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리코리쉬 피자〉를 통해 본 ‘청춘’과 ‘달리기’의 상관관계
[영화 월평] 〈리코리쉬 피자〉를 통해 본 ‘청춘’과 ‘달리기’의 상관관계
  • 송석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4.01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리코리쉬 피자〉를 동사로 표현한다면 아마 ‘달리다’일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개리(쿠퍼 호프만)와 알라나(알라나 하임)는 시종일관 달린다. 넘어지고, 흔들리고, 쓰러진다. 사랑보다는 멀고, 우정보다는 가까운 둘의 관계 역시 그렇다. 청춘의 한복판에 있는 그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밀어내면서 동시에 끌어당긴다. 척력과 인력이 서로 버티어 대항하는 성질이 이 영화의 지배적인 운동성인 셈이다. 사실 이러한 설명은 〈리코리쉬 피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스틸컷
시간을 달리는 소녀 스틸컷

그들은 어디로 달려갔나

돌이켜보면 청춘영화 속 주인공들은 늘 그렇게 어딘가로 달려갔다.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대표적이다. 우연히 타임리프time leap 능력을 얻게 된 마코토는 노래방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지각을 면하기 위해서 시간을 돌린다. 시간을 돌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재빠르게 뛰다가 있는 힘껏 뛰어오르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코토는 자신에게 고백을 해오는 치아키가 부담스러워 타임리프 능력을 헛되이 사용하기 시작한다. 치아키가 자신에게 고백하기 이전의 순간으로 자꾸 시간을 돌리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영화의 후반부, 마코토가 치아키에게 달려가는 순간에 있다. 치아키의 고백을 계속해서 외면했던 마코토는 결국 누군가의 진심은 외면할 수 없고,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달린다. 이제껏 달려 본 적이 없는 속도로 달린다.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달리고, 상대의 진심을 마주하기 위해서 달린다. 마코토의 달리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청춘의 성장이란 물리적인 육체의 커짐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로마 스틸컷
로마 스틸컷

구원으로서의 달리기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주인공인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는 멕시코의 중산층 집안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소녀다. 영화에는 오랜만에 자유 시간을 얻은 클레오가 친구와 함께 외식을 하기 위해 집에서 식당으로 뛰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카메라는 집에서 출발해 식당까지 도착하는 클레로의 움직임을 끊지 않고, 한 호흡으로 포착한다. 사실 이렇게 찍는 건 경제적이지 않다. 집에서 출발하는 장면과 식당에 도착하는 장면을 편집해서 붙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 순간을 편집으로 이어붙이지 않고 한 호흡으로 길게 담아낸 이유는 간명하다. 클레오가 달려가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 논의와 마찬가지로 〈로마〉도 클레오가 어딘가로 달려가는 움직임이 중요한 영화다. 그것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극적으로 도드라진다. 유산의 아픔을 겪은 후 클레오가 바다에 빠진 아이를 구출할 때, 왼쪽으로 사납게 몰아치는 파도에 맞서 그는 오른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이때의 움직임은 아이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구원하고자 하는 ‘연대로서의 달리기’라고 할 수 있다.

아워 바디 스틸컷
아워 바디 스틸컷

나를 위한 달리기

한가람의 〈아워 바디〉 역시 ‘청춘’이라는 명사와 ‘달리다’라는 동사를 마침맞게 녹여낸 영화다. 이 영화는 달리기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변곡점을 맞게 된 자영(최희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8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자영은 번번이 합격에 실패하면서 삶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런 자영 앞에 달리기에 진심인 한 여성이 나타난다. 그 여성으로 인해서 자영은 달리기 시작하고, 외모의 자신감은 물론 심리적으로도 건강해진다. 달리기를 통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며, 조금씩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워 바디〉는 치열하고 각박한 경쟁에 지친 청춘들이 달리기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움직임을 포착한 영화이다. 한가람은 “〈아워 바디〉는 내 경험과 주변에서 보고 겪은 일을 정리하는 일기 같은 영화”였다며 “자존감이 낮았던 20대 후반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운동을 하는 이유를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달리는 청춘들의 모습에서 관객들이 얻은 것은 불안한 미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다.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달리는 용기 말이다.

리코리쉬 피자 스틸것
리코리쉬 피자 스틸것

달리기는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나

다시 〈리코리쉬 피자〉로 돌아가 보자. 영화의 마지막, 개리와 알라나는 저마다의 실패를 경험하고 서로에게 달려간다. 이때 카메라는 개리와 알라나의 모습을 패닝 쇼트로 포착한다. 그러다가 중간에 그들의 모습을 정면에서 담아내는데, 이때 관객들은 개리와 알라나가 자신에게 뛰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영화 속 캐릭터가 관객의 눈과 마음속으로 쏟아지는 순간이다.

청춘의 한복판에서 그들이 달리기를 통해 얻은 것은 꿈이나 성장, 희망 따위가 아니다. 청춘영화 속 주인공들이 달리기를 통해 얻은 것은 그러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야 한다는 실감이다. 〈리코리쉬 피자〉는 개리와 알라나의 달리기를 통해 그러한 실감을 관객의 손에 쥐여 주는 영화다.

 

 


송석주
대학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제15회 《쿨투라》 신인상 영화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현재 이투데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TBN 한국교통방송의 영화 코너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다.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