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詩의 정원, 김영진문학관에서 만난 김영진 시인
[INTERVIEW]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詩의 정원, 김영진문학관에서 만난 김영진 시인
  • 손정순(본지 발행인)
  • 승인 2022.04.0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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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아현동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달렸을까? 6천여 평의 거대한 정원이 나타났다. 고양시 통일로에 자리한 벽제 김영진문학관이다. 서울 근교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문학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초입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김영진 시인을 따라 문학관으로 들어서자 대리석에 새긴 벽제 김영진문학관’, ‘김영진성경시문학관’, ‘벽제 김영진시비공원’ 간판이 조각 작품처럼 서있다.

  1972년 한국 최대 기독교 출판사 성서원을 설립하여 50년 이상 운영해오고 있는 김영진 시인(성서원 회장)은 1944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안동사범병설중학교 시절 학원 성호운 작가로부터 문학 지도를 받았다. 이후 1천여 권에 이르는 독서와 왕성한 글쓰기를 통해 대학 국문과에 재학 중인 21세 때 『초원의 꿈을 그대들에게』라는 시집으로 등단하였다. 출판인이자 어린이 잡지 《새벗》을 550호까지 발행한 잡지인이기도 한 시인은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와 한국잡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책한테 길을 물어』, 『책 읽는 사람이 세계를 이끈다』, 『개성 맛있게 보기』, 『백두산』, 『성경 속의 인물』, 『빈 그릇의 노래』 등 50여 권이 있으며,한국기독교문학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예술대상, 대통령표창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넓은 광장의 조각과 설치 작품들
  사랑과 희망을 부르는 피리소리

  삼백여 대 주차가 가능한 넓은 광장 외곽을 걸었다. 마치 실내 전시관에서 풀내음이 물씬 나는 실외 조각 공원으로 이어지는 네델란드 크뢸러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봄비를 기다리며 웅크린 작은 대리석 수족 연못의 검푸른 이끼들이 그대로 한편의 작품이 되고, 곳곳에 서 있는 대형 조각과 설치 작품들이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광장 무대로 사용하면 운치 있을 거대한 돌판 위에는 김영진 시인에 대한 故 이어령 선생님(전 문화부장관)의 글이 새겨져 있다.

  “김영진 시인은 시를 쓰지 않는다. 그냥 노래한다. 시가 빛이라면 그의 시는 닭이 울기 전의 새벽, 아직 먼동이 트기 전의 어둠이다. 시가 새라면 아직 날지 않고 나뭇가지에서 막 깃을 펴는 순간이다. 시가 말이라면 아직 말하기 전의 혀이고, 입술이고 그 진동이다. 김영진 시인의 시는 몸짓이고 시선이고 온몸의 진동이다. 날숨과 들숨 사이에 멈춰 있는 공기, 폐부에서 맴도는 뜨거운 입김이다. 조금 있으면 폭발할 시의 뇌관이다”

  문학 거장들을 노래한 시비
  거대한 문학교과서 정원

  주차장 광장에서 소나무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왼쪽 산책로로 천천히 걸었다. 올라가는 길목 좌우에 자연과 인간, 그리고 백두산을 비롯한 명승지와 고향 등을 노래한 자작시와 송강 정철, 정지용, 윤동주와 토머스 불핀치(그리스로마신화), 월리엄 세익스피어(햄릿), 요한 볼프강 폰 괴테(파우스트), 이반 투르게네프(첫사랑), 레프 톨스토이(부활),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죄와 벌), 에밀리 브론테(폭풍의 언덕), 샬롯 브론테(제인 에어), 앙드레 지드(좁은 문), 헤르만 헤세(데미안),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 마가렛 미첼(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닥터 지바고), 앙투만 드 생텍쥐페리(어린 왕자), 어니스트 헤밍웨이(노인과 바다), 알베르 카뮈(이방인), 장폴 사르트르(구토)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국내외 문학 거장들의 작품을 시화한 시비가 끝없이 이어진다. 거대한 문학교과서 정원이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고민하는 햄릿이 없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젊음과 사랑을 되찾은 파우스트가 커다란 물음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큰 범죄를 저지른 라스콜리니코프가 밑바닥 인생을 사는 소냐에게서 아침 햇살처럼 찬란한 사랑을 발견하는 그 순간을 소설 속에서라도 만날 수 없다면,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갈증에 몸부림치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우리 자신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네 삶은 얼마나 초라해지고 누추해지겠습니까”

  문학관 너머의 문학관, 하늘정원
  하나의 거대한 숲속 예술 공간

  여기가 끝이 아니다. 완만한 경사로를 걸어 언덕으로 올라가면 거대한 시정원이 펼쳐진다. 작은 무대도 마련된 이곳에서 시낭송, 콘서트 등 예술 공연을 즐겨도 좋을 것 같다. 눈엽들이 꽃망울을 터트리려는 봄날의 하늘 정원은 사방으로 숨겨진 오솔길이 펼쳐지고, 연초록으로 피어나는 들꽃 속으로 그리운 이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이런 저런 아름다운 상상을 하며 하늘정원을 걷다보니 독일 뒤셀도르프 남쪽 작은 도시 노이스의 에르푸트 강가에 있는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이 떠올랐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벗삼아 헤리히와 헤르츠펠트, 렘브란트 등의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이 미술관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는 ‘숨겨진 미술관 TOP 10’에 선정된 곳이다.

