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어린이 운동의 새벽’ 정순철 작곡가를 도종환 시인이 이야기하다: 도종환, 『어린이를 노래하다』
[북리뷰] ‘어린이 운동의 새벽’ 정순철 작곡가를 도종환 시인이 이야기하다: 도종환, 『어린이를 노래하다』
  • 해나(본지 에디터)
  • 승인 2022.06.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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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사에서 잊힌 작곡가 ‘정순철’의 생애를 다시 조명하는 평전을 도종환 시인이 펴냈다. 『어린이를 노래하다』는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100년 전 어린이 운동이 동트던 시기의 풍경을 ‘동요’라는 새로운 눈으로 그려낸 책이다. 저자 도종환은 이번 책에서 우리가 ‘어린이 운동’하면 익히 떠올리는 인물인 소파 방정환 대신, 한국동요 4대 작곡가인 정순철을 전면으로 불러낸다 .

  이 책은 전 국민의 애창곡인 〈짝짜꿍〉, 〈졸업식 노래〉의 작곡가임에도 분단의 기억 속에 잊힌 정순철의 삶을 통해 3·1운동이라는 민족적 열망이 분출한 대사건을 전후로 이 땅에 독립의 열망을 키워내기 위해 분투한 어린이 운동의 주역들을 다채롭게 그려낸다. 또한 그 인물들과 긴밀하게 관련된 ‘동학’이라는 우리 고유의 사상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룬다. 저자 도종환이 정순철에 주목한 것은 그가 우리의 어린이 운동의 여명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순철은 어린이 운동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동학의 2대 교조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이다. 그리고 간토대지진 와중에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며, 해방 공간에서 활동하다 제자에 의해 납북된 교육자이다. 이처럼 그의 전 생애는 한국근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많은 곡들을 남겼지만 한국 근대사에서 지워질 수밖에 없었던 인물 정순철의 삶을 담은 『어린이를 노래하다』는 그런 그의 생애를 돌아보며, 아동에 대한 지금 사회의 취약한 정책과 왜곡된 시각들을 바로잡아줄 올바른 ‘어른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줄 것이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윤극영, 홍난파, 박태준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동요 작곡가로 불렸던 정순철은 1950년 6·25전쟁의 와중에 납북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 우리 역사에서 그의 이름은 지워졌다. 도종환 시인은 그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돌려준다. 저자는 오장환 시인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정순철의 이름을 처음 만났을 때의 떨림을 여전히 기억한다. 유명한 동요의 작곡자라는 것, 그리고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라는 것 때문에 정순철은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자가 잊힌 작곡가의 삶을 복원하기로 마음먹고 그의 삶을 뒤좇은 결과가 바로 이 책 『어린이를 노래하다』에 담겼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정순철의 삶을 추적해갈수록 저자는 그가 그저 유명한 동요를 지은 ‘동요 작곡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우리나라의 동요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자 어린이 인권을 위해 노력한 어린이 운동가였고, 여성의 교육에 헌신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저자는 이렇게 작곡가 정순철의 숨겨진 공로들을 찾기 위해 도서관으로, 정순철의 고향 청산으로, 정순철이 공부했던 일본으로 동분서주한다.

  정순철을 아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답을 잘 못 한다. 그러다 「짝짜꿍」과 「졸업식 노래」를 작곡한 분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금세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 표정이 환하게 바뀐다. 그의 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며 “엄마 앞에서 짝짜꿍” 하는 〈짝짜꿍〉이란 노래를 부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이 노래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 본문 16쪽.

  동학혁명의 열망이 일본군의 독일제 크루프 기관총에 의해 무참하게 꺾이며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최윤은 무어라고 심고했을까? 고문을 받을 때, 새어머니가 악형으로 유산을 하며 피 흘리고 쓰러져 있을때, 늑가를 가야 할 때, 거기서 아들을 낳을 때 최윤은 무어라고 한울님께 심고했을까? 아들 정순철이 어린이를 위한 일을 할 때, 아들이 만든 동요가 널리 불리어질 때, 그 아들이 6·25전쟁으로 납북되어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최윤은 무어라고 심고했을까?‘ 한울님 순철이가 끌려갔다 합니다. 생사를 알 수 없다 합니다. 신발만 한 짝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한울님…’ 이렇게 심고하며 눈물을 흘렸을까.
- 본문 287쪽

  정순철이 쓴 글인 「동요를 권고합니다」를 보면, 동요를 만드는 작곡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노래 중에도 동요처럼 곱고 깨끗하고 좋은 노래는 없다”며 동요가 우리의 심성을 정화시켜주고 정서를 순화해준다고 믿었다. 언젠가부터 어린이들이 동요보다는 대중가요를 많이 부르는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의 가르침이 주는 울림이 크다. 「노래 잘 부르는 법」에서는 음악에 대한 원론적인 생각과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윤복진의 시에 그가 곡을 붙인 동요 「옛이야기」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한 줄 한 줄 가르쳐준다(「9장 녹양회와 음악 교사 정순철」 229~237면). 이 글은 정순철이 윤복진의 시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으며, 어떻게 그것을 노래로 잘 해석해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동덕여고, 무학여고, 성신여고 등에서 여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는 학교인 경성보육학교, 중앙보육학교에서 음악을 교육하는 방법을 가르친 정순철의 교육자로서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글이다. 근대적인 방식의 음악 교육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음악사의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정순철 개인의 업적이나 남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조선 후기 동학혁명부터 경술국치, 3·1운동, 해방 그리고 1950년 6·25 전쟁까지 정순철 인생의 굴곡은 그대로 우리의 역사의 굴곡과 겹쳤다. 그렇기에 정순철을 둘러싼 당시의 구체적인 시대상, 사회상, 주변 인물들과의 일화를 함께 엮어 정순철이라는 인간을 역사 속에 스며들게 했다. 그것이 바로 정순철의 성정을 닮은 이 책의 미덕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밝혀진 정순철 작곡의 악보 40여곡을 부록으로 실어 사료적 가치도 담았다.

  일제강점기라는 악조건 아래에서 어떠한 외래 사상의 도입 없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낸 어린이 운동의 역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이 책이 민족적 수난기임에도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의 행복을 만들어내고 지켜내기 위해 분투했던 이들의 숨겨진 역사를 드러내는 계기이자, 어린이를 사랑한 정순철의 삶과 작품을 다시 한번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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