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둘이 예술 하는 삶의 미술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둘이 예술 하는 삶의 미술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2.04.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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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F_차가운 바람이 집으로 들어올 때
이진주 이정배

본업을 마친 후 화실이나 동호회에서 그림을 그리는 취미 미술 인구가 크게 늘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산뜻한 포스터 하나, 삽화 기법을 보여주는 짧은 편집영상 한 편으로도 큰 호응을 얻는다. 그래서일까? 국제적으로 이름난 현대미술가의 신작부터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의 명화 모방까지 무수한 그림들pictures이 SNS에 넘쳐난다. 미술이 우리 사회에서 언제 또 이렇게 사랑받을까 싶게 관심이 높고, 이미지를 통한 의사소통도 효과적인 것 같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그처럼 뒤죽박죽된 오늘의 그림 난장에서 순도 높은 회화예술과 저렴한 시각이미지를 급을 따져 차별하고 싶은 심리들이 커져가는 것 같다. 어설픈 편견으로 누군가의 노력을 폄하하고, 갈라치기 할 목적으로 수준을 따지는 일은 모두를 빈곤하게 만든다. 그보다는 진지한 미술가든그저 좋아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든 회화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서로의 미적 판단력을 키우는 길이 생산적이다. 그럼 무엇부터 생각해볼까?

진주 Jinju LEE X 이정배 Jeongbae LEE, 별빛과 기도 Starlight and Prayer, 2022
진주 Jinju LEE X 이정배 Jeongbae LEE, 별빛과 기도 Starlight and Prayer, 2022

회화란?

르네상스 시대의 저자 체사레 리파Cesare Ripa는 1593년 시각이미지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일종의 사전으로 『도상학Iconologia』을 펴냈다. 초판은 라틴어 텍스트만 있었지만, 이후의 개정판에는 해설과 함께 도판들이 수록됐다. 특히 1644년 판본의 표지에는 ‘시’와 ‘회화’를 승화한 두 여인이 책 제목과 저자 이름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묘사돼있다. 둘 중 오른쪽이 여성명사 ‘회화La Pittura’의 알레고리다. 말하자면 ‘회화의 인간화’인 셈이다. 도판을 자세히 보면 그녀의 눈은 먹구름 너머 밝은 천상을 향해있고,입은 천으로 가려졌으며, 목에는 커다란 가면 목걸이가 무겁게 걸려있다. 여러 자루의 붓과 팔레트를 든 왼손은 감상자 쪽으로 내밀어져 있는 반면, 한 자루 붓을 꽉 쥔 오른손은 아래로 향해 지금 막 그림을 그리려는 모양새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 흑백판화 자체가 하나의 도상으로써 수십 세기 동안 서구 역사 속에서 다져진 회화의 미학적 본질을 함축한다. 요컨대 회화란 천부적 재능으로 천상의 가치를 추구하며(여신의 모습을 한 화가, 구름 너머 총체성을 지향하는 눈), 자연을 모방하는(얼굴을 닮은 가면), 침묵의 공간예술(가린 입과 그림벽)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리파가 도상학적으로 정리한 그 같은 회화의 정체성 중에서 특히 ‘이차원 평면의 정적인 예술’이고 ‘재현’을 핵심 목표로 한다는 점은 사실 동서고금을 관통한 예술이념이다. 심지어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처럼 지극히 다원화되고 복잡해진 창작 속에서도 수많은 미술가들이 여전히 바탕에 두고 고군분투하는 회화의 성질이다. 때문에 오늘 여기서 우리가 어떤 새로운 회화예술과 실험적인 그림들에 주목한다 해도 그 미학적 전통을 간과할 수는 없다. 오히려 회화의 깊은 미술사적 규준에 연결돼 있으면서 어떻게 기존과는 다른 독창성을 발휘하는가가 비평적 기준이다.

MAF_차가운 바람이 집으로 들어올 때_이진주 이정배
MAF_차가운 바람이 집으로 들어올 때_이진주 이정배

둘의 둘, 둘의 하나, 두 사람과 한 전시

여기 동양화를 전공한 이진주 작가와 이정배 작가가 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그 둘이 앞서 말한 회화의 전통을 내면화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동서양 회화의 큰 틀은 다르지만 정적인 예술, 모방의 원리는 겹친다), 그들이 그릴법한 동양화 유형을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두 미술가는 같은 대학,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나 결혼했고, 현재 청소년기 남매를 둔 부부다. 그 긴 시간 동안 이진주 작가는 탁월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줄곧 화면에 인물과 세상의 단편들을 미스터리처럼 정교하게 시각화한 그림을 그려왔다. 반면 이정배 작가는 동양화의 산수화 정신에 근접하기 위해 오히려 조각, 사진, 가구 등 다양한 매체나 분야를 넘나들며 현실의 공간과 사물의 입체성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이진주와 이정배 작가는 공통의 배경과 공존의 조건, 반면 각자의 뚜렷한 예술 기질 및 목표를 유지하며 창작 활동을 해왔다. 두 미술가가 십 년이 훌쩍 넘는 동안 꾸준히 이인전을 열어온 점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특히 이들에게 이인전이 둘이 둘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둘이 하나일 수 있는 중요한 발표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 멋지다. 그저 전시에 참여한 작가 숫자를 가리킬 수도 있는 그 평범한 전시 형태가 말이다.

