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기행] 샤갈미술관 뜻밖의 행운, 니스에서 샤갈을 만나다
[아트 기행] 샤갈미술관 뜻밖의 행운, 니스에서 샤갈을 만나다
  • 손정순(시인, 본지 편집인)
  • 승인 2022.06.07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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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중앙홀 ⓒ 쿨투라
미술관 중앙홀 ⓒ 쿨투라

올 75회 칸영화제 참석을 확정하자 3년 전 72회 칸영화제 기간에 만났던 마르크 샤갈Marc Chagall(1887~1985)의 그림이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나, 16일 저녁 도착이라 17일 개막일이나 샤갈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는데 그날이 휴관이란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했는데, 바로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휴관이지만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통역을 붙여 공식 초청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샤갈미술관 전경
샤갈미술관 전경

뜻밖의 초청을 해준 샤갈미술관에 너무나 감사했다. 16일 니스에 도착한 《쿨투라》 취재진은 다음 날 아침, 아름다운 휴양지 니스 해변을 거닐었다. 초여름 햇살을 받아 더욱 눈부시게 반짝이는 지중해 바다는 혼자 보기가 아까웠다. 니스 마세나 광장에서 구글맵을 따라 샤갈미술관을 가는 구불구불한 길에는 이곳 현지 한류 팬이 운영하는 한류 샵이 보이기도 했다. BTS를 비롯한 한국의 K-팝과 배우 포스터들이 걸려 있고, 한국문화와 관련된 굿즈들이 전시되어 있어 반가웠다. 조용한 주택가를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이정표와 함께 샤갈미술관이 보인다.

알프마리팀의 미술관 담당자 산드린 코모와 샤갈미술관 큐레이터 쥐스티나 프탁과 함께
알프마리팀의 미술관 담당자 산드린 코모와 샤갈미술관 큐레이터 쥐스티나 프탁과 함께

니스 국립 샤갈미술관Musée National Marc Chagall

약속한 시간에 마르크 샤갈 미술관에 당도하니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당직인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큰 정원에 둘러싸인 샤갈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담한 1층짜리 흰색 건물의 초입에는 녹색정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남프랑스에서 내가 본 미술관과 아틀리에는 거의 다 숲이나 정원을 품고 있다. 관람객들은 자연과 어우러진 미술관에서 안팎을 오가며 자유롭게 즐긴다. 책도 읽고, 나무 그늘을 찾아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먼 동방의 나라 한국에서 샤갈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본지 취재진을 위해 알프마리팀Alpes-Maritimes 지역의 미술관을 총괄하는 산드린 코모Sandrine Cormault와 샤갈미술관 큐레이터 쥐스티나 프탁Justyna Ptak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잘 알다시피 샤갈미술관은 1973년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 장관이었을 때 샤갈의 그림을 모아서 그가 살던 생폴드방스 근처인 니스에 건립한 아담한 규모의 미술관이다. 주로 샤갈의 후기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원래 샤갈은 이 작품들을 방스Vence에 성당을 지어 함께 기증할 예정이었는데, 준비 단계에서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니스로 이동하여 성서 이외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하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미술관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샤갈은 1966년 프랑스정부에 대형회화 17점을 기증하였으며 그 후에도 많은 작품을 추가로 기증하여 현재 약 450점을 전시하고 있다.

L'Arche de Noé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L'Arche de Noé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간단한 검색대를 통과하고 들어갔다. 푸근한 인상의 샤갈 사진과 함께 시기별로 그가 추구했던 작품 세계관이 설명되어 있다. 중앙홀에는 〈인간의 창조〉,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과 세 천사〉, 〈이삭의 희생〉, 〈야곱의 꿈〉,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십계명을 받는 모세〉 등 12개의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주제로 다룬 작품들이 있고, 아가의 방에는 아가서를 주제로 하는 다섯 개의 〈사랑의 연작〉이 둘러싸고 있다.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묘사한 연작 유화 17점도 보였다.

