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봄봄봄! 달고나, 로맨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사내맞선〉, 〈서른아홉〉, 〈기상청 사람들〉, 〈크레이지 러브〉
[드라마 월평] 봄봄봄! 달고나, 로맨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사내맞선〉, 〈서른아홉〉, 〈기상청 사람들〉, 〈크레이지 러브〉
  • 주찬옥(드라마 작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05.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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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tvN
출처_tvN 제공

가을이 치정멜로, 불륜멜로가 어울리는 계절이라면 봄은 달달한 로코의 계절. 지난 3월엔 로맨스 드라마가 5편이나 쏟아졌다. 〈스물다섯 스물하나〉(tvN) 〈사내맞선〉(SBS) 〈서른아홉〉(JTBC) 〈기상청 사람들〉(JTBC) 〈크레이지 러브〉(KBS2).

계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예전엔 여름에 납량물이 있었다. 그래 납량물! 〈구미호〉가 있었고, CG 수준이 워낙 초기 단계라 심은하의 눈을 일일이 초록색으로 칠하는 것만도 꼬박 3~4일 걸렸다는 전설의 〈M〉이 있었지. 추억하다 보니 새삼 그립다. 올여름 누가 레트로 감성으로 납량드라마 하나 기획 안 해주나?

상큼한 과즙 같은 분위기를 레트로 감성에 실어 나른 〈스물다섯 스물하나〉, 사랑스러운 청춘 드라마였다. 시청자와 비평가 모두에게 찬사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수학여행을 떠난 10화부터 느슨해졌다. 펜싱을 그만두는 선수, 학교 중퇴하는 지승완(이주명 분) 등 얘기가 산만하게 번지더니 나희도(김태리 분)와 백이진(남주혁 분)은 슬슬 이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작가는 극 초반부터 딸 이름은 김민채, 새드엔딩을 각오하라고 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설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남편 찾기로 영리한 영업을 했던 〈응답하라〉 시리즈를 떠올리며 “백이진 사망설” “나희도 기억상실설” “김민채가 원래는 고유림의 딸” 등등 온갖 추측을 내놨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다. 나희도와 백이진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락조차 두절돼도 서로 믿고 응원하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순정만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엔딩은 반전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깬다. 반전 없는 것이 반전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러자 시청자들의 원성이 자자해졌다.

출처_SBS
출처_SBS 제공

한편 〈사내맞선〉은 로코 공식에 충실한 길을 걸어 예상하던 해피엔딩을 맞았다. 한 치의 반전이나 의외의 결말 따위 없이 흐드러진 벚꽃을 배경으로 프러포즈 했고 시청자들은 흐뭇해했다.

왜 결혼이라는 낡고도 낡은 〈사내맞선〉의 해피엔딩엔 박수를 보내고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참신한 이별엔딩에는 반감을 갖는 것일까? 그동안 나희도와 백이진을 너무 사랑해온 결과 이들이 찢어지면 내 마음도 찢어져서?

이쯤 해서 또 하나 의문이 떠오른다. 〈사내맞선〉과 〈크레이지 러브〉 두 작품 모두 클리셰 범벅이란 점은 비슷한데 왜 결과는 다르지?

〈사내맞선〉이 사랑받은 이유는 뻔한 클리셰 속의 안 뻔한 디테일에 있다.

예를 들면 신하리(김세정 분)의 정체가 탄로난 뒤를 보자. 이 경우 대개 여자 주인공은 숨고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남자 주인공은 애타게 찾아다닌다. 로코를 오래 보면서 쌓인 데이터에 의하면 씬의 흐름이 그렇다. 그런데 〈사내맞선〉의 경우 신하리는 다르게 행동한다.

자신이 회사에서 개발했던 제품 피티까지 준비해서 자기처럼 유능한 인재를 부디 내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오, 이런 전개는 참신한걸?

계차장(임기홍 분)이 말끝마다 “여직원” “여직원”하자 여부장(김현숙 분)이 “그거 성차별이야!” 면박을 준다. 이런 자잘한 지점들이 새롭고 트렌디하다.

출처_KBS
출처_KBS 제공

〈크레이지 러브〉에는 시한부, 기억상실, 거짓말 등 해묵은 설정이 등장하는데 이 상투적인 소재를 뻔한 전개, 예측 가능한 구성으로 푼다. “썸씽 뉴”가 없다.

