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7
연재-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7
  • 유성호(본지 주간, 한양대 국문과 교수)
  • 승인 2019.03.25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서정적이고 인생론적인 노래들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자유로움과 정처 없음, 그리고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정체 모를 두려움,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신성神聖함 등으로 줄곧 비유되어온 자연 사물의 대표 격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의 자유로움,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촛불」)에서의 두려움 같은 것을 우리는 이미 보았거니와, 조용필 노래에서도 ‘바람’은 강렬한 배경이자 지향이자 시적 원리로 존재한다.

어쩌면 조용필의 생애 전체가 바람과도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여기서는 그 유동성보다는 거대한 흐름으로 존재하면서 어떤 신성함을 획득해가는 조용필의 노래 여정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일찍이 프랑스 상징파 시인 발레리가 지은 「해변의 묘지(Le cimetiere marin)」의 마지막 연 첫 행에는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Le vent seleve! Il faut tenter de vivre!)”라는 유명한 구절이 적혀 있다.

비관주의자의 입지에서 훌쩍 벗어나보려는 어떤 안간힘을 통해 발레리는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이라고 노래하면서, 바람이 일으키는 역동성을 통해 단단한 각질로 굳어져가는 일상에 창조적 균열을 일으킨 바 있다.

이때 ‘바람’은 역동적인 희망의 계기가 되어 시인 스스로에게 크나큰 격려와 위안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밥 딜런이 1963년에 발표한 불멸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도 전쟁의 잔혹함과 덧없음을 어서 끝내야 하는데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다고 함으로써, ‘바람’에 신성에 가까운 힘을 부여한 바 있다.

조용필에게는 ‘바람’을 표제로 한 두 편의 대표 곡이 있다. 서정적이고 인생론적인 가사로 이루어진 이 곡들은 ‘시인 조용필’의 이미지를 확연하게 착색한 그야말로 신성하기 그지없는 영적 노래이기도 하다.

 

‘착한 당신’에게 건네는 말

 1985년 11월 15일 발매된 조용필 8집에는 지금 보아도 화려한 그의 히트곡들이 많이 실려 있다.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내 청춘의 빈잔」, 「상처」, 「바람이 전하는 말」 등 우리의 기억속에서나 현재 노래방에서나 선호도에서 선두권을 차지하는 조용필 대표곡 모음집 같기도 하다.

특별히 김정수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내 마음 당신 곁으로」는 조용필의 곡 해석력과 가창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기도 하였다. 이 8집은 양인자, 김희갑 부부가 작사하고 작곡한 노래들을 조용필이 부름으로써 한 시대의 명곡들을 생산하기 시작한 출발점이기도 했는데, 조용필의 활짝 웃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처럼 따라 붙은 앨범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바람이 전하는 말」은 가장 시적인 노랫말로 지금도 사람들의 폭 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노래의 화자는 ‘바람’이다. 지상을 떠난 한 영혼이 ‘바람’이 되어 지상의 남은 이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노래인 셈이다. 지상에는 여전히 “행복한 너”가 살고 있다. ‘너’는 ‘나’를 잊어가지만 어느 순간 갑작스레 찾아오는 “홀로인 듯한/쓸쓸함”을 맞을 것이고, ‘나’는 그때 불어오는 바람의 말에 귀기울여 보라는 말을 건넨다.

