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Theme] K-무비의 열풍이 휩쓴 2022 칸영화제: 75회 칸영화제 스케치
[6월 Theme] K-무비의 열풍이 휩쓴 2022 칸영화제: 75회 칸영화제 스케치
  • 손정순(본지 편집인),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22.06.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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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 또는 연기됐던 칸영화제가 3년 만에 정상 개막했다. 우리는 니스공항에 내리자마자 마스크를 완전히 벗은 군중들을 마주했다. 세계 초청객들을 맞이하는 칸영화제 부스와 마주하는 순간 우리의 몸속으로 지중해의 눈 부신 햇살과 바람과 자유의 물결이 스며들었다. 힘들었던 3년간의 팬데믹 시간이 한순간에 씻겨나가는 느낌이랄까? 칸영화제가 열리는 이곳 5월의 프랑스는 실내외 불문 ‘No Mask’로 완전한 일상의 회복이 이뤄졌다.

75회 칸영화제 개막식

5월 17일 오후, 칸에 도착하자마자 배지를 찾기 위해 Gare Maritime로 갔다. 항구 앞 땡볕 속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자 혹여 개막작을 놓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다. 이전에는 칸영화제 사무국이 있는 팔레 데 페스티벌(이하 팔레)Palais des Festivals에서 배지를 찾았는데, 이번에 장소가 바뀌다 보니 헤매는 내외신기자도 많았다. 1시간여 만에 프레스 배지를 찾고, 기념 포스터까지 챙긴 우리는 서둘러 개막식을 보기 위해 다시 긴 줄을 섰다. 팔레 주변은 3년 만에 다시 찾은 세계 각지 영화인과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를 갖춰 입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개막작 티켓을 간절히 구애하는 이색적인 장면 또한 재연됐다.

오프닝 레드카펫에는 보테가 베네타의 놋 스트랩 디테일이 돋보이는 블랙 트윌 이브닝 드레스를 착용한 줄리안 무어, 은색 스팽글로 덮인 반짝이는 프라다 드레스를 입은 캐서린 랭포드를 비롯한 유명 배우와 감독들의 화려한 모습도 펼쳐졌다. 또한 턱시도를 차려입은 배우 오광록이 검은 드레스를 입은 비연애인 아내와 깜짝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오광록은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부문에 공식 초청된 영화 〈리턴 투 서울Return to Seoul〉로 칸영화제를 찾았고,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데비 슈 감독, 한국의 협력 제작사 맑은시네마의 하민호 대표와 함께 레드카펫에 올랐다.

오후 7시(현지시각), 드디어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Théâtre Lumière에서 제75회 칸영화제가 개막했다. 우리는 프레스를 위해 마련된 뤼미에르 대극장 바로 옆 드뷔시 관Salle Debussy에서 스크린으로 개막식을 관람했다.

개막식 사회는 배우 비르지니 에피라가, 개막 선언은 줄리안 무어가 각각 맡았다. 칸영화제 개막식에서의 최고 이슈는 〈파이널 컷〉의 출연·제작진도, 심사위원도 아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다. 배우 출신이기도 한 그가 화상으로 깜짝 등장한 것이다. 그는 나치 정권을 정면 비판했던 당대의 찰리 채플린과 같이 오늘날의 영화계가 자유를 위협하는 푸틴 정권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때와 같이 지금도 독재자가 있고 자유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영화계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오늘의 영화계가 침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새로운 채플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승리의 결말을 보장할 영화가 필요하고, 영화는 매 순간 자유의 편에 서 있을 것”이라며 영화의 힘을 강조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에 개막식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파이널 컷〉 감독 및 배우 ⓒLoic Venance / AFP
〈파이널 컷〉 감독 및 배우 ⓒLoic Venance / AFP

