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테마 고양이] 세마리 고양이와 생선장수
[3월 테마 고양이] 세마리 고양이와 생선장수
  • 이용한(작가)
  • 승인 2019.03.25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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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미나~! 디나~!”

늙수그레한 생선장수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

“리나~~! 미나~~! 디나~~!”

한 번 더 생선장수는 목청을 돋운다. 길가의 옷가게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쪼르르 생선장수에게 달려간다. 20미터쯤 떨어진 아래쪽 옷가게에서 또 한 마리의 고양이가 생선장수에게 달려간다. 구멍가게 앞 의자 그늘에 앉아 있던 고양이 녀석 또한 기지개를 켜고 생선장수에게 달려간다.

순식간에 세 마리의 고양이가 생선장수 앞에 앉았다. 생선장수는 고양이 세 마리를 앞에 두고 제법 커다란 민물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그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다. 생선장수는 민물고기를 손질작가하며 나온 내장과 아가미 같은 부산물을 세 마리 고양이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세 마리 고양이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먹는다. 이따금 근처에 누워 있던 개들이 고양이에게 던져준 것들을 빼앗아먹기도 했지만, 그래서 가끔씩 개와 고양이 사이에 전운이 감돌기는 했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여기는 산티니게탄. 타고르가 명상하고 시를 쓰고, 후학을 위해 대학을 세웠던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다. 산티니게탄에서 내가 만난 첫 풍경은 바로 생선장수와 고양이였다. 섭씨 45도의 폭염 속에서 만난 동화 같은 풍경. 먹을 것을 얻어먹은 고양이들은 한동안 생선장수 곁에 머물렀지만, 줄기차게 내리쬐는 뙤약볕과 폭염을 참지 못해 하나 둘 근처의 옷가게와 나무 그늘로 피난을 갔다. 아랑곳없이 생선장수는 햇볕 아래서 또 한 마리의 생선을 꺼내 비늘을 다듬기 시작했다.

“리나~! 미나~! 디나~!”

생선장수의 목소리가 또다시 거리에 울려 퍼졌다. 냥냥거리며 다시 고양이가 생선장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근처의 모래더미에 누워 있던 개와 의자 그늘에 엎드려 있던 개도 굼뜨게 걸어왔다. 생선장수는 고양이에게도 개에게도 공평하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개와 고양이는 서로 으르렁거렸지만, 서로가 던져진 몫에 대해서는 불평이 없었다. 이따금 개 한 마리가 고양이의 몫을 탐낼 때마다 생선장수는 개를 나무랐고, 개는 납작 엎드려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이 세 마리의 고양이는 생선장수가 키우는 고양이일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녀석들은 모두 주인이 없는 길고양이였다. 게다가 이 녀석들 모두 아비시니안이었는데, 인도에서는 흔하게 만나는 품종이었다. 녀석들은 먹을 것을 얻어먹고 나면 언제나 근처의 옷가게와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피했다. 옷가게 주인은 마음대로 드나드는 고양이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옷가게를 찾는 손님들조차 고양이가 있건 없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에 다시금 생선장수를 찾았다. 생선장수는 똑같은 자리에서 좌판을 펼쳐 생선을 다듬었고, 물고기의 부산물이 나올 때마다 세 마리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건 마치 고양이를 부르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주문을 외면 현실에 없는 고양이가 ‘짜잔~!’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리나~~! 미나~~! 디나~~!”

세 마리 고양이가 다 고만고만해서 누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인도 동북부 벵갈 주의 작은 도시 산티니게탄에도 고양이를 갸륵하게 돌보는 손길이 있었고, 그것을 고마워하는 세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다. 생선장수와 세 마리의 고양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 현실이 내게는 비현실적인 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산티니게탄에서 3일을 머무는 동안 나는 세 번이나 이곳을 찾았고, 세 번 다 생선장수의 꿈결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리나~~! 미나~~! 디나~~!”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인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이 세 마리 고양이의 이름이다. 나에게 인도는 리나, 미나, 디나의 나라인 것이다.

 

 

* 《쿨투라》 2019년 3월호(통권 5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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