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건축과 예술의 만남, 공간을 창조하다: 북촌 (구)공간사옥 & 아라리오뮤지엄
[미술관 탐방] 건축과 예술의 만남, 공간을 창조하다: 북촌 (구)공간사옥 & 아라리오뮤지엄
  • 김명해(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2.06.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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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 of ARARIO MUSEUM in Space
Outlook of ARARIO MUSEUM in Space

이번에도 서울 종로 북촌이야기를 더 하고자 한다. 북촌은 조선시대에는 한양의 중심부 권문세가의 주거지로, 1900년부터 1960년대까지 근대식학교와 한옥주거지로, 1970-90년대는 근대식학교(경기고, 휘문고, 창덕여고)이전 터에 공공시설(정독도서관, 현대건설사옥, 헌법재판소)과 다세대주택의 신설로 경관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다 2000년, 한옥 고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북촌의 보전과 관리를 위해 서울시와 시민단체에서 한옥등록제 시행 및 한옥 수선 지원 등의 새로운 북촌 가꾸기 정책을 수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북촌은 예로부터 궁궐을 중심으로 사대부, 신흥 부자들이 살고 있어 이들은 미술계의 고객 또는 후원자 역할을 했던 곳이며, 많은 근대미술가들이 한국근대회화의 기틀을 마련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자 미술계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곳이다.

이런 유서 깊은 북촌에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는 남다른 건물이 하나있다. 안국역 근처 현대건설사옥 바로 옆, 오랜 전돌 외벽에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여져 내부구조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건물과 반대로 속이 훤히 보이는 현대식 통유리 건물, 그리고 두 건물사이에 살포시 안겨있는 나지막한 한옥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벽돌·통유리·한옥이라는 독특한 외관건물들은 제각기 완공 시기는 다르지만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흐름으로 빚은 공간들로 서로 이질적이면서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북촌 한옥마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담쟁이덩굴의 검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등록문화재 제586호)은 현재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ARARIO MUSEUM in SPACE’로 현대미술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故 김수근(1931-1986)이 직접 건물을 설계해 1977년에 완공한 자신의 건축사무실 ‘공간’의 사옥이었다.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벽돌건물인 공간사옥은 뭉툭한 L자형 대지에 맞춰 길고 짧은 두 개의 수평 켜가 결합된 형국으로 지어졌다. 경사진 지면을 살려 바닥을 반 층씩 어긋난 높이로 설계하는 ‘스킵 플로어skip floor’ 방식과 서로 막힘없이 연결되어 있는 내부 공간 구조로 한국적 공간을 나타낸 건축물로 꼽히며, 그의 건축철학 ‘공생’이 가장 잘 드러난 건물이다. 건물을 건립할 당시 인근의 창덕궁과 주변 한옥들과의 조화를 위해 기왓장 느낌의 검은 벽돌을 주재료로 삼아 인공적인 건축물과 자연과의 상생을 고려하여 담쟁이덩굴을 심어 외벽을 장식하였다고 한다.

Installation Views
Installation Views

시간이 흐르면서 벽돌건물이 비좁아지자, 故 장세양(1947-1996) 건축가가 1996년 벽돌건물 바로 옆에 통유리 건물의 신사옥을 지어 김수근의 공간을 확장하고, 이상림(1955- ) 건축가가 벽돌건물과 신사옥 사이에 있던 1층 규모의 한옥을 ‘공간사옥’ 영역에 편입해 새롭게 보수하였다. 제각각의 특성으로 유기적 공존을 하는 세 건물은 시간의 적층과 함께 자라나 더 완전한 전체를 이루었고, 우리나라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50년 동안 위상을 공고히 해왔다. 건물의 쓰임 또한 공간건축사무소, 월간지 《공간》 편집실, 미술전시 화랑, 공연을 위한 소극장이 입주해 건축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과 문화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였다.

하지만 2013년 공간그룹의 경영난으로 공간사옥은 경매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아라리오 그룹이 이 곳을 사들였다. 현재 벽돌 건물은 미술관, 유리 건물은 레스토랑, 한옥은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2014년 9월 새롭게 문을 열어 현재까지 《아라리오 컬렉션》전을 선보이고 있는 미술관은 공간사옥의 건축적 특징을 최대한 살리는 한편, 아라리오 창업주가 지난 40년 간 수집해온 현대미술컬렉션을 다채롭게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어 전시를 구성하였다.

