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한류 열풍을 이끌 코리아 감독들
[5월 Theme] 한류 열풍을 이끌 코리아 감독들
  • 김시무(영화평론가)
  • 승인 2022.05.0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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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콘텐츠(K-Contents)가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드라마와 영화 분야에서 한류의 파고波高가 드높다. 이른바 K-Movie의 흐름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이제 한국영화韓國映畵의 영문표기를 Korean Cinema라고 쓰는 것보다는 K-Movie라고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게 되었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 감독을 K-Director라고 부르는 것도 국제적인 현상이 되었다. 우리는 K-Movie의 흐름을 그 이전에 유행했던 한류韓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류 감독의 원조는 과연 누구일까? 사실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명성을 떨친 한국 감독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해야 할 원로 감독이 있다. 정창화(鄭昌和, 1928~)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정창화는 1967년 홍콩 쇼브라더스Shaw Brothers에 초청되어 홍콩에서 한국합작 액션영화를 여러 편 찍음으로써 한류영화의 선구자가 됐다. 그는 홍콩에서 〈천면 마녀〉(1969)를 필두로 〈여협매인두〉(1970), 〈아랑곡〉(1970), 〈육자객〉(1971), 〈래여풍〉(1971), 〈천하제일권〉(1972)을 연출했다. 〈천면마녀〉는 유럽에 수출된 최초의 홍콩영화였다. 더욱이 〈천하제일권〉은 미국에서 〈죽음의 다섯 손가락Five Fingers of Death〉이란 제목으로 개봉되어, 첫 주 흥행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근현대 영화인 사전』 참조)

정창화 감독의 경우는 배급망을 통해서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한국영화가 국제무대에서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제 순회Film Festival Circuit를 통해서였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1989년 제42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표범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의 작가주의 영화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이 작품은 이듬해인 1990년 스위스에서 개봉되었는데, 박스오피스 9위에 오를 정도로 흥행에도 성공했다. (전양준, 『영화관에서의 일만 하룻밤』 참조)

하지만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를린, 그리고 베니스영화제에서의 대상 수상은 요원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감독인 임권택이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된 것은 〈씨받이〉(1986)가 제4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가능했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2003)로 제57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였다. 2010년 제63회 칸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고故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Pieta〉라는 파격적인 영화로 2012년 제6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우리 영화계가 그토록 염원하던 황금사자상Golden Lion을 거머쥐면서 그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한국 영화팬들에게도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이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Palme d’Or을 수상했고, 프랑스 개봉 최초 100만 관객도 돌파했다. 그 여세를 몰아서 봉준호 감독은 지난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하여 감독상, 각본상, 그리고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영화상)을 휩쓸며 세계영화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이로써 K-Movie의 위상을 세계 무대에 떨치게 된 것이다.

지난 2019년부터 북미 상영에 들어갔던 〈기생충〉은 미국 관객의 호응을 받으면서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진입했고, 아카데미 수상 결과에 힘입어 1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Minari〉(2020)가 전 세계 영화계의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 영화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지난 202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드라마틱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이후 이 영화는 크고 작은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국내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을 했다.

영화 〈미나리〉는 브래드 피트Brad Pitt가 대표로 있는 ‘플랜 비Plan B’가 제작을 맡았고, 교포인 정이삭Lee Isaac Chung 감독이 연출을 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소속상 미국영화다. 결국 〈미나리〉는 할리우드 영화의 시스템 속에서 한국적 정서와 이야기를 담아낸 전형적인 K-콘텐츠라고 하는 것이 정답일 듯싶다.

지난 2021년 후반기 전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시리즈물 〈오징어 게임Squid Game〉의 연출자인 황동혁도 봉준호 감독을 잇는 K-감독의 후발주자다. 이 시리즈물의 인기 덕분에, 판권을 갖고 있는 미국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의 주가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후 많은 K-콘텐츠들이 속속 제작되어 역시 전 세계 영화팬들의 높은 기대 속에 공개되고 있다.

지난 3월 25일 공개된 애플TV의 오리지널 시리즈An Apple Original인 〈파친코Pachinko〉도 한류의 흐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K-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계 1.5세대인 이민진Min Jin Lee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시리즈물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을 떠나 일본에서 억척스럽게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는 이민 가족 4대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윤여정, 이민호, 진하, 김민하 등이 호연을 펼치면서 세계적 이목을 끌고 있다. 이 시리즈의 연출을 맡은 코고나다Kogonada와 저스틴 전Justin Chon은 모두 한국계 미국인 영화감독들이다.

2017년 〈콜럼버스Columbus〉는 라는 영화로 데뷔한 코고나다는 그전에는 웨스 앤더슨, 오즈 야스지로, 스탠리 큐브릭 등 유명 감독에 대한 비디오 에세이를 제작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크라이테리언 컬렉션The Criterion Collection을 통해 〈베리만의 거울Mirrors of Bergman〉, 〈히치콕의 눈Eyes of Hitchcock〉, 〈브레송의 손Hands of Bresson〉 등 거장 영화감독들의 걸작들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편집한 비디오 에세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예명인 코고나다는 일본의 유명한 각본가인 노다 코고의 변형이라고 한다.

본명이 전지태인 저스틴 전 감독은 영화 〈트와일라잇〉, 〈무법도시〉 등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2014년 코미디 영화 〈맨 업〉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그는 2016년에 제작한 영화 〈국Gook〉으로 이듬해인 2017년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는데, 이 작품은 1992년에 일어난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난 해 네 번째 장편 〈푸른 호수Blue Bayou〉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은 저스틴 전 감독은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열풍을 이어갈 차세대 한국계 감독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김시무 영화평론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를 거쳐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화학과에서 『라캉의 주체개념 재조명』(2005)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장호영화연구회’ 회장이다. 2015∼2016년 한국영화학회 회장, 2015∼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지냈다. 1997년 제2회 PAF비평상(영화평론부문)을 수상했다. 저서로 『스타 페르소나』(2018), 『홍상수의 인간희극』(2015), 『Korean Film Directors: Lee Jang-ho』(2009), 『영화예술의 옹호』(2001) 등이 있고, 역서로 『문화연구를 위한 현대 사상가 50』(1996), 『영화이론의 개념들』(1995), 『영화의 해부』(1994)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5월호(통권 9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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