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기행] 가우디를 느끼며, 바르셀로나를 걷다
[도시 기행] 가우디를 느끼며, 바르셀로나를 걷다
  •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22.04.0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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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공원
구엘공원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도시 바르셀로나는 수도 마드리드에 이은 스페인 제2의 도시이자 최대의 항구 도시이다. 2019년 봄날, 아침 일찍 몬주익 언덕Montjuïc Hill을 올랐다. 탁 트인 도시 전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쪽에 펼쳐진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면 느슨한 여유가 느껴지면서도, 다른 한쪽에 빽빽하게 자리한 빌딩 숲에서는 역동적인 활력이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우뚝 솟아오른 공사중인 건물이 눈에 띄었다. 언덕을 내려와 본격적으로 도시를 살펴보기 위해 구엘공원Parc Güell으로 향했다.

구엘공원
구엘공원

알록달록 자연 속 휴식처

인간과 자연은 어떤 관계일까?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이지 않을까. 한발 앞서 100여 년 전에 이 신념을 그대로 자신의 작품에 쏟아낸 예술가가 있으니 바로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이다. 가우디는 자연에서 온 곡선과 포물선에 집중하였으며, 자연과 어우러진 인간의 삶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냈다.

파리 만국박람회를 찾은 카탈루냐의 유력자 구엘은 네모 반듯한 작품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가우디 작품을 눈여겨본다. 구엘은 가우디의 ‘자연추구’ 건축 철학을 듣고 이에 공감하여 그를 구엘 가문의 건축가로 고용한다. 구엘의 후원으로 지어진 구엘공원은 원래 산중턱의 비경 속에 위치한 부자들을 위한 주거단지로 계획되었으나, 계획한 60채 중 가우디와 구엘의 변호사를 제외한 나머지 58채가 팔리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구엘 사후 재정난이 겹치며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다가 바르셀로나시에서 사들이면서 지금과 같은 공원의 모습으로 재탄생하였다.

구엘공원 정문을 통과하면 약간은 다른 세계에 들어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원래 있던 자연 환경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그 위에 현란한 컬러로 신화와 동화 컨셉을 섞어 만든 이 공간은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롭다. 「헨젤과 그레텔」에 영감을 받았다는 두 개의 관리사무소가 입구를 감싸고 있고, 입구 정면에는 압도적 균형감을 자랑하는 거대한 신전과 그 아래로 새하얀 벽과 계단에 박혀있는 오밀조밀 들어선 화려한 타일 장식이 보인다. 전반적으로 동글동글한 건축 스타일에 다양한 색깔이 사용돼서 게임 속 한 장면을 실사화한 느낌도 받았다.

가우디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재를 적극 이용하기도 했는데, 관리사무소 지붕 꼭대기를 살펴보면 붉은 바탕 속 하얀색 에스프레소 잔이 콕콕 박혀있다. 가우디는 술·담배를 하지 않는 대신 엄청난 커피 애호가였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커피를 끊게 되면서 여기에 그동안 집에 있던 컵들을 뒤집어 박아넣었다는 후문이다.

신전을 향해있는 용의 계단L’escalinata del drac을 오르면 유독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긴 줄이 보이는데 구엘공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조각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용보다는 푸른 도마뱀에 가까운 이 조각은 가우디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휘황찬란한 타일아트의 정수를 볼 수 있다.

신전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비례와 곡선의 균형감이 돋보인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도리아식 기둥인데, 아래 밑둥이 심상치 않다. 기둥 앞에서 다른 기둥들을 바라보면 하얀 밑둥 위 끝선의 높이가 같게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신전 모양을 한 이곳은 중앙 광장으로 거주민들을 위한 시장으로 계획되었다. 상인들의 시각적 피로감을 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둥에서 원근감이 최대한 덜 느껴지도록 설계한 것이다. 구름을 형상화한 천장에서는 현란한 타일 조각의 세계가 펼쳐진다. 특히 사계절을 의미하는 네 개의 태양 무늬는 화려함과 정교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층에는 자연의 광장Plaza de la Naturaleza이라고 불리는 널따란 휴게 공간이 있다. 자연의 광장에서는 구엘공원 지상과 주변의 멋진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다. 광장의 하이라이트는 곳곳에 배치된 파도 모양의 벤치이다. 인부들의 뼈를 본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이 벤치는 물결치듯 언덕을 따라 흐른다. 광장 옆으로 연결된 회랑은 홍해의 기적을 형상화했다. 곡선이 부각되는 회랑의 나선형 기둥 또한 물결치며, 회랑 끝으로 갈수록 점점 거세진다. 굽이치는 석조 물결과 주변을 둘러싼 높이 뻗은 야자수 행렬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빛이 선사하는 황홀경, 사그라다 파밀리아