Osang Gwon, The Sculpture II, 2005, paint on bronze
Osang Gwon, The Sculpture II, 2005, paint on bronze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벽돌건물은 1층 외부 중앙 홀에 안내데스크가 있고, 입구로 들어서면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낮고 좁은 계단이 바로 등장한다. 첫 번째 방은 내부주차장으로 쓰인 공간답게 청동으로 만든 ‘람보르기니’ 차 모형에 주황색 아크릴 물감을 두껍게 칠한 권오상(1974- )작가의 〈더 스컬프처 Ⅱ〉, 반 층 오르면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TV첼로〉(1971), 〈히드라 부다〉(1984), 〈노-매드〉(1994), 〈세기말 인간〉(1992)이 전시되어있다. 또 반 층 올라가면, 실제 사람과 닮은 나체 인형들을 손가락만하게 제작한 이동욱(1976- )작가의 작품들로 설치된 방이다.

다시 여섯 계단 오르면 나타나는 방은 중앙 천정이 뚫려있어 위층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이 그대로 실내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이 방에는 극사실적인 대형 인물초상화를 그리는 강형구(1955- )작가의 〈놀라고 있는 워홀〉(2010), 인간의 삶과 죽음 같은 인생허무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데미언 허스트(1965- )의 드로잉 〈해골〉(1998), 광고이미지에 텍스트를 결합한 바바라 크루거(1945- )의 〈끝없는 전쟁/당신은 영원히 살 거야〉(2006), 앤디워홀(1928-1987)의 실크스크린 〈에델 스컬〉(1963)등의 작품과 위쪽 방은 신디 셔먼(1954- )의 인물초상 사진 6-7점이 전시되어있다. 5층에는 어린 시절 혼혈인으로 경험한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작품화한 트레이시 에민(1963- )의 설치작품 4점과 프랑스의 개념미술가인 소피 칼(1953- )의 사진작품, 인도의 사회문제를 오브제로 보여주는 수보드 굽타(1962- )의 작품도 설치되어 있다.

Tracey Emin, Remembering 1963, 2002, appliqued blanket ⓒTracey Emin
Tracey Emin, Remembering 1963, 2002, appliqued blanket ⓒTracey Emin

1층에서 5층까지 관람하는 동안, 크고 작은 공간들이 오밀조밀 얽혀있어 층간 구분이 다소 모호하여 “여기는 몇 층입니다”라고 단정할 수 없다. 건물 내부를 삼각형과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며 마치 비상구가 없는 미로를 돌고 있는 느낌이다. 또한 건물 내부공간은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 바닥을 그대로 드러낸 채, 파이고 깨어지고 퇴색된 시간의 흔적을 오롯이 남겨둔 채,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를 간직한 채, 과거와 현재의 공간으로 존재하면서 우리에게 수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Installation Views
Installation Views

2층부터 4층까지 중앙이 트인 공간은 시각적으로 넓어 보이고 평면이나 입체작품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조화롭고 아늑하다.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모든 방과 어느 방향에 큰 창이 있어 빛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공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심지어 화장실, 계단 밑과 벽, 옥상 옥탑공간과 지하실에도 예술작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Marc Quinn_Self, 2001
Marc Quinn_Self, 2001

5층에서 또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 1층으로 내려가는 동선으로 연결된 옆 건물이다. 이 곳은 온돌과 옥상정원이 있는 5층 방으로 예전에 직원들의 휴게 공간이었다. 일부 있는 대청마루와 서까래 형식의 천장, 창호지를 덧댄 흔적이 있는 벽면은 한옥의 정취가 묻어나며 지금은 낙서화가 키스 해링(1958-1990)의 회화 5점과 입체작품 2점이 전시되어 있다. 옥상정원에서 내려다보면 원효로가 한눈에 들어오며, 건물 외벽을 둘러싸고 있는 담쟁이는 이곳까지 타고 올라와 키스 해링의 〈브레이크 댄스〉(1987) 조형물과 어우러져 ‘자연과 인공의 미’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Kohei Nawa, Pixcell- Double Deer #7, 2013, mixed media, 241.5 x 189.5 x 160 cm
Kohei Nawa, Pixcell- Double Deer #7, 2013, mixed media, 241.5 x 189.5 x 160 cm

여기서는 내려가는 출구가 나선형 계단이다. 공간 효율을 위해 만들어진 나선형 계단은 천장이 둥글게 뚫려있고, 빙글빙글 회전하며 좁은 계단을 내려오면 색다른 경험으로 흥미롭다. 설계실이던 4층은 아시아 작가 레슬리 드 차베즈(필리핀, 1978- ), 제럴딘 하비에르(필리핀, 1970- ), 타츠오 미야지마(일본, 1957- ), 날리니 말라니(인도, 1946- )의 회화, 영상, 조각, 설치 작품들이 있다. 3층은 독일의 정치적 이슈들을 작품화하는 요르그 임멘도르프(1945-2007) 작품과 미국 조각가 조지 시걸(1924-2000)의 〈레이스 옷을 입은 여인, 1984〉이 전시되어 있다.