누구나 작은 일에 행복하고 괴로워했고, 고독하고 쓸쓸한 순간들을 살다 가는 것, 하지만 ‘바람’은 지상에 남은 이에게 “착한 당신”이라는 기막힌 2인칭을 부여하면서 비록 외로워도 이러한 깨달음을 그저 지나가는 바람 소리라고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2절로 들어가면 이 노래는 어떤 영적 분위기를 띠어 가는데, 지상을 떠난 바람이 “너의 시선 머무는 곳에/꽃씨 하나 심어” 놓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제 바람이 뿌려놓은 ‘꽃씨’는 어느새 자라서 ‘꽃나무’가 되고, 바람에 꽃잎 날리면 “쓸쓸한 너의 저녁”을 아름답게 하며 떨어져 사라져갈 것이다. 그것들을 모아 낙엽을 태울 때 생겨나는 ‘연기’야말로, ‘바람’의 변형체이면서 동시에 ‘나’와 ‘너’를 묶는 연기緣起가 아닐 것인가. 모든 것이 타고 남은 “재 속에/숨어 있는 불씨의 추억”은 “착한 당신”과 지상에서 나눈 시간일 것이고, 또 영원히 이어져갈 기억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속상해도/인생이란 따뜻한 거야”라는 구절은 이 노래의 대미를 장식하는 인생론인데, 차가운 것이 아니라 따뜻한 바람처럼 다가와 인생의 외로움과 쓸쓸함, 따뜻함을 모두 전해준 ‘바람’의 말에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귀기울여갈 것이다. 덧붙이자면 이 노래는 마종기 시인의 작품 「바람의 말」과의 상사성相似性 때문에 여러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광범위한 영향을 인정할 수 있고, 또 어떤 어휘는 정확하게 재현되고 있기도 하지만, 시인의 양해 하에 독립된 노래로 우리의 가슴 속에 남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쓸쓸한 저녁에 불어오는 ‘바람이 전하는 말’을 오랫동안 오롯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바람이 전하는 말」을 발표한 지 꼭 10년 후 조용필은 자신의 16집 앨범 『이터널리』에 「바람의 노래」라는 곡을 싣는다. ‘바람’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존재에서, 이제 스스로 노래 부르는 존재가 된다. 바람이 부르는 이 노래의 핵심어는 ‘사랑’이다. 모든 존재자들을 향한 한없는 사랑으로 확장해가는 조용필의 애잔하고도 힘 있는 목소리가 언제나 선하기만 하다.

조용필의 초기작 「고추잠자리」, 「못 찾겠다 꾀꼬리」 등을 지은 김순곤이 오랜만에 작사한 노래이다. 작곡은 김정욱이 맡았고 조용필이 직접 편곡하였다. 위에서 만난 ‘바람이 전하는 말’을 더욱 역동화한 ‘바람의 노래’를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젠가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꽃이 지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오래 전에 조지훈은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낙화」)라고 했는데, 그만큼 바람이 불어오는 것과 꽃이 지는 것 사이에는 인과론이 깊이 새겨져있다.

바람이 불어왔으니까 꽃이 지는 이유를 알게된 ‘나’는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또 다른 사람들”이 함께 나누고 또 나누어갈 “인연과 그리움”을 생각한다.

“작은 지혜”로 가닿을 수밖에 없었던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방법과 함께 삶의 “해답이 사랑”이라는 걸 알게 해주었고, 또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라는 생각에 이르게끔 한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은 ‘사랑’을 통해 “인연과 그리움”을 완성해간다는 아름다운 사연을 바람이 들려준 것이다. 반복되는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또 다른 사람들/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에 대한 새삼스러운 강조는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라는 뚜렷한 자각에 이르는 성장통痛이요 필연적인 통과의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바람’은 세상에 편재遍在하는 뭇 존재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조용필을 한사코 데려간다. ‘착한 당신’에게 삶의 따뜻함을 애절하게 전하던 ‘바람’은 이제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말=노래’의 주어인 ‘바람’의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전언傳言이 조용필만의 브랜드로 남게 된 것이다.

 

 

신성한 존재로서의 ‘바람’의 말과 노래

 ‘바람’은 문학적 상징으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관습적 상징으로 보면 ‘바람’은 주로 시련과 고난의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다.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졸업반 때 직접 묶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1941)에 실린 서시 격의 작품을 보면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명구가 나오는데, 여기서 ‘바람’은 고난과 시련과 힘겨운 방황의 가능성을 뜻하고 있으며, 서정주의 첫 시집 『화사집』(1941)의 첫 작품 「자화상」에서도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고 하여 그 의미에 흔연히 동참하고 있다.

 

 한편 ‘바람’은 어떤 윤리적인 지향으로 쓰이기도 한다. 가령 공자의 『논어』 안연 편에서는 군자의 덕에 소인들이 감화되는 것을 바람이 불어 풀이 눕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이 장면은 김수영의 시 「풀」에 고스란히 재현된다.

그런가 하면 ‘바람’은 불경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물에 매이지 않는 바람과 같이’에서 보듯이 한없는 자유로 움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꿈의 해석에서도 ‘바람’은 대부분 고난과 시련의 함의로 쓰인다. 하지만 언덕 위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생명의 기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모든 원형상징의 권역을 뛰어넘어 조용필은 ‘바람’에 신정한 존재의 위상을 부여하였다. 이제 ‘바람’은 스스로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 안에는 쓸쓸하고 고통스럽지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삶의 역설적 지혜가 담겨 있다. 그때 비로소 바람의 ‘말’과 ‘노래’는 스스로 경전이 되어 우뚝 선다. 지금도 조용필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속삭이고 외치고 또 건네고 있다.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