이곳에 있는 작품들은 대체로 색채가 매우 화사하고 신비스러워 환상적인 느낌이 든다. 빨강, 초록, 노랑, 파랑 등의 원색을 많이 사용하지만 촌스럽지 않고 몽환적이며 따스하다. 사방에서 강렬한 원색과 영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이 세상 것들이 아닌 소재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신비한 원색,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동물, 땅과 하늘의 경계가 없는 구도가 마치 그의 꿈속을 엿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사방이 푸른빛으로 가득한, 오페라 〈마술피리〉의 포스터 같았다. 특히 〈이삭의 희생〉에는 평소 샤갈의 작품에서 자주 보았던 빨강, 파랑, 노랑의 색채가 대표적으로 사용되었고, 그가 즐겨 사용하는 구도와 붓터치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재미있는 점은 아브라함의 손가락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작품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아브라함의 손가락은 6개로 묘사되어 있는 반면,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하는 천사의 오른쪽 손가락은 네 개로 묘사되어 있다.

Le Cantique des Cantiques I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Le Cantique des Cantiques I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Le Cantique des Cantiques II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Le Cantique des Cantiques II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샤걀미술관에서는 성서 시리즈 말고도 태피스트리와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샤갈은 말년에 그림이나 조각이 아닌 도자기 스테인드글라스, 조각 모자이크 등과 같은 다른 영역의 미술작품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했다. 미술관 안쪽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통유리를 통하여 샤갈의 모자이크를 감상할 수 있는 휴식공간이 나온다. 미술관 창문너머 외벽에 새겨진 모자이크는 12개의 별을 상징하는데 가운데 마차의 모습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태양의 전차를 탄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표현하였는데 무척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다시 입구로 나와 미술관 내의 오디토리움으로 들어가면 샤갈의 작품세계와 니스에서 활동할 당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으며, 샤갈이 직접 작업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창문에 수놓아져 있어 무척이나 황홀했다. 샤갈은 미술관을 만들 때 꼭 오디토리움이 있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오디토리움 형태를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큐레이터는 한 점, 한 점 정성들여 작품의 의미와 그의 생애를 애정을 담아 소개했다. 혼자 상상하며 감상할 때와는 또 다른 샤갈의 그림세계를 큐레이터의 설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Le prophète Elie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Le prophète Elie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Clavecin en situation dans l'auditorium du musée, devant les vitrauxⓒMusée National Marc Chagall
Clavecin en situation dans l'auditorium du musée, devant les vitraux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내가 처음 샤갈을 만났을 때

예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내가 샤갈을 만나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미술선생님을 통해서였다. 학원은커녕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시골의 미술학도들을 정말 성심껏 지도했던 선생님은 유명 화가들의 귀한 화집들과 복사본 그림들을 보여주며 예술 문명과 세계미술사도 알려주시고, 특히 미술의 구도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 나는 화가라고는 당시 이발소나 복덕방에 걸려있던 소위 이발소 그림인 고흐와 모네, 피카소의 소위 이발소 그림인 유병작품 몇 점만 겨우 기억할 때였다. 그런데 순간 휙 내 눈 앞을 스치는 그림 한 장이 포착되었다.
여인의 어깨 위에 걸터앉아 와인잔을 높이 치켜든 붉은 자켓의 남자다. 흐르는 강 위에 떠 있는 연인, 기쁨의 감정을 쏟아내며 거대한 하늘 속으로 둥둥 날아갈 것만 같았다. 너무나 이색적이고 환상적인 그림 속으로 내 마음도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미술선생님은 샤갈의 〈와인잔을 든 이중자화상Double portrait au verre de vin〉(1917~1918)이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혹 김춘수의 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 나오는 그 샤갈이냐고 여쭈었더니 그렇다고 말씀하시며, 시의 소재가 된 샤갈의 그림 〈마을과 나〉(1911년)를 비롯한 샤갈의 주요 작품들을 보여주셨다. 나는 그 강렬한 샤갈의 색채에 완전히 매료되어 눈물이 났다. 당시 당장 미술반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왔고, 2003년 대학원을 다니며 연구조교를 하던 시절, 은사님의 소개로 프랑스에서 열리는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석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방문한 미술관은 파리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박물관이었다. 밀레를 비롯한 내가 좋아하는 많은 화가들의 작품은 물론 샤갈의 〈와인잔을 든 이중 자화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샤갈이 이 그림을 그렸던 당시는 개인적으로 무척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1915년 샤갈은 약혼녀인 벨라 로제펠트와 결혼했으며, 1916년에는 딸 이다를 얻었다. 부부는 페트로그라드(현재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함께 살았다.

