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Theme] AWARDS - 시대와 세대 넘어선 음악영화의 마력 - 브라이언 싱어, '보헤미안 랩소디'
[2월 Theme] AWARDS - 시대와 세대 넘어선 음악영화의 마력 - 브라이언 싱어, '보헤미안 랩소디'
  • 유지나(영화평론가·동국대 교수)
  • 승인 2019.03.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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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헤미안 랩소디>는 락 밴드 퀸의 4집 앨범 ‘A Night At The Opera’의 대표곡이다. 그 곡명을 제목으로 내건 이 작품은 음악 중심 전기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 다시보기 열풍이 불정도로 한국 극장가에서 프레디 머큐리 시대 퀸 팬덤 문화가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작동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종합예술로 불리는 영화의 기능을 씨네 콘서트로 증명해내는 셈이다. 지난해, 그러니까 2018년 10월 말 개봉 후 장기상영에 들어간 이 작품은 (이 글을 쓰는 현 시점인) 2019년 1월 중순 천만 관객 흥행 가능성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퀸의 고향인 영국보다 한국에서 더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특이한 사례로 해외언론 특집기사가 나올 정도로 대중적 영화콘서트의 감정이입 공감대 파장이 퍼져나가는 중이다.

 이 작품은 1970년 ‘스마일’ 밴드가 퀸으로 변화하는 초기부터 월드투어에 나서는 전설적 밴드가 되기까지 15년간의 여정을 창작과 공연 과정을 오가며 담백한 서사로 풀어내 보인다. 그런 설정에서 프레디란 인물을 매력적 페르소나로 설정해 그 개인사에 초점을 맞춘다. 서사영화가 중심으로 자리 잡은 영화 제작에서 실화에 근거한 전기 영화는 고증문제를 둘러싸고 픽션과 논픽션 사이 길항작용이 발생하곤 다. 이 영화에서도 전기적 사실과 영화적 재현 사이 엇나가는 문제로 지적되는 점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를테면 영화의 핵심 스펙터클인 결말부 공연시기와 프레디의 에이즈 감염 시기가 엇나가는 문제, 다른 3인 멤버를 개별 캐릭터로 적확한 시점에 현해내지 못한 점 등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그에 해 밴드는 아니어도 프레디가 퀴어로 변한 후에도 뢰와 우정을 나누는 메리 오스틴은 주요한 캐릭터 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재현된다.

 이 작품의 대표적 시퀀스이자 핵심 에피소드는 대미를 장식하는 공연이다. 십만 관중을 사로잡는 종합예술 퍼포먼스, 무엇보다 죽음을 감지한 프레디의 존재감이 솟구치는 에티오피아 난민 후원 공연인 라이브 에이드Live Aid 무대는 시대와 세대를 넘어 소통하는 락 콘서트 공연장을 스크린으로 생성해낸다. 유튜브보다 더한 생동감으로 생중계처럼 펼쳐지는 20여 분에 달하는 이 콘서트는 픽션과 논픽션의 색다른 결합을 보여준 브라이언 싱어감독의 음악영화 흥취를 증명해낸다.

 그 여파로 나 역시 표현의 자유가 부재했던 시절 라디오 음악에 탈출구처럼 접속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밤마다 작은 트랜지스터로 듣던 한밤의 음악 프로그램들, 거기서 들었던 “라디오 가가, 라디오 구구” 후렴구는 그들 노래에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주술처럼 작동한다. 프레디가 혼신을 다한 몰입의 경지에서 테너 이상 고음으로 오페라적 감성을 토해내며 “갈릴레오, 갈릴레오…”를 부르는 <보헤미안 랩소디>는 6분에 달하는 길이가 오히려 대중예술과 클래식의 격차를 넘어서게 해준다. 관중이 함께 거대한 웸블던 스타디움을 울리는 <We Will Rock You> 리듬과 가사는 쉽게 접속 가능하다. 영화에서 보듯이, “We Will, We Wil, Rock You”하며 모두 같이 장단 맞춰 부르는 부분은 대중적 감정이입을 떼창으로 소화해낸 음악의 마력을 증명해 보인다. “우린 챔피언이야, 친구여/그래서 우린 끝까지 계속 싸울 거야/루저를 위한 시간은 없어/이 세상에서 우린 챔피언이니까”하며 이어지는 노랫말은 1등주의 찬양이라기보다 상처투성이 약자의 연대와 투쟁을 보여준 광장 촛불집회 코드로 접속되기도 한다. 2천 년대 한국 초상화로 작동하는 ‘헬조선’ 코드로 풀어보면, 표현의 자유가 살아난 현재에도 압축성장 그늘에 가려진 온갖 모순과 적폐, 억압적 관습이 미투운동으로 연일 터져나오는 중이 아닌가. 그런 아픔이 미세먼지처럼 퍼져나가는 와중에 서구의 70, 80년대 퀸의 음악은 2천 년대 한국사회에 소통하는 공명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특히 도입부에서 막판에 결정타로 작동할 ‘라이브 에이드’ 준비과정을 예고한 서사구조는 일종의 액자구조(miseen-abime, 액자구조)의 효능을 맘껏 발휘한다. 그 과정으로 소개되는 퀸의 성장과정은 프레디의 등장과 공헌으로 연결된다. 이를테면, 여왕이 존재하는 시기 풍요로움을 누린 영국에서 퀸이란 명칭이, “두 명의 퀸이 존재한다”라는 자부심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 퀴어Queer문화에서 보듯이 퀸은 퀴어의 유사어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마치 자신의 성소수자 성향을 예감한 듯 프레디는 밴드 이름을 스마일에서 퀸으로 바꾸기를 제안해 독자성을 확보한다.

