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내 목소리 찾기’를 외치는 교육가의 간절한 호소: 김진경 『시대의 경계에서 일인칭으로 말 걸기』
[북리뷰] ‘내 목소리 찾기’를 외치는 교육가의 간절한 호소: 김진경 『시대의 경계에서 일인칭으로 말 걸기』
  • 김민(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2.04.01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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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여러 지식인들이 팬데믹 이후의 사회에 대해 전망해왔다. 하지만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코로나19바이러스처럼 변이를 거치며 생존해 대부분의 예측을 무위로 돌려놓을 것이란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와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지혜를 동원해 그 안개와 같은 현실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오랫동안 한국의 교육 현장을 지키고, 국가 교육 정책수립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교육 전문가 김진경 역시 이와 같은 생각으로 이번 에세이집 『시대의 경계에서 일인칭으로 말 걸기』를 펴냈다. 그는 팬데믹 이후 우리 교육의 방향과 관련해 ‘일인칭 되찾기’를 강조한다. 우리의 학교 교육은 ‘진정한 나 되기’를 가르친 게 아니라 끊임없이 ‘누구처럼 되기’를 가르치기만 했다. 끊임없는 ‘누구처럼 되기’로 이루어진 세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파헤쳐 보면 공허하다. 이것은 그간 산업화 시대에 세계의 중심이라고 일컬어져 왔던 미국이나 서구 선진국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마치 양파처럼) 다 벗기고 나면 바닥에 쌓인 껍질만 남고 중심부엔 아무것도 없”(「머리말」 중에서)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구조의 중 핵에는 겉껍질과 속껍질을 무한히 구별 짓는, 구별 짓기의 체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진경은 이러한 공허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인칭’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삼인칭으로 말하는 데 익숙한 기성세대와 다르게 일인칭으로 말하는 데 익숙하다. 그들은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누군가’가 되지 않고 ‘나’가 되어 말한다. 이런 주체야말로 우리의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고, 팬데믹 이후의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주체일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들이야말로 사전에 주어진 아무런 의미 없이 이제부터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자유를 받아들이고 의미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관계들을 형성하기 위해 ‘일인칭으로 말 걸기’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경계에서 일인칭으로 말 걸기』에서 시인이자 아동문학가, 교육운동가인 저자는 한국 사회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 상황을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정돈된 언어로 정리해낸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당면 과제인 교육 문제, 일자리 문제, 부동산 문제, 디지털 기술 혁명 등을 자신의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때로는 나지막하게, 때로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소리 높여 풀어내고 있다.

김진경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처럼 되기’가 아니라 ‘진정한 나 되기’라고 말한다. 이러한 ‘진정한 나 되기’를 그는 ‘일인칭으로 말하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자신의 생각을 자기중심으로 풀어내는 삶’이 바로 자기 존재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진정한 나 되기’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로 동일화하고 획일화하는 ‘1’의 논리는 결코 무지의 결과로 나타난 게 아니고, 차별 체계와 학벌 같은 그 결과물들은 결코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나타난 게 아니다. ‘1’의 논리는 산업 사회가 전쟁과 같은 극단적 폭력을 포함하는 총력을 기울여 구축한 논리이며, ‘1’의 논리를 실현하는 고도로 중앙 집권적인 국가 체제, 세계 체제가 총력을 기울여 만들어 낸 것이 차별 체계와 학벌 같은 결과물들이다.
- 본문 56쪽

‘진정한 나 되기’는 현재 자신이 어떤 상황과 자리에 놓여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즉 우리가 당면한 문제 상황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찬찬히 살펴본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저자 본인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실업과 여러 직업을 오가며 복잡하고 불안정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우선 그 복잡한 교육-직업-인생을 일관성 있는 하나로 파악하고 기획하며 의욕을 가지고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자기형성의 힘이다.
- 본문 191쪽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이변, 새로운 전염병의 대유행은 인간의 시간 바깥에 있는 자연 사물들이 일으키는 구조사 차원의 변화이다. 이 구조사 차원의 변화는 경제 사회 구조 전반에 변화를 일으키며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고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뉴 노멀’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222쪽

시인으로서 ‘참혹한 것에 입을 달아 주려’ 했고, 아동문학가로서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고자 했으며, 교사이자 교육운동가로서, 국가교육회의 의장으로서 한국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노력한 저자의 삶은 어쩌면 그 자체로 ‘진정한 나 되기’의 한 모습이다. 이러한 저자의 삶을 바탕으로 한, 현실 문제에 대한 해법을 담은 『시대의 경계에서 일인칭으로 말 걸기』는 스스로의 바람처럼 ‘자유와 그 자유를 실현하는 길 찾기를 희미하게나마 밝히는 작은 촛불 하나’가 될 것이다.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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