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일상에 우리 문화예술이 스며들 때: 어느 수집가의 초대
[Gallery] 일상에 우리 문화예술이 스며들 때: 어느 수집가의 초대
  •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22.05.05 0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어느 수집가의 초대 - 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이 4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유족이 그의 수집품을 기증한 2021년 4월 28일로부터 1주년을 맞아 마련한 이번 전시는 총 295건 355점의 기증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특별전이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종횡하는 고 이건희 회장의 수집품을 ‘수집’과 ‘집’이라는 테마로 풀어낸 이 전시는 불후의 명작들을 통해 변하지 않는 인본주의적 가치를 조명하고 있다. 김환기의 〈산울림 19-II-73#307〉과 백남준의 〈브람스〉 등 다양하고 수준 높은 수집품들로 손님맞이 준비를 마친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찾았다.

작품, 김환기(1913-1974), 1950년대, 하드보드에 유채, 54.0×26.0cm, 광주시립미술관

제1실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

본래 이번 전시의 제목은 ‘어느 수집가의 집’이었다고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위가 둥근 붉은색 문이 수집가의 집을 지키고 있다. 고건축이 지닌 조형성과 색감을 현대적인 미감으로 표현해낸 권진규의 부조 〈문〉이다. 문을 지나면 ‘가족과 사랑’을 주제로 한 근현대 작품이 펼쳐진다. 손님을 맞이하는 진열장과 병풍, 소반과 백자 주자는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는 수집가의 취향을 잔뜩 드러내고 있다. 백자 달항아리와 나란히 놓인 김환기의 〈작품〉은 밤하늘의 둥근 달과 큰 백자 항아리의 형태를 연결시켜 이지러진 달그림자의 자연스러운 변주를 그리고 있다. 옆에는 가족과의 추억, 연인간의 사랑을 담은 작품들로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전한다. 이중섭 화가의 〈춤추는 가족〉과 〈현해탄〉은 가족과 함께한 행복한 기억과 이별의 슬픈 기억을 그림에 오롯이 담고 있으며,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의 유배기에 정여주의 부탁을 받아 쓴 〈정효자전〉과 〈정부인전〉은 가족의 소중함을 되살리는 애틋한 마음을 특유의 필치에 녹여냈다.

수련이 있는 연못, 클로드 모네(1840-1926), 1917-1920년, 캔버스에 유채, 100.0.×200.5cm, 국립현대미술관

수집가의 정원으로 발길을 돌리면,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출품되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거장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이 기다리고 있다. 영상미디어를 접목한 이 공간은 발 아래 모네의 수련 영상이 펼쳐져 마치 지베르니 연못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모네 부흥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야외에서 작업을 주로 하던 모네가 시력을 잃은 뒤 그린 작품으로 푸른 색채를 띠고 있다. 이 작품은 화면 내 수평선이 사라진 채 수련과 물 표면의 변화를 표현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어 대상의 모호함이 강조된다.

제2실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

통로를 따라 정원을 나서면 다다르는 제2실은 수집품에 담긴 인본주의적 가치를 나누는 공간이다.

만선, 천경자(1924~2015), 1971년, 종이에 채색, 121.0×105.0cm, 전남도립미술관

제2실은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 ‘인간을 탐색하는 경험’ 총 네 가지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먼저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에서는 인간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거나, 자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조선 산수화와 도자기, 현대 회화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자신의 다양한 정서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이중섭의 〈소〉와 환상적인 색감으로 자연의 넉넉한 선물을 그려낸 천경자의 〈만선〉 등이 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5월까지만 선보이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이다. 한국 전통 회화를 대표하는 〈인왕제색도〉는 비가 갠 인왕산의 웅장한 자태를 원기 있게 표현하고 있다.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에서는 자연에서 얻은 흙과 금속의 성질에 집중한다. 권진규의 〈손〉은 흙을 빚어 생명을 창조하는 조각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정광호의 〈나뭇잎〉은 산업화의 상징인 철과 구리로 금속의 아름다움을 오묘한 잎맥의 형태로 표현하였다.

웅장한 범종의 울림이 들려오는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 영역은 경이로움과 막연한 공포를 안겨주는 자연의 힘과 영혼을 숭배하던 인간과, 자연을 점차 알아가며 삶을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늘의 달이 여러 곳의 맑은 물에 비치듯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뜻을 지닌 수월관음(혹은 관음보살)은 투명한 베일 사이로 섬세하게 비치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인간을 탐색하는 경험’에서는 자연에 대응하며 문명을 이룩한 인간 사회의 다양한 군상을 보여준다. 매서운 눈빛이 압권인 김준근의 〈기녀와 도박을 하다〉는 19세기 말 조선 하층민들 사이에서 유행한 ‘골패’를 흥미롭게 묘사하였으며, 국민화가 박수근의 〈한일〉은 20세기 중반 길가에서 장기 두는 사람들을 투박한 질감 위에 담아내고 있다. 또한, 이인성은 아내 김옥순을 그린 〈노란 옷을 입은 여인〉으로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신여성’의 모습을 남겼다.

입장 인원이 30분당 100명(예약판매 70명, 현장판매 30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는데도, 알찬 구성 때문인지 전시장 모든 공간은 관람객으로 가득했다. 작품과 도록을 함께 살펴보는 사람, 오디오 가이드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사람, 발걸음을 돌려 작품을 다시 보는 사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에 ‘한국적’인 정체성이 스며들 때 문화적인 경쟁력이 생긴다”던 이건희 회장의 바람처럼, 《어느 수집가의 초대》 특별전은 평범한 주말에 잔잔하게 우리 문화예술을 덧입히고 있었다.

 

 


참고자료 『어느 수집가의 초대』, 국립중앙박물관, 2022
이미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 《쿨투라》 2022년 5월호(통권 95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