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INTERVIEW] 박찬욱 이무영 공동 시나리오 '미스테리오소' 연재 끝낸 이무영 감독
[2월 INTERVIEW] 박찬욱 이무영 공동 시나리오 '미스테리오소' 연재 끝낸 이무영 감독
  • 최창근(극작가 겸 연출가)
  • 승인 2019.03.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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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는  기량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

 

최창근(이하 최) : 안녕하세요, 감독님.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이무영(이하 이) : 지금은 대학에 있으면서 방학 중에는 시나리오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   

최 : 감독님 필모그래피를 보면 첫 시나리오가 송해성, 장현수 감독님과 공동 창작한 <본 투 킬>(1996) 이고요. 박찬욱 감독님과 같이 쓴 <삼인조>(1997)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가 있습니다. 감독님은 <아나키스트>(2000)와 <복수는 나의 것>(2002)까지 박 감독님과 같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셨고 정작 본인이 연출로 데뷔한 작품은 <휴머니스트>(2001)입니 다. 그 후로도 철저한 생활인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 로 작가로서는 정말 부지런하게 활동해 오셨는데요. 이무영에게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이라는 위치는 각각 어떤 영역으로 다르게 다가오나요?  

이 : 영화감독은 처음에 품었던 생각의 완성이고,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꿈을 품는 거고, 그러니까 수많은 꿈들이 인생에서 다 열매를 맺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위로받으면서 계속 쓰는 거예요. 

최 : <미스테리오소>는 2000년대 초반 박찬욱 감독님과 이무영 감독님이 박리다매라는 시나리오 창작집단을 만들어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할 때 이미 초고가 완성됐다고 알고 있는데요. 두 분이 같이 이 시나리오를 쓸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작업방식이 따로 있었을 거 같기도 하고요.

이 : 그 당시에는 거친 버전이었고 지금 것은 제가 고쳐 쓴 거죠. 거의 마지막으로 박찬욱 감독과 공동으로 쓴 작품입니다. 그 후 각자 혼자 각본을 쓰기 시작했죠. 작업방식은 특별한 게 없어요. 굉장히 좋은 파트너 관계로 짧은 기간 동안 많이 생산했어요. 저는 15년 이상 혼자했는데 아주 즐거웠어요. 요즘 저랑 일하고 있는 프로듀서가 아직 경험은 부족하지만 아이디어도 풍부하고 드라마를 쓰는 재주가 있어서, 같이 하는 게 좋아요.  

최 : 본격적으로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1958년에 리버사이드 레코드사에서 컨템퍼러리 시리즈로 발매된 텔로니어스 몽크 쿼텟의 동명의 앨범 <미스테리오소>에서 영감을 받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앨범의 표지는 그리스 태생의 이탈리아 화가인 키리코가 그렸고요) 감독님 자신이 재즈에 조예가 깊으시고 텔로니어스 몽크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게 느껴지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이 끌리셨는지요?   

이 :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너무 가격으로 매겨지고 평가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감이 있었어요. 그냥 순수하게 예술에 몰두하는 열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도 나를 다 던지고 그를 위해 서 다 줄 수 있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시나리오 의 주인공도 영웅이 아니라 바보 같은데 마음속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생각과 태도와 에너지가 있는 거죠. 텔로니어스 몽크도 그런 태도를 갖고 있어요. 즉흥연주에 자신의 삶을 다 던졌던 사람이에요. 몽크에서 이름을 딴 몽구도 순수하지만 정신이 오락 가락합니다. 반 고흐처럼요. 고흐의 그림에서는 고 통이 느껴져요. 그 고통에서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는 거죠. 이 각본도 영화화되면 그렇게 사람들을 위로해주면 좋겠어요. 

