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해외영화제를 빛낸 한국영화 수상작
[5월 Theme] 해외영화제를 빛낸 한국영화 수상작
  • 송경원(영화평론가)
  • 승인 2022.05.0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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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스틸컷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필요로 한 것보다 아카데미가 〈기생충〉을 더 필요로 했다.” 북미 영화평론가 저스틴 창의 평가는 〈기생충〉의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2020년 제 92회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4개 부문을 수상한 〈기생충〉의 성과는 영화사에 남을 대사건이라 말하기 손색이 없다.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처음이었는데, 심지어 외국어영화가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차지한 건 몇 단계의 과정을 뛰어넘은 결과다. 물론 아카데미에 앞서 2019년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기생충〉이 뛰어난 작품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기생충〉의 행보는 단순히 한 편의 작품이 거둔 성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카데미가 〈기생충〉을 더 필요로 했다’는 표현처럼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세계영화 시장, 나아가 콘텐츠 업계 전반의 변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모든 방면에서 영화의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합작영화 등을 통해 국가 간의 벽이 낮아진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해외영화에 완고했던 미국 영화 시장은 적극적으로 해외영화의 상영 비중을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첫번째는 영화시장 전반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극장영화와 그 밖의 영상스토리텔링 플랫폼, 대표적으로 OTT 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콘텐츠와 영화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는 영토를 넓히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다.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1인치의 장벽’인 언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영화의 벽은 국가 간의 거리는 물론 형식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낮아지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살아남고 두각을 드러내는 건 결국 경쟁력이 있는 작품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영화(또는 K-콘텐츠)는 꾸준히 키워온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요컨대 세계영화계가 마주한 변화의 흐름, 그 제일 앞줄에 한국영화가 자리하는 건 갑작스런 일이 아니다.

〈소설가의 영화〉 스틸컷
한국영화의 해외영화제 진출은 195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1957년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1956)이 특별희극상으로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작으로 이름을 남긴 이후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1960), 박상호 감독의 〈또순이〉(1963)가 남녀주연상을 수상했고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가 최우수 작품상을 차지하며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이후 1960년 샌프란스시코 영화제에 김기영 감독의 〈십대의 반항〉(1959)의 안성기 배우가 아역상을 수상하는 등 다른 영화제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가 은곰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 첫 수상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그 외에도 시체스국제영화제에서 신상옥 감독의 〈천년호〉(1969)가 황금감독상,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 〈충녀〉(1972)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6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해외영화계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심지어 군부정권의 검열과 탄압으로 계몽, 반공영화가 주류를 이루던 1980년대에도 성과는 이어졌다. 이두용 감독의 〈피막〉(1980)이 38회 베니스영화제 특별부문상을 수상했고 하명중 감독의 〈땡볕〉(1984),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1983)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은 제42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받고, 42회 로카르노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특히 임권택 감독은 1980년 이후 종횡무진 세계영화제를 오가며 한국영화의 고유한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한 〈만다라〉(1981), 〈길소뜸〉(1985)에 이어 〈씨받이〉(1986)는 44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임권택 감독은 〈춘향뎐〉(2000)으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영화 최초로 초청되었으며, 그로부터 2년 뒤 〈취화선〉(2002)으로 5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차지했다. 2005년 5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명예황금곰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해외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하는 일은 이제 당연한 수순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이와 같은 토대와 흐름을 바탕으로 2000년 이후 양적, 질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한국영화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감독들의 출현에 힘입어 해외영화제에서 무수한 성과를 남긴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로 26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이거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은 〈도망친 여자〉(2020)로 제70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 감독상을 받았고, 〈인트로덕션〉(2021)으로 제71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 각본상, 〈소설가의 영화〉(2022)로 제72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베를린이 사랑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창동 감독은 〈오아시스〉(2002)로 59회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시〉(2010)로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2003)로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박쥐〉(2009)로 심사위원상, 〈아가씨〉(2016)로 벌컨상을 수상하며 ‘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감독’으로 불린다. 그 밖에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나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까지 일일이 수상실적을 열거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많은 감독들이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영화제의 수상이 반드시 작품의 완성도를 담보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세계영화계의 지형도를 그릴 때 한국영화의 영토가 빠질 수 없을 만큼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한국영화의 성취는 단순히 미학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고 대중성과 확장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넓은 저변을 자랑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한국영화 전체가 〈기생충〉 하나의 영광에 매달리는 일은 없다. 예전 같으면 제2의 〈기생충〉을 육성하기 위해 엉뚱한 에너지를 쏟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은 차라리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성숙함이 돋보인다. 〈기생충〉이 나올 수 있었던 문화적인 토양의 중심에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 높은 관객들의 안목과 수준이 결정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한국영화는 K-콘텐츠 한류의 중심에서, 아카데미가 〈기생충〉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새로운 땅에서 가능성을 넓혀나가는 중이다.
 

송경원 《씨네21》 기자. 영화평론가.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수상, 동국대 영상대학원 영화이론 박사과정수료. 부산일보영화상, 부천국제영화제,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등의 여러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았음. 인디 다큐 페스티발 프로그래머. 영화 뿐 아니라 게임, 애니메이션 등 영상 문화 전반에 대해 비평 활동.

 

 

* 《쿨투라》 2022년 5월호(통권 9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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