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초라하고 우아하게: 한은형, 『레이디 맥도날드』(문학동네)
[문학 월평] 초라하고 우아하게: 한은형, 『레이디 맥도날드』(문학동네)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2.06.0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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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을 쌓지 못했다. 그래서 패배했다.” 『레이디 맥도날드』의 첫 문장이다. 이를 읽고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운과 패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테지만, 적어도 이것이 노력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사건임을 새삼 느껴서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는 언제라도 갑자기 몰락할 수 있다. 애써 외면하는 진실에 이 책은 독자를 대면시킨다. 한 홈리스의 쓸쓸한 죽음, 그리고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초라하고 우아한 그녀의 삶을 통해서다. 그녀는 ‘노숙인’이었다. 그러나 길에서 아무렇게나 잠들지 않았다. 분위기 있는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녀는 정동 맥도날드에 앉아 밤을 지새웠다. 낮에는 밥 대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영자 신문을 읽었다. 홈리스인데 보통의 노숙인 같지 않은 그녀의 독특한 생활 모습은 실제 방송으로도 제작된 바 있다.

  『레이디 맥도날드』는 이러한 칠십 대 중반 여성의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재창작한 장편소설이다. 그간 도회적 스타일의 세련된 작품을 발표해 온 소설가 한은형은 왜 홈리스에 초점을 맞췄나?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불안했다. 거리에서 살게 될까봐. 나는 소설을 쓰는 것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고, 돈 버는 재능은 없이 쓰는 재주만 있고, 기댈 만한 데도 없어서 그랬다. (……)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집 없이 맥도날드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낸다는 그녀는 어쩌면 나의 미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아팠고, ‘마음’이라는 게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게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잡고 있어야 했다. 써야 했다. 그토록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라면.”(324쪽)

  “운을 쌓지 못했다. 그래서 패배했다.”라는 문장을 읽고 나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고, 작가가 그녀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는 게 우연이 아닐 듯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소득이 오래 끊기면 거리로 향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까. 지금은 좀 시들해졌으나 코인과 주식에 매달리던 사람들의 마음 또한 다르지 않았으리라. 부자들은 자꾸 늘어간다는 데 가만히 있으면 나는 ‘벼락 거지’를 면치 못하겠지. 이와 같은 불안감이 그들로 하여금 잘 알지도 못하는 코인과 주식에 몰두하게 만들었을 테다. ‘투자’라고 표현은 하지만 실상은 실낱같은 ‘운’에 기대는 일. 초창기 운의 흐름을 잘 탄 사람은 거액을 챙겼다. 그렇지만 누군가 거액을 챙겼다는 사실을 뒤집어 보라. 더 많은 누군가‘들’은 거액을 잃었다. 그들이라면 『레이디 맥도날드』의 주인공 김윤자 씨(소설에서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불러달라고 요청한다)가 맞닥뜨린 무운無運에 더 감정이입할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노년은 기실 현재를 살아가는 곤궁한 청년 세대가 한 번쯤 예감해보았을 불운한 미래다. 요즘 가난한 청년 세대는 저축을 착실히 해 재산을 증식하겠다는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밖에 없다. 그것을 쏟아 부어도 집은 커녕 원룸조차 구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레이디 맥도날드』의 서사가 힙hip하되 빈곤한 청년 세대의 앞날과 전혀 관련 없다고 단언하지 못하겠다. 바라건대 젊은이여. 당신들이 오늘날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과거에 ‘X세대’라고 불린 적이 있었음을 기억하기를. 그러한 의식 있는 독자가 이 소설을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김윤자 씨의 삶을 한편으로는 주관적으로, 한편으로는 객관적으로 살피는 균형감이다. 이는 그녀를 취재하러 온 방송사 PD 신중호의 관점이 엮여들면서 발생한다. 추천사를 쓴 소설가 백수린도 이 작품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작가의 시선에 있다고 밝힌다.

  “이 소설 속에서 ‘맥 레이디’는 조소나 동정의 대상으로 납작해지는 대신 한 송이의 백합처럼 향기롭게 피어난다.” 이 말을 예증하듯이 작가는 김윤자 씨를 ‘맥도날드 할머니’ 대신 ‘레이디 맥도날드’라고 호칭한다. 그녀에게는 정말로 평범한 할머니 대신 존중의 의미를 담아 레이디라고 불러야 될 것 같은 품격이 넘친다. 트렌치코트가 잘 어울린다는 신중호의 칭찬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는 이왕이면 멋있고 아름다운 게 좋아요. 선생도 그렇지 않아요?”(64쪽) 홈리스라는 처지와 관계없이 그녀는 미학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다. 산책과 독서가 그녀를 지탱하는 힘이다. 타인의 눈에는 희한하게 비칠지언정 그녀는 의연하게 자신만의 규칙을 지켜나간다. 그러기에 이 작품에서 2021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를 떠올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영화에서 한 소녀가 자동차를 몰고 세상을 떠도는 주인공 펀에게 묻는다. “엄마 말로는 집이 없다고 하던데 진짜인가요?” 그녀는 대꾸한다. “집homeless이 없는 건 아냐. 거주지houseless가 없는 거지.” 물론 김윤자 씨의 사정은 펀보다 훨씬 열악하다. 그래도 펀의 대답처럼 안식처로서의 ‘집’과 그저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거주지’를 구분한다면, 김윤자 씨에 대한 규정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그녀 역시 거주지가 없을 뿐 안식처는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밤을 보내는 맥도날드, 커피를 마시는 스타벅스, 쪽잠을 청하는 교회, 무료 영화를 틀어주는 일본문화원 등이 그러하다. 그녀는 홈리스라기보다 하우스리스라고 해야 옳다. 스스로가 그렇게 여긴 까닭에 그녀는 신중호의 취재 요청에 응한다. 한 가지 단서는 붙인다. 그녀는 그에게 방송용 멘트 말고,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다행히 신중호는 김윤자 씨를 시청률 올리는 도구 정도로 간주하는 속악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에게 행복에 관한 중요한 언급을 할 수 있었다. “행복이 별거 있나요? 가지지 못한 거는 어쩔 수 없고 가진 거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죠.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겠어요?”(164쪽) 반면 신중호는 행복의 비결을 말하지 못한다. 이에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방식, 그러니까 흔히 평범하다고 일컬어지는 삶의 방식 말고는 잘 상상하지 못했다.”(113쪽)라는 대목이 겹쳐진다. 거주지가 없는 그녀는 명확하게 알고, 거주지가 있는 그는 무지하였던 행복을 우리는 다시금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인생의 승리와 패배도 자리바꿈할 것이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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