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의 드라마를 심겠다: 〈고요의 바다〉
[드라마 월평]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의 드라마를 심겠다: 〈고요의 바다〉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04.01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_넷플릭스 제공
출처_넷플릭스 제공

드라마평론가와 드라마애호가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두고 내 안에서 상반된 생각과 감정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며 누가 옳고 누가 틀리는지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물론, 이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도 나고, 지는 사람도 나다. 승패를 알 수 없는 복잡미묘한 전쟁이랄까. 이럴 때 나는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든다. 음. 나에게 고맙고 미안해.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드라마평론가에게 드라마 리뷰에 관한 모든 집필 권한을 양보한다. 설사 내 취향에는 맞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가치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종의 직업의식이랄까. 그 작품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다가 서서히 잊혀가는 추세라면 나의 사명감은 더욱 뜨겁게 타오른다. 아.

드라마평론가로서 내가 최근 편애하는 작품은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다. “한국의 실패작”이라는 해외 매체들의 혹평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 밖으로 조용히 흘러가 버린 비운의 드라마. 님아, 그 강, 아니 그 바다를 건너지 마오.

드라마가 공개되고 나서 초반에는 평가가 꽤 긍정적이었다. SF장르 불모지라고 불렸던 대한민국에서 달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첫 SF 드라마! 등장 자체만으로 충분히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 장르적 몰입감이 떨어진다는 견해를 시작으로 다양한 관점의 혹평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음. 음. 이하 생략.

출처_넷플릭스 제공
출처_넷플릭스 제공

〈고요의 바다〉의 탄생 배경

드라마 〈고요의 바다〉의 작품성을 논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드라마가 어떤 배경에서 탄생한 것인가. 즉, 한국 드라마 역사에 있어 어떤 문화적 좌표를 차지하느냐이다. 단순히 〈고요의 바다〉가 우주적 상상력을 모티프로 한 한국 최초의 SF 드라마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왜 지금 우주를 배경으로 한 한국 드라마가 출연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의 문화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 점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고 나는 부탁하고 싶다.

최근 일 년 사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들여다보면 한국 드라마의 흐름이 한눈에 보인다. 〈오징어 게임〉으로 시작해 〈마이 네임〉 〈지옥〉 그리고 〈고요의 바다〉까지 한국 드라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그러니까 글로벌 신한류 K-드라마의 역사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 드라마 산업에 미치는 빛과 그림자를 차지하고 그 자체만으로 참으로 놀라운 존재감이 아닐 수 없다.

2021년 세계적인 화제작 〈오징어 게임〉은 이제까지 한국 드라마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적용한 작품이다. 데스 게임이란 장르물에 지극히 한국적인 세계관을 접목해서 가장 K-드라마스러운 작품을 만든 것이다. 반면에 〈마이 네임〉은 언더커버 장르물의 서사 원형을 차용하면서 한국적인 느낌을 의도적으로 쏙 뺀다. 기존 K-드라마와 달리 사회비판적인 느낌이 적다고 혹평을 받기도 했는데, 그 점은 역으로 드라마의 무국적성을 강조함으로써 K-드라마의 장르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그다음에 공개된 〈지옥〉은 사적 복수를 다룬 다크 히어로물에서 모티프로 따온 것으로 보이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신과 인간의 문제, 그러니까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서구문화권에서 주된 소재로 사용했던 종교적인 설정을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신과 인간의 문제를 다룬 드라마 〈지옥〉은 한국 드라마로서 세계 시장에 정면 대결을 시도한 거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아시아 프린스’ 한국이 아닌 세계의 한국이 되겠다는 위풍당당 출사표인 셈이다. 한국발 ‘디지털 실크로드’ 넷플릭스의 종착지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문화권이 될 테니까. 마치 BTS가 미국 빌보드 정상에 오른 것처럼 말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는가. 아.