  이른 아침 문을 열자말자 입장하여 종일 숲속 미술관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홈브로이히 섬 전체가 하나의 예술공간이 되기를 원했던 밀러의 소망은 어떠한 관료 체제에도 영향받지 않는, 자연이 예술만큼 중요한, 살아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숲과 들판을 거닐다 문득 조각 속으로 들어가고, 개울을 따라 산책하다 우연히 회화를 마주하길 바랐던 것이다.

  홈브로이히 섬은 보이지 않는 미술관, 미술관 너머의 미술관이 되었듯이 김영진문학관의 하늘정원 또한 보이지 않는 문학관, 문학관 너머의 문학관이 될 것만 같다. 봄날은 물론 초록빛 짙어가는 여름과 단풍물 드는 가을날, 그리고 눈꽃세상으로 환해질 겨울, 사계절을 모두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이곳이야말로 영화촬영 세트장으로도 안성맞춤이 아닐까.

  왼쪽 눈 근육에 마비가 오도록 일했다
  시민을 위한 힐링과 산책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늘정원 공원에서 내려와 새벗하우스 건물로 들어섰다. 실내에 마련된 김영진문학관 전시실에는 자작시와 시인이 펴낸 저서와 서울 혜화동 로터리와 일산 호수공원 등 시비詩碑를 찍은 사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지인들과 주고받은 연하장과 엽서, 편지, 전 세계 언어로 출간된 성경책과 수천 점의 아름다운 인연들이 병풍에 담겨있다. 구하기 힘든 옛 찬송가와 성경책은 돈의 가치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또한 황금찬 시인, 이어령 교수, 김승옥 작가의 친필 사인본 저서를 비롯한 “맨발의 여인 세계골프여제 박세리”와 벤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한 “피겨선수 김연아”의 뜻깊은 순간을 노래한 시도 볼 수 있다. 전시관은 섬세한 편집자인 김영진 시인의 삶을 오롯이 일축해놓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고향 예천의 폐교에서 시작된 ‘김영진문학관’이 고양시 통일로로 옮겨와 이제 뿌리를 내렸다. 이근배 시인은 “김영진 시인은 산을 찾고 물을 찾아간다. 소백산 줄기 예천 땅에서 태어나 학가산을 오르내리고 낙동강 지류 내성천에 발을 담그며 자랐다. 지게를 지고 눈밭을 오르내리고 송사리를 잡으며 그물을 치고 놀았다. 그 발걸음으로 분단이 가로지른 남녘땅을 다 돌아보고, 살아서는 밟을 수 없으리라는 북녘땅에 가는 길이 빼꼼 열렸을 때, 누구보다도 앞서 금강산, 개성, 평양, 백두산, 묘향산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한 줄의 시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이 말은 지식의 양이 느낌의 깊이를 보장한다는 것일까. 수천의 문학작품을 읽고 오전 8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2시간씩 시를 쓴 시인은 왼쪽 눈 근육에 마비가 왔다. 시인의 한쪽 눈 마비가 자연스러운 나이듦이 아니라 수많은 책과 원고지와 싸워온 글쟁이의 직업병이었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전시실 옆에는 한쪽 눈이 마비된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시인의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로 옮겨 인터뷰를 이어갔다.

  “내 시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한 편의 시가 노래가 되어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영혼의 노래이기를 꿈꿉니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 때 1,000권의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웠어요. 지금 좌절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시혼에 점화된 불빛, 시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만물이 모두 시의 몸짓입니다. 새가 우는 것도 시요, 사랑을 부르는 소리도 시요, 꽃이 피는 것도 시입니다. 천년을 엎드려 있던 돌에도 시의 힘을 불어넣으면 벌떡 일어설 것 같습니다.“

  시인은 대학 졸업 후 동양출판사에 입사해 출판 일을 시작했으며, 28세 때인 1972년에는 성서원을 설립하여 『성서대백과사전』, 『칼빈 성 경 주석』 등 전집류 발간으로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저는 청년 시절 안동사범학교를 다녔는데 음치라 선생님이 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우연히 미션스쿨로 학교를 옮겼고 그러면서 신神과 문학을 만났지요. 두 가지를 접목시킬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출판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을 하고 글을 쓰는 작업을 병행하다 왼쪽 눈 근육에 마비가 왔지만 그래도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아마 사람이 들고 다니는 성경책 10권 중 6권이 성서원 책일 정도로 출판사도 성공을 거두었죠. 또 월간 《새벗》이라는 한국 잡지사에 남을 소년잡지를 발행했고 잡지협회장도 지냈으니 그 동안의 삶에는 여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기독교인이 1,000만명에 가까운데 제대로 된 성경 문학관이 없어요. 기독교인이 성경의 원문과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문학성을 갖춘 시를 쓴다는 건 정말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요. 전 세계의 문학관을 탐방하고, 쉬운 언어로 세계의 명작을 노래한 이 문학관이 기독교인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힐링이 되는 아름다운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았습니다. 이제 세상에 힐링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시민을 위한 힐링과 산책 공간”을 꿈꾸는 김영진문학관은 현재 마무리 단계로, 올해는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상에 지친 많은 이들이,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아름다운 시의 정원을 찾아 힐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손정순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과 저서로 『흰 그늘의 미학, 김지하 서정시』, 『목월 詩의 현대성』 『문화예술현장에서 오늘의 영화를 읽다』 『문화예술현장에서 통섭적 글쓰기』 등이 있다. 문화예술기획자. 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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