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배용준 이병헌이 닦은 길… 이정재 마동석 박서준이 질주
[5월 Theme] 배용준 이병헌이 닦은 길… 이정재 마동석 박서준이 질주
  • 라제기(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 승인 2022.05.0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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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스틸컷
〈헤어질 결심〉 스틸컷

5월 17일 개막하는 제75회 칸영화제에선 예년처럼 박찬욱 감독(〈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브로커〉) 등 대가들의 신작이 대거 선보인다. 톰 크루즈 주연의 할리우드 대작 〈탑건: 매버릭〉, 톰 행크스 주연의 〈엘비스〉 등도 칸 스크린을 수놓는다. 세계 최고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을 상영작 면면이다. 강한 빛을 내는 영화들 사이에 한국영화 〈헌트〉가 끼어있다.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이다. 이정재가 주연을 겸했고, 오랜 지우이자 동업자인 정우성이 연기 호흡을 맞췄다.

〈헌트〉는 미드나잇스크리닝 부문 초청장을 받았다. 완성도 높은 장르 영화를 심야에 상영하는 부문이다. 〈헌트〉는 정보기관 요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첩보 액션물이다. 한국 신인 감독이 칸 레드 카펫을 밟는 건 2014년 〈도희야〉의 정주리 감독 이후 8년 만이다. 배우가 연출한 한국영화가 칸영화제에 초대된 것은 최초다. 〈헌트〉의 칸영화제 진출은 상징적이다. 한국영화가 감독의 연출력만이 아닌, 배우의 스타성으로도 해외 유수 영화제에 갈 수 있음을 시사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정재는 한국 배우의 해외 진출이 또 다른 단계로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하명중·윤일봉 등이 물꼬 튼 해외 진출

한국 배우의 해외 활동은 역사가 깊다. 하명중과 윤일봉이 1세대로 꼽힌다. 1960년대 말 홍콩으로 건너가 당대 아시아 최대 영화사 중 하나였던 쇼브라더스에서 활약했다. 하명중은 홍콩 이력을 발판으로 일본 영화 출연 직전까지 갔다. 두 사람의 해외 진출은 한국영화의 강세와 무관치 않다. 60년대는 한국영화 전성기였다. 홍콩, 대만과의 합작도 수시로 이뤄졌다. 정창화, 김수용 감독은 쇼브라더스로 스카우트 되기도 했다. 한국영화계의 해외 교류가 잦아지면서 배우들의 나라밖 활약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하명중과 윤일봉의 해외 연기 활동은 제한적이었다. 대중의 마음에 또렷이 각인된 작품들을 남기진 못했다. 출연 영화들이 동아시아권 정도에서만 상영됐다. 하명중은 일본 국적을 취득해야만 일본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는 조건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배우들을 받아들일 만큼 시장이 성숙하지도, 국제 관계가 원활하지도 않았다.

1970년대와 80년대는 한국영화의 암흑기였다. 70년대는 TV가 극장 대체재로 등장하고, 영화사 설립이 허가제로 바뀌는 등 제약이 늘어나면서 영화산업이 위축됐다. 80년대에도 침체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했다. 희소식이 해외에서 몇 차례 들려왔다. 〈씨받이〉(1986)의 강수연은 한국 배우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강수연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안았다. 국내 언론은 ‘월드스타’라는 호칭을 부여했으나 강수연의 잇단 수상은 해외 활동으로 이어지진 못 했다. 한국 배우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정도에 그쳤다.

〈헌트〉 스틸컷
〈헌트〉 스틸컷

한류, 한국 배우를 알리다

1990년대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획력을 지닌 젊은 영화인들이 대거 유입되고, 대기업이 영상산업에 뛰어들면서 충무로는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90년대 중·후반 등장한 ‘한류’는 영화계에 또 다른 활력소로 작용했다. 한류는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어권에서 인기를 얻고, 아이돌 그룹 H.O.T.와 클론 등이 동아시아권에서 환호를 받으며 시작됐다. 영화가 해외에서 각광받을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쉬리〉(1999)가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하며 영화 한류의 가능성을 엿봤다. 배우들의 해외 진출 길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박중훈은 〈찰리의 진실〉(2002)로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렸다.

2000년대 중반 한국영화가 중흥기를 맞으면서 외국과의 협업이 활발해졌다.한-홍, 한-중-일, 한-중, 한-일 합작 등 다양한 형태로 영화들이 제작됐다. 한국 배우들을 해외에 알릴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넓어졌다. 배용준이 KBS 드라마 〈겨울연가〉(2002)로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을 불러일으키면서 한류는 도약기를 맞았다. ‘한류 4대 천왕’(배용준, 이병헌, 장동건, 원빈)이라는 호칭이 등장했고,한국영화는 해외 판로를 더 넓게 확보하게 됐다. 한국 배우들이 아시아에서 인기를 모으자 할리우드가 상품성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칸영화제 등 유명 영화제에서의 성과는 한국영화 인지도를 높였고, 배우들의 면면을 세계로 널리 알렸다. 이병헌은 〈달콤한 인생〉(2005)의 칸영화제 초청을 발판 삼아 〈지.아이.조-전쟁의 서막〉등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마동석은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부산행〉(2016)이 화제가 되면서 할리우드로 건너가 〈이터널스〉(2021)에 주연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겨울연가〉 공식홈페이지
〈겨울연가〉 공식홈페이지

세계 팬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OTT

한국영화는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모았으나 세계 최대 시장 미국에선 변방 영화 취급을 받았다. 한국 배우의 해외 시장 진출에는 언어가 장애물로 작용하고는 했다. 이병헌과 마동석은 유창한 영어 실력 덕분에 할리우드 영화 출연이 원활하게 이뤄졌다. 2020년 〈기생충〉(2019)의 아카데미영화상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위업은 미국 내 한국영화의 위상을 바꿨다. 미국인들이 자막 있는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세계인이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됐다. 〈옥자〉(2017)에 전액 투자해 전 세계 가입자들에게 동시 공개했고, 드라마 〈킹덤〉 시리즈를 만들어 ‘조선 좀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판권 수출과 극장 개봉(또는 TV 편성) 등의 과정을 거쳐야 관객(시청자)과 만날 수 있는 유통 방식이 단순화하면서 한류는 빠르게 전 세계에 퍼졌다. 〈사랑의 불시착〉(2019~2020), 〈이태원 클라쓰〉(2020) 등이 넷플릭스라는 유통 고속도로를 타고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태원 클라쓰〉의 주연배우 박서준은 방송 1년여 만에 마블 영화 〈캡틴 마블2〉에 출연하게 됐다. 초고속 할리우드 진출이었다. 지난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 흥행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한국영화의 도전을 토대로 하고 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1999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편집부와 사회부, 국제부, 문화부에서 일했다. 영화 담당 기자로 15년 가량 활동했고 영국 서섹스대 영화학 석사다. 《한국일보》 엔터테인먼트팀장, 문화부장, 신문에디터를 역임했다.

 

 

* 《쿨투라》 2022년 5월호(통권 9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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