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몽타주’는 지금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정하 『몽타주-영화적 사유의 현재적 운동』
[북리뷰] ‘몽타주’는 지금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정하 『몽타주-영화적 사유의 현재적 운동』
  • 양진호(본지 에디터)
  • 승인 2022.04.0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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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미학적 발명품이 영화라면, 그 영화를 대표하는 이름은 몽타주일 것이다. 몽타주는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현재의 이미지 환경에서 몽타주 패러다임은 어떤 시사성을 갖는가?

영화학자 이정하 교수(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의 『몽타주: 영화적 사유의 현재적 운동』는 영화의 역사와 몽타주의 관계, 그리고 시각적 인식론의 문제의식과 몽타주의 가치를 깊이 사유해나간다. 들뢰즈의 『시네마 2: 시간이미지』, 자크 오몽의 『영화와 모더니티』 등을 번역 소개한 바 있는 저자의 단독 저서로는 첫 책이다. 이정하 교수는 다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120년의 영화 역사를 폭넓게 개관하고 몽타주 원리를 공유하는 다양한 대상과 실천들에 대해 밀도 높게 성찰한다.

1장 「영화의 운동, 몽타주의 운동」에서는 역사적 모던기에 태어나 성장한 영화의 역사에 주목한다. 블로흐가 “몽타주야말로 모던의 시간성이 요구하는 인식 형태”라고 말했듯, 몽타주는 20세기 내내 기술적, 개념적으로 눈부신 진화를 거듭했으며 전위적, 창의적 방법론으로 인정되고 공유되었다. 1장에서는 우선 영화의 창시자로서 뤼미에르의 영화를 멜리에스 등에 견주어 설명하고, ‘몽타주-왕’ 시기로 일컬어지는 1920년대 소비에트 몽타주 학파의 실험들을 자세히 소개한다. 쿨레쇼프 효과, 푸도프킨의 벽돌 쌓기 몽타주, 에이젠 슈테인의 어트랙션 몽타주 등을 비롯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대한 개념으로 작용하고 있는 파편화, 플랑-세캉스, 매치, 사실 이미지, 시간성, 연속/불연속, 시점 등이 해명된다.

2장 「몽타주의 설계자들」에서는 영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논쟁적인 몽타주 인식론의 주창자 에이젠슈테인과 지가 베르토프, 고다르의 이론을 압축적으로 들여다본다. 오늘날 이미지의 역량을 성찰하는 흐름에서 이 거장들이 창안하고 실천했던 형식과 개념들은 여전히 새롭게 부상하고 재발견되고 있다. 2장에서는 유기적 전체를 만드는 몽타주의 실질적인 운동, 그 역량의 실현 방법, 그리고 이를 수용할 집단적 신체인 관객의 역할 등을 탐구하고 내적 독백, 감각적 사유, 개념-이미지, 파토스, 엑스터시같은 개념들을 산출해낸 에이젠슈테인, 인간의 눈에 대한 구체적 인식에서 출발해 영화-기계가 열어줄 시각의 확장과 인식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이론화하고 그 실효성을 증명하고자 했던 지가 베르토프, “미장센은 시선, 몽타주는 심장의 박동” 같은 표현처럼 누구보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선보였으며 새로운 몽타주 형식 실험을 통해 영화를 근본적으로 재발명하고자 했던 고다르를 분석한다.

에이젠슈타인
에이젠슈타인
지가 베르토프
지가 베르토프

3장 「몽타주와 시각적 지식의 고고학」에서는 앞서 계속 탐색해온 몽타주의 역량을 영화와 예술 장르를 넘어 삶의 창조 역량으로서 사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모더니티 현상으로서 몽타주에 대해 논의한다. 저자에 따르면 몽타주는 영화에서 타 예술로, 더 나아가 인식의 장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이주한 개념이다. 그 예로서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전위적 방법론인 포토몽타주, 아상블라주, 자동기술 등을 검토해본다. 또한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바르부르크의 ‘이미지-아틀라스’, 하룬 파로키의 ‘이미지들의 이미지들’ 같은 작업을 고찰하며 반시대적이고 변증법적인 시간 이미지 혹은 이미지 몽타주 등에 관해 사유해본다. 동시에 디디-위베르만이 제기한 시각적 지식의 고고학이라는 문제의식을 검토하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루크레티우스의 시뮬라크르론 등을 새로운 관점에서 읽는다.

영화는 재현적 예술 체제에서 미학적 예술 체제로의 전환을 이끈 19세기 미학혁명에서 시각적 현전성과 몽타주라는 이중의 자산을 물려받아 이를 최고의 역량으로 구현한 예술이다. 점에서 몽타주는 예나 지금이나 단순히 시각효과나 기저 요소들의 조합으로 환원될 수 없는, 영화 전체의 의미와 구조를 통합적으로 생산하는 핵심 기제이다. 그러나 지난 한 세기 동안 영화가 무엇보다 눈의 역사였다고 회고하는 오몽이 이제 눈의 지배가 이의 제기되고 이미지의 지배로 대체된 시대, 그리고 그 결과로 몽타주의 성격이 변화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라고 진단하는 것 또한 타당하다.
  - 본문 178쪽

고다르에 따르면 영화는 단지 한 예술의 이름이 아니다. 영화는 “무엇보다 사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곧 예술이나 기술이라기보다는 “철학 혹은 과학에 속한 것”이다. 〈영화의 역사(들)〉에서 고다르는 이 말을 고쳐 “예술도 기술도 아닌 하나의 미스터리”라고 다시 쓴다. 미스터리, 즉 세계 혹은 세계의 경이에 관해 호기심과 질문을 유발하고 이 질문을 지속하게하는 매혹의 또 다른 이름, 그것이 영화라는 얘기이다 .
  - 본문 259쪽

“몽타주라 불리는 것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고다르), 몽타주라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이토록 치밀하고 풍성한 논의를 전개하고, 그러면서도 그 독창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영화 이론, 특히 들뢰즈의 영화 이론 연구에 있어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룬 이정하 교수의 첫 단독 이론서는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아 생산적 논의를 촉발할 것이다.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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