 프레디의 도발적 저항성과 밴드 이탈 시도, 퀴어로 변신하는 과정 끝에 전설적 무대로 진행되는 서사는 대중음악 밴드로서 퀸의 가치와 그 역사성을 따라잡게 해준다. 그 여정에서 프레디는 독보적 예술가 페르소나 탐구의 장으로 작동한다.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프레디는 인도 국제학교에서 다양한 예술적 교육을 받고 영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로 에이즈로 사망한 상처투성이 아웃사이더 퀴어이다. 그런 그의 아픔과 고뇌, 탈주를 광적으로 풀어낸 <보헤미안 랩소디> 창작과정과 공연은 그가 겪어온 차별과 그로 인한 콤플렉스, 퀴어문제로 당대 영국사회에서 당한 스캔들 등… 온갖 문제를 음악 예술의 흥취로 날려버린다. 실제로 무대공연에서 보듯이 그와 관객의 소통에너지는 대단한 음악의 힘을 증명해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프레디 역을 소화해내는 라미 말렉 또한 신들린 듯한 연기로 흡수력을 발휘한다. 심한 뻐드렁니를 가리고픈 욕망으로 기른 진한 콧수염, 당당한 상체를 맘껏 드러내는 민소매 속옷 같은 셔츠, 하체 윤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타이트한 진바지 복장으로 스탠드 마이크를 기타처럼 휘두르며 무대를 누비는 장면들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봉합해 버릴 정도로 프레디로 라미가 융합되는 몰입의 향연을 제공해준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프레디에 비해 왜소하게 느껴지던 라미의 이질감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음악속에 점점 소멸돼가는 것만 같다.

 그에 비해 퀸을 구성하는 다른 세 멤버들은 그만큼 아웃사이더로 보이지 않는 부르주아 백인 청년들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같이 곡을 만들며 때론 갈등을 겪으며 부딪치는 장면에서 저마다의 입장과 방식으로 기존 체제 모순으로부터 탈주하고픈 욕망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면모를 엿보게 해준다. 표현 강도는 약하지만 한때 밴드를 떠났던 프레디가 죽음을 예감하며 강렬하게 부탁해 재결합하는 장면은 짧지만 의미심장하다. 그를 다시 받아주기로 결정하기 직전 세 멤버는 사무실에서 잠시 나가있으라, 라고 그에게 명령하듯 주문한다. 마치 그를 빼놓고 심각한 논의를 할듯하지만 그냥 그에게 그러고 싶어서 해봤다는 코믹한 대화는 따로 또 같이 하는 이들의 음악적 연대감을 가늠하게 해준다. 그래서 죽음을 예감한 프레디에게 로저가 “너는 전설이야!”라고 하자, “우리 모두 전설이야. 모두 아웃사이더들(Misfits)이야” 라고 프레디가 응수한 것이리라. 그런 상징성은 엔딩 크레딧에서 나오는 <Don’t Stop Me Now>와 <The Show Must Go On> 리듬을 타고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인생은 무대 위 한 편의 연극”이기에 프레디도 퀸도 거기 호응하는 현재 한국 관객도 씨네 콘서트 붐을 생성해낸 셈이다.

 

 

* 《쿨투라》 2019년 2월호(통권 5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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