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시조의 안과 바깥을 오가는 담백한 사색과 깊이 있는 통찰: 이달균, 『시조,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
[북리뷰] 시조의 안과 바깥을 오가는 담백한 사색과 깊이 있는 통찰: 이달균, 『시조,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
  • 양진호(본지 에디터)
  • 승인 2022.06.0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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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시인 이달균이 시조 평론집 『시조,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를 펴냈다. 그는 1957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여 1987년 시집 『南海行』과 무크 《지평》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5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조 창작을 병행해 왔다. 경남문학상, 경남시조문 학상, 경상남도문화상, 마산시문화상 등을 수상하며 시조 시단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다져온 시인은 이번에 펴낸 평론집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를 통해 시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재정립하려고 한다.

  이달균 시인은 그동안 펴낸 시조집들을 통해 시조의 본래적인 침묵과 고독을 강조하며, 그 안에 우리만의 정서와 가락을 담는 것을 시조의 본령으로 삼아야 한다고 언급해왔다. 그런 그의 시조 평론집에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적 일탈과 정형성 사이’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이 있다. 고독과 침묵을 보다 논리적인 언어들로 정리한 이번 평론집에는 그의 언어적 실험과 단련에 대한 세밀한 방법론이 담겼다. 독자들은 이번 시조집을 통해 한국시조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1부 ‘바람집에서 만난 시간의 흔적’에는 장순하, 윤금초, 박시교, 이우걸, 서우승, 이승은 시인의 작품에 대한 비평이 담겼다. 저자는 각 시인이 도달한 시조의 혁신과 개성적 질감들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분석해 한국시조라는 큰 맥락 안에서 개별의 작가·작품들이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를 적확하게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는 시인의 작품 내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시인이 그 작품을 쓰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독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보고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2부 ‘닫힌 듯 열려있는 정형 미학’에서는 오승철, 신웅순, 문태길 등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저자는 시조의 안과 바깥, 즉 구심력과 원심력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의 힘을 놓지 않는 시인들의 노고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해낸다. 그는 신웅순 시인의 시집 『한산초韓山抄』를 읽으며 “韓山은 어디이며 누구인가”를 질문하고, 강현적 시인의 작품들에서 ‘의미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언어들의 뒤편에 있는 시적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며, 고통과 진정성으로 구축된 김윤철 시인의 시세계를 ‘거듭남을 향한 제의祭儀’로 명명한다. 그는 모든 시인들의 ‘너머’에 대한 통찰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풍경과 고유명사와 지명들을 새롭게 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이 세계의 ‘안’에서 얻을 수 없었던 어떤 새로운 의미들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2부에서 설명해낸다.

  3부 ‘완성을 향해 가는 부단한 탐구’에서는 저자가 자신만의 철학을 통해 완성해 나간 시조에 대한 정의와 이를 통해 이뤄진 개별 시조 작품들에 대한 분석이 담겼다. 단수 정형을 위해 절차탁마의 시간을 거친 김민지 시인,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스스로를 향한 고독한 시선을 시리게 겹쳐내는 황영숙 시인, 정제된 펜촉으로 시조의 기율을 완성해나가며 그 안에 순응과 인연의 따뜻함을 담는 유선철 시인 등을 통해 저자는 “문자에 매이지 않는 영혼을 갖기 위해 문자에 천착하는” 시인의 구체적 실천들을 보여준다.

  김윤철의 시는 온몸으로 쓴 몸詩다. 때로는 둔탁하기도 하고, 눈물로 버무린 비빔밥 같기도 하다. 이 시집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기보다는 세상 위에 발가벗은 채 자신을 드러내는 뜨거운 제의祭儀에 가깝다. 그러므로 메타포에 숨은 채 아름다워질 필요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노래이고 싶어 한다. 중요한 것은 한국시 조단에 자신만의 개성을 한껏 드러낸 시조집 한 권이 추가되었다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의 ‘더러운 그리움’까지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자가 세상에 어떻게 비춰지든 그건 그들의 몫일 뿐이다. 그 이후의 노래는 다음에 듣기로 하자.
- 「결핍을 춤추는 생명의 제의祭儀」 중에서, 본문 167쪽.

  한 장인匠人은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억세어진 굳은살로 섬세하고 정교한 장도를 만드는 일을 익혀간다. 한 수의 시조를 창작하는 일도 공방에서 묵묵히 쇳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고 때우는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과 같다. 때리고 담금질을 계속하다 보면 어떤 것은 칼날로, 또 어떤 것은 칼집으로 그 형태를 갖추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쓴다고 하지 않고 빚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싫든 좋든 그 길에 들었으니 완성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사면발니 같은 바랭이 풀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작품이다.
- 「촛불의 다비식을 위한 탐구」 중에서, 본문 220쪽.

  『시조,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는 시조 안에서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이 어떻게 공존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평론집이다. 그는 “시조는 낯익다. 700년 전통과 고유한 형식을 가졌으니 당연하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변한 시대에 시조라고 예전의 것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낯섦으로 가는 문 앞에 선 시조인을 만나면 반갑다”고 다시 반론을 제기하며 “현대적 가치와 효용성이 바로 현대시조의 존재 이유가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인다. 시조의 중심과 바깥의 사이에서 많은 시인들이 뜨겁게 고민하며 자신의 언어를 찾아 나가고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시조를 써 온 저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번 평론집은 저자가 자기 자신의 성찰을 동료 시인들의 성찰들 사이에 나란히 놓고, 그것을 이어 붙이며 한국시조라는 하나의 ‘장르’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는 머리말에서 “경계와 구도를 통해 어떤 장르를 정의한다면 시조가 답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으로 써 온 산문들이다”라고 밝혔다. 일상에서든 작품 속에서든, 말이 모이지 않고 흩어지기만 하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안’과 ‘바깥’의 경계와 구도를 설계하며 우리 삶의 말들을 조금 더 ‘모이게’ 하는 시조 시인들의 발걸음들을 정리한 『시조,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는 독자들에게 현재의 한국시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줄 것이다.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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