최 : 이 작품은 이몽구와 유수영의 불가사의하고 신비로운 사랑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배면엔 자신의 재능 없음을 한탄하는 한 가난한 재즈피아니스트 의 자의식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능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모든 예술가들의 초상도 엿보입니다. 감독님이 이 작품을 통해 독자나 관객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이 : 지금 말씀하신 것 그대로예요. 예술가로 살다보면 어느 순간 벽이 오거 든요. 좌절이 오고, 더 갈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거기 멈춰야 되는 사람이 있죠. 저는 내가 이것밖에 안 되어도 괜찮다는 걸 깨우친 것 같아요. 인생도 똑같잖아요. 모두가 어마어마한 장밋빛 미래를 꿈꾸지만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룬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그런 상황이 올 때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어 요. 이 시나리오에서도 주인공이 시력을 잃고, 아무도 봐주지 않는 지방 호텔라운지에서 피아노를 치는 상황에서도 만족하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그런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기량을 예술이라 생각하지만 저는 태도를 훨씬 더 중시하는 사람이에요.

최 : 모든 작품에는 작가 자신의 고유한 기호와 취향이 반영되는데요. <미스테리오소>도 LP 재즈판과 낡은 예술관 극장을 선호하는 등 최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아날로그 세대의 초상을 보여주고 있어요. 또 하나 제가 눈여겨본 것은 남성과 여성의 위치와 역할이 바뀌어 있는 건데요. 보통 연애나 애정 표현을 할 때 남자가 여자보다 적극적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거꾸로 설정돼 있습니다.

이 : 제 아내의 이름이 수영이에요. 거기서 여주인공 이름을 따온 건데, 아내가 저를 쫓아다녀서 결혼했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그런 일이 흔치 않았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굉장히 고맙더라고요. 남녀가 평등한 것들이 있고, 다른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아내에 비해 열이 굉장히 많고, 열정적이죠. 아내는 항상 차분하게 보고 사물을 제대로 판단하는 현명함이 있어요. 그런 인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똑같이 예술가고, 선한 사람들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살려는 태도들이 있지만 다르잖아요, 성향이. 아내와 결혼해서 처음 살 때 모습이 이 시나리오의 주인공들과 좀 비슷했어요. 

최 : 시나리오 공간과 인물에 대해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이 작품은 한 축에 가난한 예술가인 이몽구와 유수영을, 다른 축엔 부의 상징인 이훈과 박강자를 놓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적인 생활공간인 몽구의 집과 수영의 화실이죠. 이에 대치되는 공간으로 갤러리와 고급 중식 레스토랑, 화려한 연회장이 있고요. 이 공간으로 들어설 때 몽구와 수영은 자신도 모르게 기가 죽고 위축되죠. 클럽 시어(The seer)는 예술가들의 작업 무대고요. ‘시어seer’라는 말 자체가 앞일을 미리 내다보는 식견이나 능력을 가진 선견자先見者라는 의미 가 있는데 <미스테리오소>라는 앨범을 발매한 레코드 회사의 이름을 빌려온 카페 리버사이드처럼 감독 님이 의도적으로 따오신 거 같아요.

이 : 이 작품에서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아 내가 시력을 잃어가고 나중에 남편이 시각장애인이 되잖아요. ‘본다’는 것은 깨우침이니까. 이훈은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지만 자기 아내를 죽이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몽구와 수영의 관계에서 서로를 향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태도가 보이거든요. 그래서 결국 자기 아내를 죽이지 않잖아요. 그들의 존재가 한명의 생명이 없어지는 걸 막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본 다는 것은 주인공들이 처해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이훈이라는 또 다른 인물이 깨우침을 받기도 하고, 그렇게 봐야하는 거죠. 

최 : 클럽 시어는 단어의 의미처럼 하세민 쿼텟의 미래의 가능성을 내포한 연주공간이죠. 이훈의 별장은 수영이 나중에 작업하는 공간으로 쓰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이중적인 장소로 기능합니다. 바다는 몽구와 수영의 치유의 공간으로 그에 비해 호숫가는 인물의 내면 이 작동하는 심리적 공간으로 그려지면서 이곳에서 어떤 사건의 계기가 만들어집니다. 감독님이 공간을 설정하고 그 위에 인물을 배치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점은 무엇입니까?

