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배우 강수연] 이별이 낳는 것은
[시로 만난 별 Ⅱ 배우 강수연] 이별이 낳는 것은
  • 장재선(시인)
  • 승인 2022.06.0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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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낳는 것은
- 배우 강수연

장재선(시인)

이별이 낳는 것은 그리움만은 아니다
그대가 떠난 후 알게 되었다

짧았던 날이어서 그토록 뜨거웠구나
결국은 다 탔구나

이제 질시를 거둔 그들이
저녁노을에 서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대를 할퀴었던 입들이
단술을 쏟아냈다

푸른 나무의 그늘 아래서
그대의 꿈은
늘 여리게 숨 쉬었건만

나와 저들은
붉은 화관만 가리키며
일찍 얻은 영광에 가두었구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꿈 속에도
그대가 살아 숨 쉬니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
또 무언가를 주고 있구나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시작노트
  강수연 배우가 세상을 떠난 후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다시 봤다. 그 중 〈추락하는 것을 날개가 있다〉가 유독 여운이 길었다. 주인공 윤주가 세상을 마감하는 엔딩은 다시 봐도 강렬했다. 윤주의 삶은 세상의 관점에선 요절이지만, 가혹한 운명에 자기 식으로 맞서다가 다 타버린 게 아닐까 싶다.

  강수연 배우도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떠났다. 그러나 그의 실제 생애는 자신이 연기한 윤주처럼 부나방 같지 않았다. 그가 배우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20, 30대에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한 동영상들을 되돌려보며 새삼 느꼈다.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배우인지를.

  그는 자신이 덜 자란 부분이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 만 4세 때부터 배우 생활을 하느라 정상적 성장 과정을 거치지 못한 탓이라는 것이다. 그걸 직시하며 극중 남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그는 독종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깡수연’이라는 별명은 그래서 생겼다. 배우에게는 훈장 같은 별칭이지만, 자연인으로서는 경원의 딱지였다. “저는 여리고 무른 성격이에요. 그러나 여러분이 단단하고 야무지게 봐 주신다면 그걸 받아들여야지요.”

  지난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에서 봤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선연하다. 선배인 김지미 배우의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헤쳐 지나가던 장면. 김지미 배우는 그보다 10여 년 전 미국으로 떠나 고국과 연을 끊고 있었다. 그 해 영화제 회고전 주인공이긴 해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그의 옆을 ‘월드 스타’ 강수연이 지켜준 것이다.

  그는 선배들을 잘 모셨을 뿐 만 아니라 후배들을 격려하며 영화계 중추 역할을 했다. 부산영화제가 정치 격랑에 휘말릴 때 집행위원장으로 초대된 것은 그렇게 품이 넓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영화제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음에도 일부의 공격을 받아 불명예 퇴진을 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출연한 넷플릭스 영화 〈정이〉가 곧 개봉을 한다고 들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화 속에 그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참 묘한 느낌을 준다.

  그와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게 된 세상 사람들이 이런저런 성찰을 하게 된 것은, 대배우가 남긴 마지막 선물일 것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여, 언젠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서정주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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