부와 재능은 있으나 성격이 개차반인 노고진(김재욱 분)은 아예 이름부터 〈최고의 사랑〉 독고진(차승원 분)을 벤치마킹한 느낌을 준다. 이 잘난 척하고 못돼 처먹은 남주 캐릭터는 도대체 언제까지 로코에 등장할까?

이제 다른 캐릭터로 바뀔 때도 되지 않았나?

다시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돌아가 보자.

디시인사이드 드라마 갤러리에 이런 글들이 올라와 있다.

“러시아로 국적 바꾼 고딩 커플도 잘 버티고 결혼까지 가는데, 다 큰 성인들이 해외파견직 때문에 헤어지는 게 뭔 경우냐?”

“사랑하던 애들이 고작 한 번 싸우고 나서 이별하고, 나중에 만나 질질 짜면서 서로 이해해주며 이별하는 게 현실적인 건가”

네티즌이 바란 것은 설득력이었다. 아무리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명언이 있다 할지라도. 그게 현실과 더 가깝다고 해도. 납득하게 해 달라고!

권도은 작가가 혹시 김윤아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노래에 너무 깊이 빠진 게 아닌가 상상해본다. 그래서 노래 가사처럼 이들은 사랑하지만 끝내는 가슴 아픈 이별을 해. 라고 처음부터 못을 박았던 게 아닐까? 그래. 영화 〈라라랜드〉도 엔딩 시퀀스 멋졌잖아!

문제는 이 스토리 라인에 나희도와 백이진이 들어갔을 때 감정 흐름이 맞느냐인데 작가는 처음부터 대못 박고 시작했으므로 우긴다. 늬들은 그 길을 가야 돼!

〈크레이지 러브〉에서 이신아(정수정 분)가 백수영(유인영 분)과 부딪쳐 옷에 커피가 쏟아진 후 백수영은 이신아에게 굳이 자신의 첫사랑이 선물했다는 옷을 빌려준다. 왜? 기억상실로 깨어난 노고진이 이신아를 첫사랑이라고 착각하게 하기 위해서? 백수영(유인영 분)은 왜 처음 만난 이신아에게 하필 그 옷을 빌려줄까? 개연성은 이것밖에 없다. 작가가 시켜서.

작가는 인물을 탄생시키고 세계관을 완성한다. 창조주인 것이다. 그러나 일단 만들어놓은 뒤 지나치게 개입하면 안 된다.

오래전 김수현 선생님이 어느 매체와 인터뷰한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인물을 만들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인물이 저절로 입을 열어 말을 해요. 나는 그걸 받아적습니다”

인물이 스스로 감정을 가지고 움직여줘야지 작가가 맘대로 끌고 가서도 안 되고 억지로 데리고 가서도 안 된다. 부모가 자식을 낳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 맘대로 살지는 않는 것처럼. 인물이 작가의 최초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면 차라리 시놉 줄거리를 바꾸는 게 좋다. 캐릭터를 바꾸든지.

출처_tvN 제공
출처_tvN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쓴 권도은 작가에게 보내는 관심과 애정과 기대가 크다. 작가는 로맨스에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에피소드를 만들 줄 안다. 비 오는 날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우산. 학교의 수도꼭지 분수. 어둠 속에서 찌르면 파랗게 불이 켜지던 펜싱 장면. 그리고 무지개. 앞으로 점점 더 좋은 작가가 될 거라고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초반의 나희도가 백이진에게 그랬던 것처럼.

PS.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사내맞선〉 두 작품 다 악녀, 고구마 같은 삼각관계, 사각관계가 없었다. 감정 소모 없이 보게 하는 것, 이게 최근 로코의 트렌드인 듯.

 

 


주찬옥
드라마 작가.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매혹〉으로 데뷔했으며, 〈사랑〉(MBC, 1998년) 〈수줍은 연인〉(MBC, 1998) 〈외출〉(SBS, 2001) 〈남자를 믿었네〉(MBC, 2011) 〈운명처럼 널 사랑해〉(KBS, 2014) 등을 썼다. 현재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 《쿨투라》 2022년 5월호(통권 9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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