샤갈은 스스로를 그림 속에서 ‘구름 속에 둥둥 떠 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묘사하였는데. 벨라와의 사랑과 예술적 성공이 그를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기쁨은 그의 오른쪽 고개까지 돌아가게 만들었다. 배경에는 스몰렌스크다리가 있고 비테브스크의 시내 전경이 펼쳐져 있다. 샤갈의 작품들은 그의 상상 세계, 꿈. 회상이 넘쳐흐르는 환상의 반영인 것이다.

중학교 시절 그의 그림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샤갈이 그린 원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색채에서도 화가의 감수성이 절로 배어나와 다시 감성을 자극했다.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샤갈의 〈나와 마을〉(1911)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샤갈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나와 마을〉은 그림 속 주제나 이미지, 인상 등이 꿈속 한 장면처럼 논리에 맞지 않는 모습으로 중첩되어 있다. 친근한 느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화면 전경의 남자와 염소, 염소의 뺨에 포개어진 다른 장면에서는 또다른 염소의 젖을 짜는 소녀가 있다. 그리고 그림에서 또 한 부분을 차지하는 불타는 떨기나무의 이미지는 독실한 신자였던 그가 구약의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이리라.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샤갈에 대해 “소년 속의 노인, 노인 속의 소년”이라고 말했다. 추억은 늘 그곳,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라도 다시 찾아주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을 다시 찾는 순간에 실재의 시간은 사라진다. 아마 어린시절의 추억 속 고향이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몽상에 잠길 때면 누구나 소녀, 소년이 될 수 있다.

La Mariée 개인소장품 Centre Pompidou
La Mariée 개인소장품 Centre Pompidou

영화 속에 삽입된 샤갈의 그림

샤갈은 자연에 있는 색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의식적인 환상의 세계에서 본 듯한 색채를 사용했기에 더 황홀하다. 김춘수의 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의 인기로, 러시아 태생의 샤갈은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화가가 되었고, 전국 곳곳에 샤갈 이름이 들어간 카페만 해도 아마 수백, 수천 개가 넘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샤갈의 그림은 종종 응용된다. 소품처럼 등장 하거나 때로는 관객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 걸려있는 작은 그림 한 점이 영화의 전체를 상징하거나 결말을 암시하기도 한다. 〈샤갈-말레비치〉(알렉산더 미타, 2014)에는 10월 혁명을 전후로 샤갈이 고향인 비테브스크로 돌아와 보냈던 황금기를 다루고 있다. 샤갈의 대표작품들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은 초현실적 이미지들은 마치 움직이는 샤갈 전시회를 보는 착각을 줄 만큼 환상적이다.

또한 여행전문서적을 파는 헌책방 주인과 당대 최고의 인기여배우의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노팅힐〉(로저 미첼, 1999)도 그런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이다.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출연한 이 영화는 두 사람간의 비대칭적인 신분과 처지로 인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전개되지만 이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주는 복선이 깔려있다. 영화의 앞부분에서 주스를 쏟아 옷을 버린 안나(줄리아 로버츠 분)가 윌리엄(휴 그랜트 분)의 집에 들어설 때 현관복도에 걸려있는, 그리고 윌리엄과 안나가 식탁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 뒤로 보이는 샤갈의 작품 〈결혼〉(1950)이다.

안나가 “당신이 저런 그림을 가지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자 윌리엄은 “샤갈을 좋아하는군요?”라며 그녀와의 대화를 이어간다.

