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다시 돌아갈 태초, 그리고 청춘이라는 일생 속 우리들: 오아OAH!의 〈우리의 섬〉
[음악 월평] 다시 돌아갈 태초, 그리고 청춘이라는 일생 속 우리들: 오아OAH!의 〈우리의 섬〉
  • 이준행(음악가)
  • 승인 2022.06.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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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OAH!
ⓒ 밴드 OAH!

  최근 몇 년간, 홍대에서 지배적인 분위기를 차지하고 있는 장르는 단연 잔잔한 모던 락이었다. 평탄한 진행에 다소 무의미한 가사를 감성 한 스푼 담아 읊조리듯 노래하면 상당한 인기가 따라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던 락이 아닌 다른 락 장르들의 약세가 두드러졌으며, 특히 기타 사운드를 기반으로 팝의 요소들을 받아들인 팝 락 계열의 밴드들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 지속 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0년, 반가운 얼굴들이 씬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들을 결코 무겁지 않은 팝의 기운에 실어 연주하는 반가운 이름, 바로 밴드 오아OAH!다. 보컬과 기타의 유진환, 베이스의 권민조, 드럼의 유환웅, 기타의 김기훈으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로 탄탄한 연주력과 퍼포먼스는 물론, 밴드의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능력과 유려한 팬 서비스까지, 그야말로 씬에서 생존할 모든 역량을 두루 갖춘 팀이다. 이들이 표현하는 ‘청춘’의 단면들은 단연 팝 락의 사운드와 가장 잘 어우러진다.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브릿 팝 밴드인 오아시스Oasis가 살짝 연상되는 팀명에서부터 진한 팝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청춘’을 주제로 연작을 발표하고 있다. 각각의 싱글 곡들을 연작으로 묶을 수 있는 이유는 각 곡에서 표현되는 청춘의 양상이 동일한 시공간 속에서 유사한 소재들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면이 정해져 있기에 이 평론에서 다 다뤄볼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출발점이 되는 이 곡을 알아간다면, 그들이 말하는 청춘 속으로 더 깊게 파고들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아OAH!의 첫 싱글 〈우리의 섬〉으로 출발해보자.

ⓒ 밴드 OAH!
ⓒ 밴드 OAH!

  새벽이 비춰진 우리 사이에는 / 불빛들만이 그래 많았구요

  이제 와서 우린 다시 봄을 만나 / 다시 돌아갈 거야 우리의 섬으로
 

  오아OAH!의 곡들은 청춘의 시간을 주로 새벽으로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청춘이라는 시간은 대부분의 사유에서 아침 혹은 빛이 완연한 낯으로 표상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청춘은 새벽에 휩싸여 있다. 새벽은 밤과 아침 그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경계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매우 고요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감각은 불빛들이 주는 시각적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집중된다. 새벽의 경계 속에서 빛나는 이 불빛은 별빛을 연상하게 한다.

  이 경계의 새벽에 봄이 찾아오며. 섬으로 돌아갈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봄이 온다고 해서 새벽은 사라지지 않는다. 봄의 하루하루에도 무수한 새벽의 시간이 남아 있다. 따라서 봄은 회귀의 계기가 될 수는 있으나, 청춘을 경계 속에서 꺼내주지는 못한다. 희망으로 활기찬 봄이 아니라, 시간의 순환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시간축으로서의 봄이다. 따라서 이 표현에서 우리는 일종의 시간성을 읽을 수 있다.

  화자가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공간은 섬이다. 이 섬은 사실 우리의 삶에서 최초로 출발했던 곳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섬을 돌아가고자 하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순환하는 계절의 흐름 속에 무수히 잘게 다져진 새벽의 시간을 거쳐, 다시 최초의 시공간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청춘의 시간은 무엇을 위한 시간인가. 중요한 것은 이 섬이 자신만의 섬이 아니라 우리의 섬이라는 점이다. 화자에게 이 시간은 자기 자아만을 탐닉하는 시간은 아니다. 화자는 우리를 강조함으로써 이것이 우리 모두의 사유이길 갈망하고 있다.

ⓒ 밴드 OAH!
ⓒ 밴드 OAH!

  시간이 흘러가는 바다에선 / 추락하는 꿈을 만나 휩쓸리고

  모두가 떠나왔던 그곳으로 / 우린 떠나갈 거야 우리의 섬으로

  차가워진 모습 속에 불꽃이 다다르면 / 오래전 모습처럼 우린 타오를 거야


  2절에서 화자는 바다에 위치한다. 바다라는 공간은 육지에서 섬으로 가는 경계의 공간이다. 그런데 이 바다에서 시간이 흐른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것은 바다가 아닌 섬에서는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이면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실 절대적인 의미에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언제나 그곳에 있다. 그러나 그 절대적 시간 안에서 어떤 운동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시간이 흐르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곳에 시간이라는 구분을 지각할 수 있는 인간 존재가 있어야 시간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작품 이면에 위치한 기독교적 모티프들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태초의 공간에는 시간이 없었다. 그곳에 자신이 인간임을 자각하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가장 마지막인 계시록에서 다시 찾아오는 태초와 상응하는 공간 또한 더 이상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신과 완전히 동일시된 존재만이 살 곳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바다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이유는 ‘추락하는 꿈을 만나 휩쓸리’는 거대한 삶의 운동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삶의 운동은 곧 태초를 찾아 나서는 우리의 일생이다. 즉, 화자에게 청춘이란 어떤 삶의 한 시점이 아니라, 태어나서 다시 태초를 향하는 우리의 일생 전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인간 존재로서 헤쳐 나가는 이 바다에서 일생의 시간이 흘러간다. ‘추락하는 꿈’은 부정적인 속성이 아니다. 이것은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1절의 ‘봄’의 의미와 맞닿는다. 봄이 시간성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우리는 여기서도 동일하게 일생이라는 시간성을 읽을 수 있다.

  추락이라는 하강 운동은 섬으로 안착하기 위한 삶의 운동이다. 바다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온도로 인해 우리는 ‘차가워진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수면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우리가 섬으로 근접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 불꽃이 다다른다. 1절에서 새벽의 고요함 속에 빛나던 불빛은 바다에서의 시간을 거쳐 어느새 불꽃으로 변화한다. 불빛은 시간이 흐르는 바다를 거쳐야 비로소 불꽃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 에너지는 결국 오래전 모습처럼, 다시 시간이 없는 태초의 공간에서 화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를 타오르게 만들 것이다.

  우리의 청춘은 인생의 한 시점을 관통하는 찰나의 시간이 아니다. 젊음의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가 없다. 떠나온 곳과 돌아갈 곳 사이에 시간이 흐르는 모든 일생의 시점이 바로 청춘이기 때문이다. 일생이라는 청춘, 이 바다 위에서 마음껏 추락하고 휩쓸려도 좋다. 그것이 곧 우리를 다시 섬으로 인도할 것이다. 오아OAH!는 이러한 주제를 결코 무겁게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절로 고개를 까딱거리게 하는 리듬, 청량한 팝 사운드 속에 보일 듯 말 듯 하게 녹여낸다. 자연스럽게 이 음악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그들만의 섬이 아닌 우리 모두의 섬이 눈 앞에 아른거리게 될 것이다.

기타 기훈
베이스 민조
보컬 진환
드럼 환웅

 


이준행 음악가. 락 밴드 벤치위레오 보컬, 기타로 활동 중.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박사과정 수료. 시와 음악의 연관성, 그리고 시와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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