공원을 나와 가우디의 최고작을 만나러 시내로 향했다. 그 주인공은 1882년 착공 이래 1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건축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성가정 성당)이다. 고딕 양식에 가우디만의 개성이 들어간 이 성당은 미완인데도 어마어마한 크기와 웅장함을 자랑한다. 소수정예의 카탈루냐인들만이 공사에 참여하기 때문에 완공까지 앞으로도 10년 이상 더 기다려야하지만, 계획대로면 현존하는 가장 높은 성당인 올름 대성당보다 10m 이상 높다고 하니정말 엄청난 규모이다. 신기하게도 멀리서 볼 때는 이렇게나 거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 성당을 구성하는 외곽선이 거의 다 곡선으로 구성되어 있어서인 듯하다. 부드럽게 솟아오른 옥수수 덩이 모양의 첨탑에서 왠지 모를 정겨움을 느꼈다. 성당 외관 중 가우디가 남긴 남동쪽의 탄생 파사드가 가장 유명하다. 특히 동쪽 면에는 가우디가 살던 동네 사람들의 형상을 본떠 조각했다고 한다. 반대편의 수난 파사드는 호세 마리다 수비라츠가 조각을 담당하였는데, 깔끔하고 각진 선들을 주로 사용하여 실제 인물처럼 세밀하게 묘사한 탄생 파사드와 정반대의 매력이 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고딕 양식의 웅장한 외관과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현대적인 것을 넘어 미래적인 느낌까지 뿜어내는 내부 모습은 숲속을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하얀 벽면에 꽃과 나무를 따라 만든 기둥이 솟아있고, 여기에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햇빛이 쏟아 내린다. 일조량에 따라 내부 색감이 그대로 반영되도록 만들어졌는데 동이 트면 푸른 빛이 들어 탄생의 느낌을, 해가 지면 붉노란 빛이 들어 죽음의 느낌을 자아낸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숲속을 걸으면 이런 느낌일까?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디디며 빛이 선사하는 황홀경을 만끽했다. 성당 지하에는 가우디의 무덤과 박물관이 있고, 박물관에서는 가우디가 스케치한 도면과 설계한 성당 모형 등을 볼 수 있다.

까사 밀라
까사 밀라

까사 밀라와 까사 바트요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가우디의 또 다른 걸작이 있다. 까사 밀라Casa Milà와 까사 바트요Casa Batlló다. 두 건물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중해 바다를 표현하고 있다. 채석장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까사 밀라는 해초를 표현한 발코니가 돋보이는 당대의 최고급 맨션이다. 여기에 재미나게도 각 층을 물결치듯 구분했는데 그래서인지 벌집처럼도 보인다. 옥상은 더 특이하다. 아주 독특하게 생긴 커다란 나선형 계단이 보이고 그 사이에 보이는 투구를 쓴 조각들은 다름아닌 굴뚝이다. 특이하게 생긴 이 굴뚝이 왠지 낯설지 않다. 왜냐면 이 굴뚝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이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와 스톰트루퍼이기 때문이다.

까사 바트요
까사 바트요

까사 바트요는 이 일대에서 가장 알록달록한 주택으로, 원래 있던 낡고 오래된 집을 인간의 신체구조를 주제로 가우디가 리모델링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뼈의 집이고 이러한 특징은 창문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까사 바트요의 또다른 별명은 용의 집인데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 조지왕자가 용의 심장을 칼로 찔러 무찔렀다는 전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붕을 살펴보면 푸른 타일 장식으로 용의 비늘을 표현하였고, 옆에 있는 십자가가 바로 조지 왕자의 칼을 나타내고 있다. 가우디가 만든 이곳의 십자가와 구엘공원의 십자가는 독특한 공통점이 있는데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십자의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까사 밀라와 까사 바트요는 그라시아스 거리를 옆에 두고 마주보는데, 여기서 큰 길을 따라가면 바르셀로나의 가장 번화가 람블라 거리가 있다. 위대한 문호 서머셋 모옴이 세계에서 가장 매력있는 거리라고 말하기도 한 람블라 거리는 ‘유럽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쉼없이 오고 가는 사람들로 활력이 넘치면서도 꽃과 나무, 그리고 공원이 함께 있어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길은 그대로 바르셀로네타La Barceloneta 해변까지 이어진다.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해변인 바르셀로네타는 넘쳐나는 인파로 에너지가 가득하고, 그 사이를 시원하게 파도 소리가 가른다. 100여 년 전 가우디는 이 길을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부드럽게 부서지는 지중해 파도 위에 가우디의 심연이 덧씌워진다.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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