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힐링 드라마 셋: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드라마 월평] 힐링 드라마 셋: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 〈어게인 마이 라이프〉
  • 주찬옥(드라마 작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06.0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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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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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정석희의 테레비평, 어제 뭐봤니〉에서 정석희 비평가는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는 중 어떤 드라마가 더 좋으냐 하는 것은 시원한 물냉면과 깊고 진한 곰탕 중 어느 쪽이 더 맛있나를 묻는 것과 같다. 입맛의 차이”라고 즐겁게 얘기한다. 정석희씨는 “두 작품 다 좋다. 그 중 〈나의 해방일지〉는 시청률은 높지 않아도 화제성은 최고인데 취향을 많이 타는 작품이기 때문”이라며 애정을 드러낸다.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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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의 드라마 중 눈에 띄는 드라마는 역시 〈우리들의 블루스〉(tvN)와 〈나의 해방일지〉(JTBC)일테고 결은 좀 다르지만 10프로 시청률 〈어게인 마이 라이프〉(SBS)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겠다.

  먼저 〈어게인 마이 라이프〉를 얘기해보자면 이 드라마의 묘미는 캐릭터에 있다.

  주인공 김희우(이준기 분)는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데, 죽은 시점이 아니고 무려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 이게 대박인 것이, 몸은 젊어졌지만 뇌에 검사 시절까지 축적한 공부의 총량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데다가 몸이 기억하는 싸움의 기술도 완벽하다. 여기에 주변 인물을 도왔더니 어마어마한 재력까지 생겨버린다. 능력치 만렙이 되는 “인생 리셋 판타지”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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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야말로 웹소설이나 웹툰에서 보던 먼키친 캐릭터 아닌가! 먼치킨이란 용어는 게임이나 웹소설에 나오는 초강력 주인공을 말하는데 차근차근 성장하는 무협지하고도 또 다르다. 애초부터 능력치가 만렙이라 어떤 가공할만한 악당이 나타나도 결국 때려눕히고야 만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우월한 힘에 편승하여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문제는 이 먼치킨 히어로물이 드라마에선 유치하지 않을까였는데 액션물을 잘 소화하는 이준기 배우라 그런지 선방하고 있는 것 같다.

  〈어겐마〉가 사이다 힐링이라면 〈나의 해방일지〉는 스며드는 힐링, 공감용 힐링 드라마다.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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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는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같은 곳” 이며, 회사 내 모든 여직원들과 연애하는 이사를 경멸하고 헐뜯는 이유는 “왜 나만 건너뛰는 건데?”이고, 애써 외면해보지만 결국 헤어지자는 그 여자의 눈빛에서 읽는 것. “나도 알어. 걔가 쥘 수 있는 패 중에서 내가 최고의 패가 아니라는 거. 더 좋은 패가 있겠다 싶겠지…나도 알어…” “사람들은 천둥번개가 치면 무서워하지만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바라는 바다. 불행하지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주옥같은 대사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일부러 OTT에서 자막 틀어놓고 문장을 음미하면서 시청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큰 사건은 없다. 세밀한 감성, 놀라운 심리분석. 관찰력. 유니크한 비유 등의 대사로 채워지는데 이를 들으며 시청자들은 공감한다. 뚜렷하게 의식하진 않았어도 막연히 느꼈던 어떤 감정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대사를 만날 때 사람들은 감탄한다. 그리고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고, 이해하니까 위로를 받고 위로를 받으니까 안심을 하게 된다.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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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심하게 취향 타는 드라마여서 2화 엔딩 “나를 추앙하라”를 계기로 그만둔 사람도 많다. 사실을 말하면 내 경우가 그렇다. 나중 언젠가 한꺼번에 몰아서 다시 볼지는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를 추앙하는 매니아 반대 쪽을 대변해보자면 내 경우 드라마를 보는 내내 너무 우울해지는 바람에 중단했다. 기가 빨리고 피곤해지는 느낌. 자기 연민과 신세 한탄을 모든 등장 인물들이 하고 있는 느낌이어서 지치고 말았다. 이 ‘나의 사색일지’가 내겐 힐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박해영 작가의 전작인 〈나의 아저씨〉를 좋아하고 그보다 더 전작인 〈또 오해영〉을 더 좋아한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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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우리들의 블루스〉, 제주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얘기해보자. 우리나라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은 BTS. 김연아. 유재석. 이국종이라고 하는데 노희경 작가도 속하지 않나 생각한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는 늘 평이 좋다. 인생 드라마로 꼽는 사람들도 많다. 그 포위망을 뚫고 비판 좀 해도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우선 옴니버스라는 형식을 과감하게 가져온 것에 박수를 보낸다. 제주 방언을 살린 것도 나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노희경 작가의 전작, 〈디어 마이 프랜즈〉 〈괜찮아 사랑이야〉가 나왔을 때 대단한 뚝심이라고 감탄했다. 노인들 얘기, 정신과 질환이 있는 사람들 얘기를 기획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용기와 결단은 노희경이라서 가능한 지점도 분명 있다. 칭찬하고 싶다.

