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사진작가·영화감독 박찬욱] 범신에 닿기
[시로 만난 별 Ⅱ 사진작가·영화감독 박찬욱] 범신에 닿기
  • 장재선(시인)
  • 승인 2022.04.01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감독 박찬욱

무당에 놀아난 자를 돌로 쳐라!
이렇게 소리쳤던 자들은
팔매질을 멈추고
그의 사진 앞으로 걸어가라

저녁 산책길에 만난 파라솔이
하얀 유령의 검은 눈을 하고 있구나
풀 위의 돌멩이가 무덤의 상석이 되고
사람을 앉히는 소파가 표정을 짓는다

캄캄한 세상에서 어찌 사랑을 꿈꿀까!
속절없이 잔인한 유전인자로
한숨 쉬었던 자들은
그의 영화 속으로 들어가라

발가벗은 몸의 이야기들이
씻김굿으로 헹구어질 때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며
너와 나의 시간을 한없이 품는다. 

 


시작노트

“영화 시사회 때 화장실에서 만나고 못 뵈었는데, 여기서 뵈니 반갑네요.” 그의 사진전이 열린 건물 옆 레스토랑의 승강기에서였다. 벽만 쳐다보기가 민망해 무슨 말인가 찾는다는 것이 하필이면 화장실 이야기를 꺼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아, 네”라고 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전혀 기억도 못 하는 일이겠으나 상대가 아는 척하니 자기도 예의를 지켜준 것이다. 박찬욱 감독. 이런저런 자리에서 조우한 그는 유명 예술인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젠 체가 없어 보였다. 그게 더 오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사진전(2021년 10월)에서 그는 자신의 사진들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전시를 하는 작가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가 엿보였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예의와 도리를 다하고 싶어 하는 류의 사람인 듯싶었다. 그러니 투자자들의 돈과 제작진의 품이 많이 들어가는 영화를 만들 때마다 그 성과에 대한 부담이 클 것은 자명하다. 혼자 하는 사진 작업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그의 영화는 인간의 욕망을 깊고도 넓게 다룬다. 그것들을 보고 나면 삶과 세상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의 사진은 세상 만물에 생명을 부여한다. 이것들을 보고 있으면 내 주변의 하찮은 것들을 모두 사랑하고 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소한 것들을 대단하게 만드는 예술 앞에서 사람 사이의 분열은 사소한 것이 된다. 예술을 정치와 자본 권력의 심부름 도구로나 쓰려는 짓거리를 허섭스레기로 여길 수 있다. 

박찬욱은 영화, 드라마, 사진 등 장르를 넘나든다. 한국 연기자들뿐만 아니라 서양 배우들과도 작업을 한다. 아날로그 카메라에서 디지털로 넘어온 후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만드는 등 매체에도 경계가 없다. 이처럼 자신의 세계를 무한히 확장해 가는 예술가와 동시대를 산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배우 탕웨이, 박해일과 함께 찍은 영화 〈헤어질 결심〉을 곧 개봉한다니 무척 기다려진다.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서정주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