이 : 저는 내러티브에 치중하는 편이에요. 장소가 어떤 상징성을 부여할 때는 충분히 그것을 감안하고요. 이 시나리오도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내러티브에 따라 그런 공간들이 필요하거든요. 제가 수영을 못해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물이 있는 공간을 굉장히 좋아해요. 바다가 들어온 건 개인적으로 좋 아해서고 클럽은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이 만든 <라운드 미드나이트Round Midnight>라는 재즈영화 에 나오는 공간을 정석으로 벤치마킹했어요. 밴드 멤버들 중 하세민은, 1996년에 죽은 가장 친했던 음 악평론가 동료에서 이름을 빌려왔고 베이스를 연주 하는 친구는 재즈평론가 중에 황덕호라고 있어요. 실제 황덕호는 너무 순한 사람이고, 몽구 같은 사람 이죠, 이 영화의 덕호 같은 사람은 아니에요. (웃음) 

최 : 몽구는 스스로 열정은 있는데 재능은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남의 걸 베끼는 재주밖에 없다고 자조하면서 텔로니어스 몽크의 사진을 향해 난 눈물나게 노력하는데 왜 안 되느냐고 항변합니다. 요즘 창작자들 사이에서는 열정이 곧 재능이라는 말 도 하는데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재능과 열정의 관 계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이 : 창작하는 사람들은 다 이중적 태도가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무언가 경지에 오르고는 싶은데 오르지 못하는 자신을 자위하는 것도 있는 거죠. 몽구 가 이 태도를 둘 다 보여줬어요. 제가 2000년대 초반까지 외국에서 가수들이 오면 통역을 했어요. 허비 행콕이 왔을 때 들었던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있 었던 일화예요. 같이 다니던 색소폰 연주자가 호텔 방에 혼자 앉아서 자기만 열심히 연습하는데 실제 공연에서 거의 매일 똑같이 연주를 한다는 거에요. 그걸 여기다 가지고 온 거죠. 몽구는 열심히 하는데, 더 이상 발전은 없고. 그런데 다른 멤버들은 신선놀 음처럼 자유자재로 즉흥연주를 하면서 발전하고 있고. 얼마나 괴롭겠어요. 

최 : 이 시나리오를 읽다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두 사람이 처한 곤궁한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몽구와 수영은 경쟁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인물인데요. 그 연장선에서 <흔들리는 포장마차(Swing Low, Sweet Chariot)>가 주제음악처럼 결정적인 장면에서 반복되기도 합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가에 해당하는 이 노래의 가사는 구약성서의 예언자 엘리아가 천국 에서 마중 나온 불꽃의 전차를 타고 요단강을 건너 다시 천국으로 갔다는 내용이니까요. 어쩌면 이 비루한 자본주의 사회를 이렇게 두 사람이 건너가는 그런 느낌을 주거든요.   

이 : 제가 목사의 아들이에요. 영적인 위로가 느껴 질 때 큰 위안이 되거든요. 한여름에 무덥고 그러다가 어디 노천 같은데 나뭇잎이 바람이 확 불면서 싹 소리를 낼 때가 있잖아요. 나중에 몽구가 시력을 잃으면서 무언가 자기가 영적으로 위안을 얻은 것처럼 보이거든요. 내러티브상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누구든 그런 영적 위로가 없으면 지옥이거든, 세상은. 엘리야는 죽지 않은 채로 하늘나라로 불꽃전차를 타고 가잖아요.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이 담겨있는 거죠. 제 아버지가 저한테 그런 경험을 주고, 나 스스로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거죠.   