  1, 2화 시작은 한수(차승원 분)와 은희(이정은 분)였는데 평도 좋았고 시청률도 잘 나왔다.

  잘 생기고 공부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인기 남학생이었던 한수. 없는 집에서 다른 형제 희생시키며 몰빵으로 대학 보낸 맏아들. 그 때만 해도 청춘은 찬란했고 미래엔 뭐라도 될 거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랬던 한수가 돈에 몰리는 추레한 중년이 되어 제주 은행 지점장으로 내려왔고 과거 자기를 좋아했던 은희에게 돈 빌려볼까 말까 고민하고 망설인다. 차승원 이정은 배우가 커플로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나? 이정은 배우가 멜로가 되네? 라고 탄복했다.

  노희경 드라마의 인물들은 대체로 상처받거나 거칠게 살아온 인생들이다. 그래서 연애 감정도 날카롭게 공격하거나 격하게 드러내곤 했다. 그런데 이 〈우리들의 블루스〉에 이르러서는 많이 눅어져 보인다. 인물들은 훨씬 부드러워졌고 감정이 다양해졌다. 노희경 작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등이 더 깊어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연민이 너무 넘쳐서일까 옴니버스의 한계였을까 결말이 너무 빠르고 쉽다.

  한수와 은희가 목포로 여행간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은 불편해했다. 불륜 조장이 될까봐. 한수가 돈 빌려달라 말해서 첫사랑의 그 소중한 추억이 망가질까봐. 그러나 안심하시라. 그들에겐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은희는 화는 냈지만 돈을 쏴줬으며 코너에 몰렸던 한수도 아니 맘만 받을게라며 젊잖게 2억이란 돈을 다시 토스한다. 그들의 사연은 그렇게 아무에게도 상처내지 않고 곱게 끝난다. 그래서 시청자도 안심했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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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진 고등학생들의 임신문제는 십대의 성문제를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했다. 보수적인 시청자들은 외면하고 싶어서 싫어했고, 인권문제에 민감한 사람들은 태아 심장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죄의식을 강요했다고 화를 냈다. 그러나 다음 화가 되자 호식(최영준 분)과 인권(박지환 분), 두 아빠들이 엄청난 느와르 식 부성애를 보여주면서 문제를 봉합한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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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아(신민아 분)와 동석(이병헌 분)의 에피소드는 또 어떤가. 물론 사랑이 바탕되어서겠지만 동석은 우울증 밑바닥에 떨어져 내린 선아에게 거의 심리상담사 같은 조언을 하고 도움을 준다.

  〈우리들의 블루스〉에 셋팅된 인물들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빈껍질인 중년, 십대 임신, 우울증 등 사회적인 아젠다도 과감하다. 그런데 왜 결말은 한결같이 이해와 위로와 사랑으로 채워지는 건데? 이쯤 되면 〈우리들의 블루스〉는 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힐링이 되는 게 아니고 노희경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힐링을 주고 싶어서 쓴 도덕 교과서 같이 느껴진다.

  노희경 작가는 선생님이 되고 싶나? 어떤 사명감이라도 있는 건가?

  시청자들이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며 공감과 위로와 힐링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따뜻하고 좋은 드라마였어! 인생에 도움이 됐어! … 그래도 뭔가 아쉽다.

 

 


주찬옥 드라마 작가.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매혹〉으로 데뷔했으며, 〈사랑〉(MBC, 1998년) 〈수줍은 연인〉(MBC, 1998) 〈외출〉(SBS, 2001) 〈남자를 믿었네〉(MBC, 2011) 〈운명처럼 널 사랑해〉(KBS, 2014) 등을 썼다. 현재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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