것을 보길 원하고, 제작진은 그 입맛에 맞춘 새로운 트렌드를 끊임없이 제시한다”면서 “최근 식집사의 삶을 보여주는 연예인이 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산업도 점차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업체들의 PPL과 제작 지원 등 제작비 수급 구조가 충족되면 향후 식집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프로그램 제작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진용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저서로 『방송연예산업경영론』(공저)이 있음.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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