개막작 미셸 아자나비시우스의 〈파이널 컷Final Cut

올 칸 개막작은 2012년 〈아티스트〉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을 석권한 미셸 아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좀비 코미디 〈파이널 컷〉이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프랑스 리메이크 작품으로 원작과 거의 유사한 이 작품은 원테이크 저예산 좀비 영화를 찍던 이들이 실제 좀비에게 공격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형편없는 퀄리티의 30분짜리 좀비영화가 먼저 관객에게 공개되고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벌어진 일을 담은 메이킹 필름이 남은 러닝타임을 채운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스크린이 자꾸만 2019년 칸 개막작인 짐 자무시 감독의 좀비영화 〈데드 돈 다이〉를 연상케 한다. 다만 짐 자무시 감독의 〈데드 돈 다이〉는 메타포로 활용한 재미있는 좀비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관객들의 폭소를 유발했다면 75회 칸 개막작 〈파이널 컷〉은 영화에 인생을 건 바보 같은 청춘들의 초심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했다.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에서 누벨바그와 장 퀵 고다르의 스타일을 모사에 가까운 태도로 오마주하기도 했던 미셸 아자나비시우스는 이번에는 전 세계적으로 컬트적 인기를 누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리메이크했다. 어쩌면 영화 만들기라는 위대한 예술행위에 진심을 바쳤던 세계 모든 영화인들을 위한 헌정이 아닐는지.

칸 경쟁부문을 비롯한 주요 화제작들
초반부터 돋보인 한국영화의 행진

좀비 코미디영화 〈파이널 컷〉으로 막을 올린 칸영화제는 18일부터 본격적인 상영에 돌입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칸영화제 2일차 《스크린 데일리》 표지를 장식했고 이튿날은 〈헌트〉가 표지를 차지했다. 또한 〈브로커〉를 비롯한 여러 한국영화를 다루는 글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었다. 까다롭고 명망 높은 칸영화제가 K-무비로 문을 연 것이다. 현장에서 맛본 그 뭉클함이 아직도 감격적이다.

올해 경쟁부문에는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다르덴 형제의 〈토리와 로키타〉를 비롯해, 〈더 스퀘어〉로 2017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2007년 최고의 영예를 안았던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신작 〈R.M.N.〉, 〈어느 가족〉으로 2018년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등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의 작품만 4개가 포진되어 있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칸에서 첫 선을 보이는 ‘입양 로드무비’ 〈브로커〉는 〈기생충〉의 스타 송강호와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등 한국 배우들과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내외신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이에 질세라 ‘깐느 박’으로 불리는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신작 〈헤어질 결심〉을 칸에서 공개하니 개막 첫날부터 칸은 한국영화 열기로 뜨거웠다.

‘톰 크루즈와의 만남’
‘톰 크루즈와의 만남’

그뿐이랴. 미래 사회의 신체 변형을 다루는 크로넨버그 감독의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 앤서니 홉킨스와 앤 해서웨이가 출연하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아마겟돈 타임〉, 켈리 라이카트 김독의 〈쇼잉 업〉, 〈걸〉(2018)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퀴어종려상을 받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클로즈〉, 〈처음 만난 파리지엔〉(2017)의 레오노르 세라이예 감독도 두 번째 장편 〈어머니와 아들〉로 거장들과 경쟁했다. 〈경계선〉(2018)으로 예사롭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알리 아바시 감독의 신작 〈성스러운 거미〉, 타릭 살레 감독의 〈보이 프롬 헤븐〉 등 경쟁부문 21편 모두 쟁쟁한 거장들과 주목받는 젊은 감독들의 작품이다. 지난해 황금종려상 수상작 〈티탄〉(2021)의 주인공이자 〈아버지의 초상〉(2015)으로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뱅상 랭동은 2009년 이자벨 위페르 이후 오랜만에 프랑스 영화인으로서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용기, 충성, 그리고 자유를 향한 비밀스러운 희망을 품은 미래의 영화들”에 힘을 실어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개막 둘째날에는 〈탑건: 매버릭〉이 축제의 열기를 이어갔다. 주연배우 톰 크루즈가 등장하는 레드카펫 행사 때문인지 크루아제트 거리는 한껏 멋을 낸 인파로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오후에 이어진 ‘톰 크루즈와의 만남Rendez-vous avec Tom CRUISE’ 행사는 구름 떼처럼 몰려든 인파로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최고의 흥행 프로그램이었다.

배우 이정재의 첫 연출작 〈헌트〉는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대됐다. 서로의 정체를 의심하는 두 정보기관 요원이 거대한 진실과 마주하는 첩보 액션 영화 〈헌트〉는 개막 19일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첫 번째 한국영화로 선보였다.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스타로 등극한 이정재의 인기는 〈헌트〉 피켓팅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용모의 배우 정우성의 연기력은 스크린에서 더욱 빛났으며, 글로벌 배우로서 한치의 손색도 없었다.

