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테마 고양이] 동네고양이 일기
[3월 테마 고양이] 동네고양이 일기
  • 여미영(CBS 라디오PD / 고양이전문방송 <키티피디아> 기획 제작)
  • 승인 2019.03.25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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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주의보가 내린 퇴근길, 걸음을 재촉합니다. 어깨는 경직되고 두손은 주머니에, 모자까지 썼지만 추운 건 여전하네요. 재빨리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시선은 골목 구석구석을 향합니다. 이 추위에 혹시라도 어느 동네고양이가 밥 달라고 나와 있을까해서 말이죠. 영역 동물인 고양이의 특성상 어느 지역에 나타나는 아이들은 거기 ‘사는’ 아이들이거든요. 그래서 도둑고양이도 길고양이도 아닌, ‘동네고양이’라는 호칭이 적합한 친구들이죠.

저는 4마리 고양이를 모시고 사는 집사입니다. 집에서 4마리나 모시면서 또 무슨 고양이 타령이냐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들과 함께 살면서 그 얼굴이, 눈이 제 삶에 각인되면서 제 삶이 조금 달라졌거든요. 길에서 만나는 이웃인 동네고양이들도 모두 내가 모셔야 하는 고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출근할 땐 가방 안에 사료를 소분한 봉지와 일회용 그릇을 챙겨나가요. 겨울엔 물도 챙겨다니려 하고요. 겨울엔 어디든 다 꽁꽁 얼어버리니 고양이들이 물 마실 곳을 찾기 쉽지 않거든요. 몇 번 ‘뒷정리를 안할 거면 밥 주지 말라’는 말도 들어서 웬만하면 아이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치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힘들어요. 이 모든 사료며 캔, 겨울집도 전부 제 주머니 털어서 사는 것들이거든요. 한번은 친구가 고양이들 키우려면 돈이 참 많이 들겠다며 한달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저는 계산 안 합니다. 아니 못해요. 대략 어느 정도겠구나 짐작은 하지만 이걸 계산하는 순간 저와 함께 사는 4분들은 물론, 동네고양이에 드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쉬워하고 ‘주문하기’ 클릭을 망설일까봐요. 얼마가 드는지 모르는 채 두자, 그리고 쇼핑목록을 대폭 지우게 됐죠.

사실 그래도 저는 캣맘 중에선 하급(?)에 불과합니다. 3년 넘게 밥을 주던 구역이 있었지만 이사 가면서 근처에 계신 분께 인계하고 난 이후로는 지나가며 밥을 줄 뿐이니까요. (물론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로 가지요) 게다가 저는 그곳에서도 매일 밥주고 물주고 겨울집 마련하는 정도로도 허덕이던 불량 캣맘이었어요. 통덫을 빌려 TNR을 해줄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코점이’라는 섹시한 검은 고양이가 3년째 임신하는 것을 보아야 했고, 코점이의 아들 ‘모인이’가 여자친구 ‘루니’를 임신시켜 데려왔을 때도 반려동물 우유를 챙겨주기밖에 못했어요. (코점이는 다행히 매번 출산 후 기력을 회복했지만, 루니는 한 살도 안된 아이였는데 그 이후 보지 못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아이들이 아파도 병원 한번 데려가지 못했어요. 얼굴에 피부병이 번져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라서 피하던 ‘금메달’이 늘어져있을 때도 뜨거운 물에 캔을 말아줬을 뿐입니다. (몇 달 뒤 ‘포인핸드’ 라는 사이트를 통해 금메달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느 누군가 길에 쓰러진 금메달을 보고 신고해, 병원에 갔지만 며칠 뒤 생을 마감했다고 해요.) 아이들의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중성화를 해주고, 구조해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해주시는 캣맘 캣대디가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그저 하수에 속할 뿐입니다.

그래도 힘들었어요.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사는 것이 쉬운가요. 매일 퇴근 후 다시 할 일이 시작되는 느낌, 아십니까?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 어느 날, 아이들에게 밥을 주러 가면서 이 일을 왜하는가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아마도) 돈도 많이 들고, 주민들에게 못 들을 말도 들어가며(밥 주는 게 불법도아닌데!), 밥그릇에 웬 음식 쓰레기가 있던 적도 있고, 애들은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음식이 올려있기도 하고요. 직장에서 힘든 일 있는 날도, 더운 날씨 혹은 추운 날씨에도, 이 무슨 수고인지. 아이들 얼굴도 못 보는 날이 태반에, 때로 누가 보이지 않으면 홀로 마음 졸여야 하고, 그러다 영영 보이지 않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넜구나 마음으로 떠나보내야 하고, 때로는 어딘가에서 죽은 아이를 찾아내 장례를 치러주기도 하는 일. ‘슬프거나 더 슬픈 것 밖에 없는 이 일을 나는 왜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코너를 돌아 밥자리에 들어서면 그런 날은 꼭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한국의 동네고양이들답게 오래 봐도 살갑지 않고 곁을 주지 않으면서, 그런 날은 꼭 얼굴을 보여주던… 지금은 볼 수 없는 나초, 삼색이, 코점이, 모인이, 찡찡이, 제트, 루니, 투니, 거니, 그리니, 금메달, 뚱레, 레드… 모든 상념을 지워버릴 만큼, 하루 한 끼 밥을 챙겨주면 그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반갑고 또 반가울 뿐이었어요. 아이들 하나하나의 얼굴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툴툴 대던 불량 캣맘이나마 기다려주던 그 얼굴들 덕분에 저도 그 시절을 지난 것 같아요. 서로 기대어 살아내던 나의 작은 이웃들. 지금도 그 얼굴들을 길 위에서 봅니다. 살갑지 않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우리. 그래서, 오늘도 반갑게 사료봉지를 흔들 겁니다.

 

 

* 《쿨투라》 2019년 3월호(통권 5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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