최 : 저는 이 시나리오에 다분히 두 분 감독님의 자전적인 요소가 짙게 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두 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모든 영화인이 겪는 고충이라 고 여겨지거든요. 한 편의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해 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투자배급사가 제공하는 제작비이니까요. 그러니까 뜻있는 영화인들은 일찌감치 맘 편하게 독립예술영화 쪽으로 자신의 진로를 정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자본에 좌우되지 않는 자기만의 작지만 단단하고 알찬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겠죠. 감독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이 : 일단 영화는 자본이 앞에서 벽이 돼요. 이걸 넘어가야 결과물을 볼 수 있으니까 중요하다고 인식 안 할 수가 없어요. 자본의 손을 크리에이터가 잡아야 해요. 저는 상업영화, 독립영화 둘 다 좋아요. 똑같은 태도로 달려갈 거예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듯이 텍스트가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 더라도 흥미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드라마를 쓰는 창작자의 숙명이죠. 돈 때문에 예술을 하는 건 아니지만 티켓을 사서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만든 사람이 꿀리면 안 되잖아요.  

최 : <미스테리오소>는 전체적인 하나의 큰 틀 아래에서 세부적인 플롯의 인과관계가 작동합니다. 텔로니어스 몽크는 친구인 버드 파웰의 헤로인 소지죄를 뒤집어쓰고 연주 라이센스를 박탈당합니다. 반면 몽구는 원추각막 안질환에 걸려 실명위기에 놓인 아내 수영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각막을 내어주는데 요. 그런데 이것이 묘하게도 두 사람의 삶과 예술에 조응하고요. 몽구는 예술과 삶의 일치를 꿈꾸는 인물입니다. 수영은 몽구에게 삶이 고통스러우니까 예술은 즐기라고 하죠. 수영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예술과 삶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술도 결국 우리의 삶 안에 있는 것이니까요. 감독님에게 있어서 예술가의 삶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이 : 예술에서의 최고 경지는 자신의 창작행위를 즐기는 데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몽구는 자신은 벽에 부딪혔지만 자기보다 재능이 뛰어난 아내를 위해 각막을 주는 예술적 헌신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예술가인 거죠.  

최 : 제가 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장면 인데요. 전시회를 열었는데 손님이 없어 주눅든 수영에게 전화를 걸어 몽구가 고백을 하죠. “나는 당신 이 내 주머니를 다 거덜내도, 그림 한 점 못 파는 무능한 화가라도 당신을 사랑한다.” 그야말로 자본에 반하는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 순정을 발견 할 수가 있는데요. 모든 것이 사고 파는 상품으로 변질된 세상에서 이것은 도저한 낭만주의라고 밖에 볼 수 없고요. 이제 한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 순정의 힘을 감독님은 여전히 믿으시나요? 

이 :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두 명의 남녀 파트너는 예술에 대한 열망과 서로를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이 남다르죠. 요즘 그런 게 많이 없어진 거 같아요. 다른 사람을 향해 갖는 애틋한 마음이 차단되고 타인에 대한 헌신이나 희생 같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 된 거죠.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남을 위해 헌신 하는 고결하고 이타적인 태도가 있어요. 안중근이나 윤봉길 의사처럼요. 몽구가 그렇게 위대한 사람은 아니지만 단 한 사람인 아내를 위해 선뜻 각막을 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의 힘이 여전히 세상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최 : <미스테리오소>는 이야기 전개가 현재에서 과거 그리고 다시 현재로 옮겨오면서 중간에 극적인 반전이 있고 결말도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쩌면 이 시나리오는 영화로 형상화시킬 때 대중적인 미스터리 멜로가 아니라 한 편의 멋진 음악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감독님 자신은 이 시나리오를 어떤 영화로 만들고 싶으신지요?

이 : <라운드 미드나이트>의 젊은 버전, 연애버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영화 꼭 보세요. 허비 행콕도 나오거든요.

 

 

* 《쿨투라》 2019년 2월호(통권 5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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