월드프리미어 상영을 앞두고 레드카펫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리턴 투 서울〉 제작진
월드프리미어 상영을 앞두고 레드카펫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리턴 투 서울〉 제작진

이밖에 오광록 배우가 출연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프랑스 영화 〈리턴 투 서울〉도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월드프리미어 상영 후 객석에서는 영화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곳곳에서 보였고, 드뷔시 극장 로비에서는 주연배우 박지민과 데비 슈 감독을 붙잡고 말을 거는 시네필들로 미니 팬미팅이 열리기도 했다. 쿨투라 취재팀도 24일 12시 감독과 배우 인터뷰 때는 다른 스케줄을 취소하고 전원 참석했고, 연기 수업을 받아본 적이 전혀 없다는 박지민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가 매력적이어서 다음날 25일 오전에는 그녀의 전시가 열리는 니스까지 찾아가 관람했다. (박지민 배우의 본업은 설치미술가로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문수진 감독의 애니메이션 〈각질〉은 단편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미라마르MIRAMAR 극장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Ji-Min Park, Circonstance Galerie X Le Dojo
Ji-Min Park, Circonstance Galerie X Le Dojo

그 외 유의미했던 칸의 출품작

매일 아침 7시에 오픈하는 온라인 예매로 시스템이 바뀐 올 칸영화제는 초기에는 조금 헤매기도 했지만 약간의 노력과 열정만 있다면 예전처럼 긴 줄을 서지 않고도 편리하게 보고 싶은 영화를 예매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영화를 비롯한 칸 경쟁작을 우선 관람하고, 나머지 영화들 중 주요 영화를 선택하여 관람했다.

그 중에서도 ‘칸클래식’ 부문에 초청된 고빈단 아라빈단 감독의 대표작 〈서커스 텐트The Circus Tent〉(1978)와 글라우버 로샤 감독의 〈검은 신, 하얀 악마God And The Devil In The Land Of The Sun〉, 감독주간에 초청된 알렉스 가랜드의 〈MEN〉 등 영화제가 아니면 큰 스크린에서 만나기 어려운 귀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한층 풍요로운 칸이었다.

박지민 배우가 참여한 《L’envie d’aimer》 전시가 진행중인 Le Dojo
박지민 배우가 참여한 《L’envie d’aimer》 전시가 진행중인 Le Dojo

〈서커스 텐트〉는 오늘날 이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와 허구의 결합양식을 1970년대에 이미 선보이고 있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실제 인도 서커스의 아슬아슬한 공연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인도 사회의 한 단면을 화려한 서커스의 공연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은 신, 하얀 악마〉는 가난한 소작농 마누엘이 지주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그를 죽이고 겁에 질린 그는 아내 로사와 구원자 세바스찬에게 향한다. 세바스찬에 대한 마누엘의 믿음은 광적으로 깊어지고 부자들을 학살하는 데 동참한다. 급기야 마누엘은 세바스찬의 뜻에 따라 자신의 아기를 희생 제물로 바치고 그 광경을 본 로사가 세바스찬을 살해한다. 자신의 폭력적 행동을 정당화하고 또다시 복종과 피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영화는 인간의 나약함 너머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가차없이 드러냈다. 〈MEN〉의 경우 기괴한 실험과 예술성이 돋보였다. 마스터클래스에서 〈타인의 취향〉의 아네스 자우이의 영화세계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한국영화의 밤, 달라진 한국영화의 위상

22일 칸 해변에서 진행된 영화진흥위원회 주최의 ‘한국영화의 밤’ 행사엔 500명이 넘는 전 세계 감독과 배우, 영화 관계자들이 방문해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방문객수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홍콩 및 중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 관계자가 국가 봉쇄 등으로 영화제를 찾지 못한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흥행이라 할 수 있다. 취재진의 경쟁도 뜨거웠다.

행사 시작 전, 스크린에는 5월 초 세상을 떠난 고 강수연 배우의 모습을 비추며 그녀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고, 또한 이 자리에서는 〈오징어 게임〉의 달고나 선물과 함께 한국의 소주와 컵라면이 제공되어 인기를 끌었다.