“네, 무척이나. 사랑에 빠질 때 기분을 좋아하죠. 짙은 청색 하늘을 떠다니는…”(안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염소와 함께.”(윌리엄)
“네, 그래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염소가 없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죠.”(안나)

나는 안나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염소가 없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라는 말에 무척 매료되었다. 물론 이 대목에서 보이는 작품 샤갈의 〈결혼〉은 포스터이다. 하지만 안나는 윌리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샤갈의 원화 〈결혼〉을 선물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윌리엄은 거절한다.

이처럼 〈결혼〉은 보색관계인 푸른색과 붉은색을 가장 아름답고 조화롭게 사용할 줄 아는 화가 샤갈의 초현실주의화가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사색에 잠긴 듯한 강렬한 푸른색의 암소, 바이올린을 켜는 붉은 얼굴의 여인과 여인의 어깨에 앉은 새, 양복을 입은 당나귀와 포옹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여인, 날개 달린 물고기가 하늘을 난다. 그는 마치 달콤하면서도 쓴 사랑처럼, 사랑에 빠진 이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성을 쏟아내듯 화폭에 담았다. 이렇게 한결같이 몽환적이고 꿈속 같은 그림처럼 일관된 샤갈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영화 〈노팅힐〉의 해피엔딩을 미리 예견한다.

Double portrait au verre de vin ⓒ Centre Pompidou
Double portrait au verre de vin ⓒ Centre Pompidou

샤갈이 사랑하고 잠든 마을, 생폴드방스

이처럼 샤갈은 우리가 순수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예술가다. 가난했지만 평생 연인과의 영원한 사랑을 꿈꿨다. 원색의 강력한 샤갈 작품을 보면 왠지 눈물이 나는 것은, 내가 가닿지 못한 저 자유로운 하늘 세상과 그의 상상력이 펼치는 꿈 때문이 아닐까. 그는 ‘사랑’의 이름으로 세상의 모든 편견을 뛰어넘었으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큐레이터에 의하면 러시아 비테브스크에서 가난한 집안의 9형제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샤갈은 현명한 어머니 덕택에 노동자로서의 삶을 모면하고 화가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공상가였고 잠이 들지 않고서도 꿈을 꿀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잠이 들지 않고서도 꿈을 꿀 줄 아는 사람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사실 그의 그림의 대부분은 벨라와의 사랑에서 영감을 받았거나 그녀와 함께 지내던 고향마을에 대한 향수를 꿈꾸듯 그려낸 것이다. 그녀는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타고난 예술성 외에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어린아이 같은 이 남자를 위해 현명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샤갈은 인생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냈으나, 당시 유행하던 회화 유파를 추종하지 않은 그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미술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고향 유대인 마을의 이미지들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비현실적인 신화세계를 창조했는데, 사실적으로 묘사한 대상들을 비자연주의적인 구성 속에 배치했으며, 단편적인 장면에 회화적 상징주의를 담았다.

유대인인 그는 1941년 나치의 박해 때문에 미국 망명길로 내몰렸으나 다시 7년 후 프랑스로 돌아와 생폴드방스에 정착, 이곳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게 된 것이다. 생폴드방스는 방스 남쪽으로 버스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끝까지 걸어가면 샤갈의 묘지가 있는 유대인 공동묘지가 나온다.

좌우 100미터가 될까 말까 한 묘지로 가는 길은 너무 예뻐서 눈 을 뗄 수가 없다. 절로 감탄이 새어나오는 이 거리는 인근 마을들과 산 그리고 멀리는 지중해의 모습까지 볼 수 있는 전망대 못잖은 뷰를 자랑하고 있다. 비석도 없는 조촐한 그의 묘에는 그가 1887년 러시아에서 출생하고 1985년 사망했다는 기록과, 1915년 벨라 로젠펠트와 결혼했고 벨라가 1944년 뉴욕에서 사망했으며, 1952년 발렌티나(바바) 브로드스키와 재혼 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올해는 칸영화제 일정에 집중하느라 차량을 렌트하지 않았고, 샤갈이 말년을 보냈던 생폴드방스도 다시 찾지 못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샤갈의 마을에서 눈이 펑펑 내릴 때까지 파묻혀서 한번 두문불출하고 싶다.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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