이진주와 이정배가 복합문화공간 MAF에서 가진 네 번째 이인전 《차가운 바람이 집으로 들어올 때》(2022. 2. 9. ~ 4. 2.)는 그 중 특별한 분기점이라고 평하고 싶다. 여느 감상자라면 전시장 안에서 두 작가의 작품을 구별해 보는 일부터 할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팀이나 그룹을 이뤄 활동하는 이들의 공동창작, 협업작품 전시와는 달리 두 작가의 독립성이 유지된 채 공존해야 ‘이인전’이라는 형식에 부응할 테니까. 그런데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이 보고 느끼게 되는 것은 고요한 분위기를 주도하며 대범한 구성으로 연출된 공간예술이다. 마치 소리 없는 연극무대를 마주하는 듯도 하고, 회화적으로 구성한 실내 디자인의 쇼룸을 거니는 듯도 해서 가벼운 혼란을 느낄 수 있다. 혹은 시각적으로 쓴 서정시 또는 서사문학을 읽는 듯도 하고, 입체와 반半입체의 조각/가구가 그림처럼 만든 선과 색채 속에서 마음을 놓고 거니는 듯도 하다. 하나의 전시 내부에서 고요하게 흐르는 선형의 목재 조각, 밝고 선명한 색조의 부조, 회화와 조각의 어느 경계쯤에 있어 보이는 가구, 그리고 무엇보다 비정형 화폭에 세밀하게 묘사된 그림들이 공존하는 덕분이다.

예컨대 이정배 작가가 흑단나무를 2cm 두께로 얇게 깎아 822cm 길이로 만든 〈Wave〉 조각과 노란색 〈네 개의 달〉 부조는 전시장 초입의 벽면을 횡단해 설치됨으로써 갤러리 공간의 단조로움을 깨면서 동시에 시적인 고요를 만들어냈다. 이진주 작가는 남편이 만든 비정형(원형은 물론 이차원 외곽선 그대로 자른 얼굴, 손, 육각형, 칸막이 책장 모양 등)의 화폭에 데스마스크처럼 창백한 여자 얼굴, 반라인 채로 엎드린 여자의 등과 그 위의 수박껍질, 죽은 새나 가시 돋친 선인장을 소중한 듯 품은 앙상한 양손, 목줄과 입마개를 한 맹견, 식물들, 공구들, 쪽지, 리본 등을 세밀화 기법으로 묘사해냈다. 그렇게 이진주는 연관성 없어 보이는 존재와 사물들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단순 모방하거나 스토리텔링처럼 구구절절 묘사하는 대신 기이한 상상력을 유발하는 화면 질서로 형상화함으로써 재현을 넘어선 재현의 그림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두 작가의 상이한 시각언어와 질료, 기법과 주제로 구현된 각자의 작품들은 《차가운 바람이 집으로 들어올 때》에서 연접, 병렬, 교차의 디스플레이 방식을 통해 하나의 전시로 직조된다. 그것이 내가 앞서 썼듯이 ‘대범한 구성으로 연출된 공간예술’의 의미다. 이에 더해 감상자가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차원의 융합도 있다. 이진주 작가의 그림들에서는 유독 진하면서도 감미로운 색조가 배어나온다. 이는 아름다운 검정색(이정배 작가가 안료와 아교 등 미디움의 배합을 실험한 끝에 만들어낸 짙은 검정색, ‘JB블랙’ 또는 ‘이정배블랙’이라 명명)이 배경색이 된 화폭 안에 의미심장한 형상들이 그려져서다. 이정배 작가 입장에서 그 검정은 상대방/아내의 작품 속에 스며들어 에너지원이 되고 있는 자신의 감각일 것이다.

이처럼 이진주와 이정배, 두 미술가는 동서양 회화의 오래된 전통과 표현 역량에 발 딛고 선 채 현대미술의 다원성과 유연성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각자의 작업을 이끌어왔다. 그렇기에 기꺼이 그 미술의 전문성과 높은 수준을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두 작가의 미술은 정통의 조형성과 이상적 미의식을 지향하면서도 둘이 함께 헤쳐 온 현실의 복잡한 삶을 솔직하게 작업과정으로 품으며 낳은 결정체인 것이다. 요컨대 한 집안의 남편, 아내, 아빠, 엄마지만 어느 한 쪽도 예술가로서의 자기 삶을 놓을 수 없고 상대방의 미술 또한 온전히 지탱시키며 닦아온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서로를 비춘다. 거기에는 무거운 가면을 목에 건 회화의 알레고리 대신 진짜 얼굴의 인간과 미술이 있다.

 

 


강수미
미학자. 미술 평론가.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 발표. 2021. 6. 1. ~ 11. 30 미 국무부와 한미교육위원단의 풀브라이트 미드커리어리서치 프로그램 Visiting Scholar로서 카네기멜론대학 로보틱스 인스티튜트에서 연구.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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