〈헌트〉 감독이자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이정재와 배우 정우성은 영화제 행사장 곳곳에서 관객들의 사진 촬영 요청을 받았다. 《쿨투라》와의 인연이 깊은 그들은 《쿨투라》 잡지를 들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박기용 영화진흥위원장은 “영화진흥위원회가 21일 칸에서 프랑스국립영상센터CNC와 영화의 방향성 문제를 논의하는 라운드 테이블을 가졌으며, 부산영화제 기간에 2차 라운드 테이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고, 프랑스와 한국의 영화 학교 교류 및 공동 제작, 그리고 청년 영화인 교류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며 성과를 《쿨투라》는 영진위 부스에서 잡지와 영화 및 한류도서를 전시하며 부스를 찾은 내외신들에게 한국문화를 소개했다. 또한 ‘칸 프레스 100명에게 묻다’라는 설문을 진행하여 한류 열풍의 현상을 분석하였다.

CJ ENM 제공

칸을 휩쓴 K-무비의 열풍과 수상의 영광

코로나19 이후 3년 만의 정상개최로 뜨겁게 달군 제75회 칸영화제가 28일 막을 내렸다.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에게 감독상을, 〈브로커〉 주연배우 송강호에게 한국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안기는 쾌거를 이뤄낸 이번 칸영화제는 K-무비의 열풍으로 달라진 한국영화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칸을 빛낸 두 주인공의 아름다운 수상 소감은 본지에 수록한 인터뷰를 일독하기 바란다.

올해는 경쟁 부문을 포함해 한국영화 혹은 한국 영화인들이 참여한 작품만 6편이었다. 이정재 감독의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경쟁부문, 문수진 감독 〈각질〉이 단편 경쟁부문, 배우 오광록이 참여한 〈리턴 투 서울〉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이정재 감독의〈헌트〉가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관객과 만났다. 비공식 부문인 비평가주간엔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가 폐막작으로 선정되었고, 이 부문 심사위원으로 허문영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참여하기도 했다.

영화제의 얼굴 격인 경쟁부문, 그리고 작품성과 예술성을 판단하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과 단편 경쟁부문, 상업성 강한 장르영화나 대중적 소재 중심의 영화를 소개하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까지 고루 초청되었다는 사실은 높아진 한국영화의 위상을 확인하게 했다. 동시에 크리스티앙 죈 부집행위원장이 “이제 칸에서 한국영화나 한국영화인을 만나는 건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듯, 칸영화제 역시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영화의 위상과 열풍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필름마켓에서도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뜨꺼웠다. 전반적으로 코로나19 여파로 예전보다 마켓 부스가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한국영화 관련 부스에선 구매 및 작품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올해 칸영화제 마켓엔 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텐츠판다 등 총 8개 업체가 부스를 차렸다.

초청작뿐만 아니라 〈공조2: 인터내셔날〉, 〈외계+인〉, 〈보고타〉 등 크고 작은 규모의 한국영화들에 해외 바이어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계약이 급증한 데다, 각 대륙 혹은 문화권을 담당하는 지역 배급사에 위임해 판매되는 형태가 대부분이기에 마켓에서 영화가 몇 개국에 판매됐는지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하지만 위축된 오프라인 마켓의 활기를 주도하는 게 한국영화라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특히 〈헌트〉의 경우 〈기생충〉의 프랑스 배급을 담당한 조커스 필름이 프랑스 문화권 배급을 맡았으며, 북미권 배급을 담당한 네온Neon이 비딩bidding에 참여해 여러 업체와 경쟁했다. 〈기생충〉의 북미 매출액 약 5천만 달러를 달성한 배급사가 〈헌트〉에 적극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의미한 일이다. 해외 영화 수입사도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음식과 문화까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영화의 높아진 위상으로 마켓 관계자들은 “좀 더 편하게 경쟁에 참여하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말한다. 이처럼 칸을 휩쓴 K-무비의 열풍은 달라진 한국영화의 위상을 체감케 했다.

보통 칸과 함께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세계 3대 영화제라고 지칭하지만 칸영화제의 위상이나 인지도가 다른 두 영화제보다 월등히 높다. 이동진 평론가는 “황금종려상은 노벨문학상이나 맨부커 상을 받은 것과 비슷하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는데 100% 공감한다.

이번 칸영화제는 엔데믹 속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와 또 엄격했던 드레스코드도 약간은 느슨하게 풀어주는 등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감지하게 했다. 무엇보다 한국영화에 빛나는 상을 두 개나 안겨준 75회 칸영화제는 아직도 그 여파가 출렁인다. 칸영화제 레드카펫 주제곡인 생상Saint-Saëns의 동물의 사육제The Carnival Of Animals 7악장 〈수족관Aquarium〉의 몽환적인 음악이 벌써부터 그립다.

 

  CJ ENM 제공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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