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K-무비 열풍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
[5월 Theme] K-무비 열풍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
  • 전찬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5.0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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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2019, 이병헌 감독)을 필두로 〈신과 함께-죄와 벌〉(2017)과 〈신과 함께-인과 연〉(2018, 김용화), 〈괴물〉(2006, 봉준호), 〈소원〉(2013, 이준익), 〈택시운전사〉(2017, 장훈), 〈아저씨〉(2010, 이정범), 〈국제시장〉(2014, 윤제균), 〈명량〉(2014, 김한민), 〈부산행〉(2016, 연상호), 〈7번방의 선물〉(2013, 이환경), 그리고 〈기생충〉(2019, 봉준호)까지(이상 개봉 연도 기준), 이 목록은 “11 Korean Movies That Are Better Than Hollywood Movies[Ft HappySqueak]”(https://www.youtube.com/watch?v=Y76AYzSMtDo)이란 제목으로 구독자 36.1만 명의 한 해외 유튜버 ‘MyDramaList’가 2020년 8월 12일 올린 동영상에서 소개된 영화들이다. 현재 235만 8천 조회수에 육박한다.

몇 편을 제외하고는 사실 그 영화들의 면면은 그다지 큰 주목감은 아니다. 총 12편 중 〈소원〉과 〈아저씨〉 이외의 나머지 영화들은 죄다 1천만 고지를 넘은 기록적 흥행작들인바, 별다른 설득력이 없으며 해당 유튜버의 얄팍한(?) 영화적 연륜·수준을 드러낼 따름이다. 당장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 박찬욱의 〈올드보이〉(2003), 이창동의 〈버닝〉(2018) 등 한국영화사의 빛나는 문제적 걸작들이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 선정 자체는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1910년을 전후해 형성된 이래 1백 년 이상을 줄곧 ‘영화 왕국’ 등으로 일컬어져 온 할리우드 영화들보다 더 뛰어나다면서 한국영화들을, 그것도 우리나라도 아닌 외국 유튜버가 12편이나 뽑아 동영상을 만들었으니, 어찌 그렇다 평하지 않겠는가. 그와 비슷한 아류적 동영상들이 국내외에서 쇄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바야흐로 세계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한류’라는 더 큰 맥락context에서, 크고 작은 화제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K-무비 열풍의 어떤 증거로 손색없다.

상기 동영상으로부터 1년 9개월쯤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러나, 한류를 주도하고 있는 분야는 영화가 아니다. 〈오징어 게임〉과 〈파친코〉, 〈우리들의 블루스〉, 〈스물다섯 스물하나〉, 〈사내맞선〉 같은 OTT(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 및 공중파 TV 드라마요, BTS나 블랙핑크 등으로 대변되는 K-팝이다. 단적으로 K-무비는 ‘포스트-기생충’의 출현을 기다리며, 소강 국면에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소강 국면”이라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진단 아닐까? 열풍이나 소강은 고사하고 K-무비는 목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 아닐까? 시선을 예의 극장에 집중하면, 그런 징후들이 다분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1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이 그런 현실을 한 눈에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3년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를 겪으며, K-무비는 다른 그 어느 분야보다 더 크고 깊은 직격타를 맞았다는 것을.

지난해 극장 매출액과 관객 수는 5845억 원과 6053만 명으로 전년 대비 14.5%와 1.7% 늘어 2004년 이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던 2020년과 비교해 증가했단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매출 규모는 30.5%에 불과하단다. 그래서 극장의 회복을 말하기엔 시기상조란다. 더욱이 한국영화 쪽으로 눈길을 던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5월 이후 〈분노의 질
주: 더 얼티메이트〉(5월 19일 개봉), 〈블랙 위도우〉(7월 7일), 〈이터널스〉(11월 3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12월 15일)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봉하자 현저히 위축된 것. 이들은 2021년 종합 박스오피스 5위와 3위, 2위, 1위를 차지했다. 10위작 가운데 한국영화는 단 두 편에 지나지 않는다. 2위인 〈모가디슈〉(7월 28일)와 6위 〈싱크홀〉(8월 11일)이다. 

상기 증가는 따라서 외국영화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한국영화 매출과 관객은 1734억 원과 1822만 명으로, 전년 대비 50.5%와 55.0% 감소했다. 2004년 이후 최저 기록이다. 관객 점유율은 사정이 더 나빠졌다. 전년도에 비해 37.9% 줄어 30.1%로, 11년 만에 50% 아래로 떨어졌다. 1999년 이후 최저치였다. 인구 1인당 연평균 극장 관람횟수도 0.02회 증가해 1.17회였으나, 2019년의 4.37회에 비하면 3.2회 감소한 수치다. 

위와 같은 위기의 조짐들에도 불구하고, K-무비의 미래에 대해 마냥 비관적 진단만을 내릴 순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근자에 한국영화 관련 몇몇 낭보들이 전해졌다. 오는 5월 17일 개막되는 제75회 칸영화제에 3편이 공식 초대된 것부터가 큰 주목에 값하는 희소식이다.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2016)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헤어질 결심〉과, 〈어느 가족〉으로 2018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한국영화 〈브로커〉가 세계 최고 위용을 자랑하는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가 심야상영 섹션에 초청됐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위 세 화제작에서 감독 못잖게 돋보이는 것은 출연진의 면면이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색, 계〉(2007)의 탕웨이를 비롯해 이 땅의 명품 연기자들인 박해일, 이정현, 고경표 등이, 〈브로커〉에서는 더 이상 부연이 필요 없을 송강호와 강동원, 배두나, 아이유 등이, 〈헌트〉에서는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 톱스타로 등극한 이정재와 대한민국 대표 스타-배우 정우성, 그리고 역시 〈오징어 게임〉으로 강렬한 인상을 전한 명품 조연 배우 허성태 등이 출동한다. 우리영화의 칸 진출 역사상 이렇게 막강한 진용이 대거 칸을 찾은 적이 있던가, 싶다. 칸을 20회 다녀온 경험으로 기억하건대, 없다. 판단컨대 올 칸의 최대 화제는 한국영화일 확률이 높다. 특히 이정재에게 쏠릴 스포트라이트는 아마도 “역대급”이지 않을까, 싶다. 