세계를 향해 위풍당당 한국이 내민 출사표 〈지옥〉 바로 다음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고요의 바다〉다. 이제 세계를 넘어 우주로 가는 것이다. 덤빌 테면 다 덤벼라. 이런 패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출처_넷플릭스 제공
출처_넷플릭스 제공

한국형 SF 드라마는 같으면서 다르다

〈고요의 바다〉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된 지구인들이 물을 대신할 ‘월수’를 찾아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떠났다가 겪게 되는 여러 위기를 다룬 SF 드라마다. 전 세계 물 부족 현상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인데, 사실 설정 자체만 두고 보면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나 미국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를 보면 지구 공통의 문제가 있고, 그걸 해결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고요의 바다〉에서도 “우린 다음 세대에게 뭘 줄 수 있을까”라는 대사가 나온다. 월수를 찾아 떠난 ‘지구인’들이 모두 한국인이기에 이 진지한 대사는 한국어로 나온다. 한국이 세계를 걱정하는 날이 오다니! 이제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벗어나 세계를 무대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는 게 실감이 나는 대사다. 그런데 감동은 딱 거기까지다. 주인공이 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뀐 것뿐이라면 말이다.

〈고요의 바다〉에서 주목할 것은 세계 공통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드라마의 간단한 설정만 접한 사람들은 전형적인 미국 히어로물처럼 한국 국적의 히어로가 짜잔하고 멋지게 등장하여 세계를 구원할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가령, 달 탐사선의 캡틴이 나서서 우여곡절 끝에 월수를 확보하고 전 세계 물 부족을 해결하는 데 성공하는, 그렇고 그런 스토리 전개. 우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세계 구원은 그러한 ‘미쿡’식으로 이루어져 왔으니까.

출처_넷플릭스 제공
출처_넷플릭스 제공

고요의 바다가 고요한 이유에 대하여  

〈고요의 바다〉는 완전히 다른 길을 택한다. 같은 문제 상황이라도 그걸 해결하는 방식이 미국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는 완전히 다르다. 이 지점에서 K-드라마가 세계드라마의 정상에 우연히 오른 게 아니라는, 그 엄청난 내공을 실감하게 한다. 자, 여기서 힌트. 〈고요의 바다〉에서 물을 대신할 월수 샘플을 확보하러 간 연구기지 이름이 무엇일까. 바로 ‘발해’다.

발해는 한국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지점을 차지하는 나라다. 한국은 줄곧 한민족이라는 단일민족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발해는 고려인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이 힘을 합해 세운 다민족국가다. 여러 민족이 가진 장점을 모두 흡수하여 문화적으로 매우 풍요로웠다고 전해진다. 극 중 한국인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난 곳이 ‘발해’란 이름을 가진 곳이라는 점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극 중 월수는 전 세계의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키로 등장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위험한 속성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진다. 월수는 증식하는 물로서 조금의 월수로 엄청난 물을 생산해낼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인간과 접촉해서 그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때까지 증식한다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된다는 것이다.

월수의 양면성을 알게 된 〈고요의 바다〉 속 등장인물들은 고민에 빠진다. 월수를 확보하면 전 지구적인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한국은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대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평등한 관계의 공유나 나눔이 아니라 수직적 수혜의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 이때 한국 그리고 한국 드라마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고요의 바다〉는 기존 SF물과는 결이 완전 다르다. 주연을 맡은 배우 공유가 공상과학물이지만 인문학적 작품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주는 드라마다. 드라마 공개 당시에 전개가 느려 지루하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플롯의 문제가 살짝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드라마가 건네는 질문에 대해 조금 천천히 그리고 깊게 생각해보시라는 제작진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고요의 바다〉 제작자가 유엔 난민기구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배우 정우성이다.

새로운 봄 4월을 맞이하여 〈고요의 바다〉와 함께 고요한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한다.

 

 


김민정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 문화를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드라마 인문교양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소설집 『홍보용 소설』 이 사람 시리즈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등이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