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속의 詩] 반려식물
[새 시집 속의 詩] 반려식물
  • 조온윤
  • 승인 2022.04.0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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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식물

조온윤

아침이 되면
나와 가장 가까운 육체부터 찾는다

누워 있던 자리에서 더듬더듬 손을 뻗어보면 축축한 목덜미가 만져진다
간밤의 꿈을 이불 위에 쏟아버린 나의 가여운 반쪽
떨지 마 네겐 빛이 조금 모자랄 뿐이야

몸을 일으켜 세워 기지개를 시킨다
찬물을 한모금 먹이고 잘 마른 새 옷을 입힌다
창을 열어 오늘의 날씨를 가르쳐준다 이 모든 게 지겹도록 반복되지만

세상의 모든 반쪽은
나머지 절반마저 제 것인 줄 안다

식탁에 앉아 턱을 괴고 실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그것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멀뚱멀뚱
나를 방금 처음 만난 사람처럼 굴 때면 화가 나다가도
하얀 눈밭 같은 눈동자가 무구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네 속을 열어보고 싶어
그 안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고 싶어
쌀알처럼 무수한 빛으로 가득 채워주고 싶어
네가 고개를 들 때마다 들리겠지 물결에 부딪는 자갈 소리처럼

나의 반쪽은
나의 반쪽을 미워할 줄 모르니까

나는 나를 모르는 내가 시들게 두지 않을 것이다
밤이 되면 밤에게는 그림자를 돌려주고
육체에게는 오늘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늘 함께 있음을 이야기해줄 것이다

 

- 조온윤 시집 『햇볓 쬐기』 중에서


조온윤 시인은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문학동인 ‘공통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인은 “영원이라 믿었던 사람이 실은 영원이 아니라고” 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사람과의 만남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영원이라 믿었던 사람의 음성을 듣게 된다”(「십오행」)라고 이야기한다. 시인은 자신의 작품과 독자가 만나는 순간도 그런 영원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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