위 세 영화들이 내포하고 있는 대중적 화제성을 감안하면 6월 이후 선보일 것으로 알려진 저들 영화들은, 코로나19는 물론 그 덕(?)에 예측을 훌쩍 상회하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OTT 영상 콘텐츠 등으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영화관으로부터 멀어진 관객들을, 어느 정도는 극장으로 다시 유인해낼 공산이 작지 않다. 그밖에도 화제의 국산 대작들이 출사표를 던진다. 대표적 예가, 김한민 감독이 〈명량〉(2014)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한산: 용의 출현〉이다. ‘이순신 3부작’ 두 번째 영화는 7월 말로 개봉을 확정했다는데, 개봉 3개월도 더 남은 오늘(4월 19일) 기준으로 이미 7,500명에 근접하는 네티즌들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의사 표명을 했다고 종합 포털 네이버는 전한다. 하긴 1,760여만 명으로 대한민국에서 상영된 모든 영화를 통틀어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지니고 있는 감독의 차기작이니, 당연한 기대 아니겠는가. 3부작 마지막 영화인 〈노량: 죽음의 바다〉도 촬영은 지난해 6월 일찌감치 마쳤으며, 관객들과 조우할 시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상수 감독이 4월 21일 관객과 만나는 27번째 장편 〈소설가의 영화〉로 올 72회 베를린영화제에서, 2등상 격인 심사위원대상(이하 은곰상)을 안은 것도 주목해야 할 K-무비의 값진 성취다. 이 땅의 대표적 작가 감독인 홍상수는 같은 영화제에서 〈도망친 여자〉로 감독상, 〈인트로덕션〉으로 각본상에 이어 3년 연속 수상하는 기념비적 쾌거를 이뤄낸바, 이른바 ‘영화제의 정치학’으로 예견컨대 몇 년 이내에 영예의 대상인 황금곰상을 거머쥘 게 틀림없다. 그 경우 〈피에타〉(김기덕)로 2012년 베니스, 〈기생충〉으로 2019년 칸에 이어 세계 3대 영화제의 최고상을 모두 다 안는 것이니,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은 한층 더 제고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렇듯 K-무비를 향한 세계인들의 관심·애정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리라는 것이 영화 보기 50여 년, 영화 스터디 40년, 영화 글쓰기 30여 년의 씨네필이자 영화 전문가로서, 자신 있게 내리는 진단이다. 그저 한때의 바람이 아니라 문명사적 시각·접근이 요청되는 작금의 한류는 2020년대를 넘어 2030년대와 그 이후까지도 계속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영화건 TV 드라마건 세상의 수많은 영상 콘텐츠들이 급격히 스트리밍 서비스화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그렇다면 K-무비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영화관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못해 암울한 현실에서, 우선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고집하며—다름 아닌 내가 그런 부류다!—극장 우위적인 영화‘관觀’은 지양·폐기돼야 한다. 코로나19로 전격화된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자세로 영화를 대해야 한다고 할까. 일찍이 수십 년 전에 영화학자 노엘 캐롤이 제안했듯, 그 개념·범위를 대거 확장시켜 영화를 동영상moving image으로 간주·취급할 필요가 있다. 예의 극장이건 TV건 OTT건 ‘동영상으로서 영화’가 이젠 관건인 것이다. 넷플릭스 의존도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등의 숙제는 별개의 문제로 치더라도 〈옥자〉(2017)로 세계 최강의 OTT 사업체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던 봉준호를 필두로 〈터널〉(2016) 이후 〈킹덤〉 시리즈(2019〜2021)에 뛰어든 김성훈, 〈차이나타운〉(2015)과 〈뺑반〉(2019) 이후 〈D.P.〉(2021)로 감독으로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뽐낸 한준희, 그리고 〈도가니〉, 〈수상한 그녀〉(2014), 〈남한산성〉(2017) 등 수작 이후 넷플릭스 역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등이 그 살아 있는 주역들 아닌가.

그 점에서 홍상수의 행보는 진정 남다른 주목을 요한다. 이 도도한 시대에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자기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시대의 으뜸 문제적 감독 말이다. 그는 우리에게 “영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길 멈추지 않는다. 그것도 돈이 우선이 아닌, 어떤 가치를 단념·포기하지 않은 ‘홍상수스러운 영화 만들기’로…. 〈드라이브 마이 카〉(2021) 등으로 세계 영화계를 뒤흔든 하마구치 류스케가 일찍이 부러워했듯, 우리 영화계에 봉준호만이 아니라 그와는 판이하게 다른 개성·스타일의 홍상수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글로벌예술학부 겸임교수. 비평 활동 외에도 글로컬 컬처 플래너&커넥터 및 퍼블릭 오지라퍼를 표방하며 다양한 문화 기획, 연결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 일환으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2020)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5월호(통권 9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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