Sudodh Gupta, Everything is Inside’, 2004, Part of taxi, cast bronze
Sudodh Gupta, Everything is Inside’, 2004, Part of taxi, cast bronze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실 맞은편에 마련된 회의실은 현재 코헤이 나와(일본, 1975- )의 〈픽셀-더블 디어#7〉(2013)이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박제된 사슴을 다양한 크기의 크리스탈로 뒤덮은 작품으로, 투명하고 맑은 크리스탈은 아름답지만 ‘박제된 진짜 사슴’이라는 사실은 동물보호차원에서 충격적이다. 또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모서리 공간에 설치된 마크 퀸(영국, 1964- )의 작품 〈셀프〉(2001)는 자신의 두상을 직접 캐스팅하여 자신의 피를 채워 넣은 일종의 ‘자화상’ 이라는데, 이 작품도 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부 미술품들이 어둡고 우울하고 괴팍하고 난해해, 이런 식으로 작품화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고 작품 수집에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아라리오 창업자 김창일 컬렉터는 이름 모를 작가라도 작품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 혹은 작가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면 그의 컬렉션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Geraldine Javier, Weavers of Time 2013, Oil on canvas, resin, wood, tatting laces
Geraldine Javier, Weavers of Time 2013, Oil on canvas, resin, wood, tatting laces

‘영혼을 머금고 있는 단순함Simple with Soul’은 아라리오뮤지엄의 철학으로, 작품자체뿐 아니라 작품 간의 상관관계를 정하는 전시구성에 있어서도 이런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즉 ‘Soul’은 뮤지엄을 구성하는 작품으로, 작품이 주인공이 되고 관람객이 작품과 호흡할 수 있는 그러한 미술관 정립을 내포하고 있다고 미술관측은 얘기한다. 건축가 김수근의 건축철학 ‘공생’이 가장 잘 드러난 건축물에 아라리오의 예술철학 ‘영혼을 머금고 있는 단순함’이 결합하여 탄생된 미술관은 공간을 새롭게 창조하고 더욱 풍성하게 확장시켰으며, 현대미술 감상과 함께 가치 있는 건물이 지속적으로 개방되고 우리 곁에 있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다.

Leslie de Chavez, Under the Belly of the Beast, 2014, mixed media

  아라리오그룹은 서울 공간사옥뿐만 아니라 제주의 탑동시네마와 바이크 샵, 동문모텔과 같은 기존의 건물들도 사들여, 그 특성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감각의 예술 공간을 창출하여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이곳도 공간사옥과 마찬가지로 장식적이고 시선을 빼앗는 인위적인 요소들은 과감히 삭제하여 최소한의 리노베이션으로만 전시장을 꾸며 놓았다. 이렇듯 오랜 건축물과 현대미술의 만남으로 보존과 창조를 다시 쓰는 아라리오뮤지엄의 새로운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Yoon Hyangro, First Impressions, 2014, single channel video, color, sound
Yoon Hyangro, First Impressions, 2014, single channel video, color, sound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인사동에 들렀다. 25년 전 주말마다 인사동거리 필방에 들러 미술재료 사고, 주변 전시장 한 바퀴 돌고, 저녁엔 야외 거리공연 구경하고, 지나가는 외국인들 신기한 듯 쳐다보았던 인사동이 생각난다. 지금은 많이 변해 예전의 정취를 찾을 수가 없다. 거리 주변은 새로 지은 대형건물과 쇼핑몰이 우람한 몸짓으로 우뚝 서있고, 골목 이곳저곳 흩어져있던 갤러리나 화랑들은 한 건물에 다 몰려있고, 미술전시장 보다는 식당이나 카페, 공예품이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더 많아 전주 한옥마을이나 경주 경리단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예술의 거리’ 라는 예전의 명성이 무색해 지는 듯, 시대가 변하면서 전통은 사라지고, 문화·예술의 지형도도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새로운 것도 좋지만 오랜 전통이나 역사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보존하고 지키려는 마인드가 필요한 현재가 되었으면 한다.

 

 



참고자료
아라리오뮤지엄 http://www.arariomuseum.org/
서울한옥포털 https://hanok.seoul.go.kr/
건축잡지 「SPACE」 https://vmspace.com/
황정수,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북촌편』 푸른역사, 2022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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