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월평] 김수로와 허황옥의 사랑과 이상을 노래하다: 가야를 배경으로 한 창작 오페라 〈허왕후〉
[공연 월평] 김수로와 허황옥의 사랑과 이상을 노래하다: 가야를 배경으로 한 창작 오페라 〈허왕후〉
  • 박영민(본지 기자)
  • 승인 2022.06.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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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를 배경으로 한 창작극 〈허왕후〉

  김해시와 (재)김해문화재단이 제작한 오페라 〈허왕후〉가 제13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초청작으로 선정되어 공연을 선보였다. 우리 고대 역사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가야를 배경으로 한 창작극이라는 점이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이끌었다.

  공연을 관람하기 전 필자는 인도(아유타국)에서 가야로 온 공주가 있었고, 그이가 김수로 왕과 결혼하고, 왕은 그이에게 ‘김해 허씨’라는 본관本貫을 내렸으며,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본관이 같아서 결혼하지 못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초월했다. 오페라 〈허왕후〉는 가야사를 재조명하고 가야역사문화 콘텐츠의 개발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이천년 전 가야 문명의 출발이자 철기문화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수로왕과 허왕후의 러브스토리’를 예술적 오페라로 승화해냈다.

  철기 문명을 이끌었던 가야를 상징하듯 막이 열리면 무대 중앙에 대형 타원楕圓이 있고 그 가운데로 거대한 검劍이 내려온다. 이 검 하나로 가야국이 철기 문화의 중심이었음을 보여주었고, 철이 극이 중심이 됨을 보여준다. 그리고, 원과 검을 통하여 밤낮과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극을 전개해 나간다.
가야국의 왕을 세우고자 하는 씨족장인 9간九干과 왕이 되고자 하는 형 이진아시와 왕이 될 인물로 신탁을 받은 김수로와의 갈등, 가야의 제철 기술을 배우고자 인도에서 온 공주(허황옥)와 그의 시녀 디얀시, 가야의 기술을 빼내려는 이웃 나라 사로국의 석탈해의 음모와 석탈해와 시녀 디얀시와의 사랑과 배신 등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김수로와 허황옥,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결혼

  귀족과 평민이 어울려 일하던 야장冶場에서 한 기술자가 당나라 사신의 옷에 흙과 자갈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이진아시에게 채찍질을 당하려 하자 김수로가 이를 막아선다. 이 일을 계기로 9간들은 누구를 왕으로 세울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허황옥은 김수로를 유심이 지켜본다. 허황옥은 김수로의 백성에 대한 사랑과 굳은 의지, 백성과 어울리는 소탈함에 마음을 빼앗긴다.

  이웃 나라 사로국의 석탈해는 가야의 제철 기술을 빼내고자 허황옥의 시녀 디얀시를 매수하여 제철 기술이 담겨 있는 문서를 빼내 오게 하여 김수로를 어려움에 빠뜨린다. 김수로가 음모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알고 있는 허황옥은 시녀 디얀시를 설득하여 사실을 말하게 함으로서 김수로를 누명에서 구한다. 하지만 석탈해는 정인情人이자 그에게 제철 기술 문서를 빼주었던 디얀시를 죽이고, 석탈해와 사로국 부하들, 이진아시와 김수로 그리고 그들의 부하들이 싸움을 벌인다.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한 디얀시의 마음을 담은 노래와 디얀시의 시신을 끌어안고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는 허황옥의 노래가 깊은 인상을 주었다. 허황옥과 디얀시, 두 여인의 처지와 서사가 잘 들어 있고, 두 사람의 감정을 잘 담고 있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철기와 각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가락국을 방문한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은 청년 김수로의 열성과 합리적인 자세에 반하고 이어 김수로는 활발한 해상무역과 수준 높은 제철기술, 민주적인 통치를 바탕으로 찬란한 철기문화 국가를 탄생시킨 왕이 된다. 왕이 된 김수로는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하고, 두 사람은 가야의 백성들을 위한 왕과 왕비가 될 것을 노래한다.

  김수로와 허황옥의 결혼은 우리나라 역사 기술서에 기록되어 있는 최초의 국제결혼이다. 이는 강인함의 상징인 철과 섬세한 음악을 만드는 현의 상반된 이미지만큼이나 시대를 앞서간 김해인들의 지혜와 힘, 정서와 예술성을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영상, 무대 등 정형화된 구성에서 벗어나 극장 기계 시스템 활용이 돋보이는 무대 디자인으로 ‘철과 현의 나라 가야’를 완벽하게 구현한 것이다.

  관객을 매료시킨 디얀시의 소프라노 손가슬

  대본 김숙영, 작곡 김주원이 역사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하여 가야의 역사와 김수로왕, 허왕후가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 그리고 사랑을 오페라에 담았으며, 우리말로 작곡된 허왕옥의 아리아 〈해맑은 웃음 뒤에 강인함이〉와 김수로의 아리아 〈백성의 마음을 아는 왕이 되겠노라〉, 디얀시의 아리아 〈웃음보다 울음이 더 많았던 날중에〉, 〈내 어리석음이 부끄러울 뿐…〉 등의 시적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를 갖춘 아리아들을 통해 생생한 가야 시대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막이 오를 때 대형 원과 검을 통하여 백성들을 통합하고자 하는 마음과 가야의 철기 기술을 보여주었다면, 마지막 허황옥을 실은 배가 무대 위로 들어설 때는 찬란하고 강인했던 가야국의 모습을 보는 듯하였다.

  위와 같은 무대 장치 뿐 아니라 다양한 조명과 영상으로 극의 전개를 보여주고, 가야국과 아유타국의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 등 볼거리가 많아 공연 내내 시야가 즐거웠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의 중심인 출연진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은 귀를 정화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디얀시역의 소프라노 손가슬의 버려진 여인의 슬픔과 결연한 희생의 결심을 담은 아리아 〈내 어리석음이 부끄러울 뿐…〉에서의 짙은 슬픔을 담은 강한 호소력 깊은 울림은 공연장의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김해문화재단 이태호 본부장은 “〈허왕후〉는 가야 건국 신화와 설화뿐만 아니라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 그들이 꿈꿨던 이상향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시적인 가사와 멜로디를 통해 오페라의 참모습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오페라 〈허왕후〉는 단순한 가야 건국 신화의 재현이 아니라 가야를 민주적이고 철과 문화의 강국으로 탄생시켰던 김수로와 허황옥의 사랑과 이상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나아가 김해의 대표 문화 콘텐츠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창작 오페라로 승화시켰다.

  5월 14일, 15일 이틀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제13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로 시작한 오페라 〈허왕후〉는 오는 9월 김해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을 찾아갈 예정이다.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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